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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Sep 17. 2022

느림의 미학

직장맘의 육아일기

희귀하지만 노력과 상관없이 일반적인 능력 범주를 벗어난 사람들이 있다. 타고난 재능과 과제집착력까지 가미되어 있으면서, 직관도 뛰어나서 우리와 사고체계가 다른 천상계 사람이다. 평생 만날까 말까 하는 이런 부류를 제외하면 우리가 만나는 뛰어난 아이들은 인간계에서 '영재' 또는 '수재'로 불리는 수준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이들의 성장기에는 '빠른' 아이들과 '뛰어난' 아이들 구분이 어렵다.  


아이들 간 비교는 비슷한 나이 또래에서 이루어 지므로 나이가 어릴 때는 '빠른' 아이들이 뛰어난 경우로 여겨지곤 한다.


'어릴 때 그 많던 영재가 다 어디로 갔는가'에 대한 여러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나이가 어릴수록 '또래보다 빠른' 경우 혜택이 많다.


운동 및 예술과 마찬가지로 공부에서도 일찌감치 두각을 나타내면 여러 기회가 주어진다. 그 기회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비약적인 도약을 할 계기가 되기도 하고, 압박감 때문에 좌절을 할 수도 있다.



흔한 예가 있다. 중학교 수학을 공부할 때 꼼꼼하고 성실한 학생 A와 좀 덤벙대지만 수학 재능이 뛰어난 학생 B가 있을 때, 수학 점수는 A가 더 높을 가능성이 많다.


그러나 이후 수학 난이도가 높아지거나 사고력, 경시 문제로 넘어가게 되면 B가 훨씬 두각을 드러내게 된다.


실제 사례에서도 학교를 대표해서 수학경시대회를 출전할 때 어릴 때는 A유형이 선발될 가능성이 높으나, 학년이 올라가고 난이도가 높아지면 B유형이 두각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빠르거나 재능이 있는 아이들과 비교하여 다소 느려 보이는 아이들은 그 기회를 얻지 못해서 무엇을 해도 한계에 부딪힐까?


막상 아이를 키워보니, 그렇지 않았다. '세월이 주는 힘'이 생각보다 강함을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번뜩임보다, 자신의 수준에 맞춰서 차곡차곡 단계를 올라가는 아이들의 성과가 상당히 눈부셨다.


초등학생일 때보다 중학생 때, 중학생일 때보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 점차 두각을 드러나는 경우 공통점은 꾸준한 성실함과 주변에 흔들리지 않는 뚝심이었다.



이런 아이들을 보면, 부모님들이 더 대단해 보인다.



선행을 한다거나, 큰 대회/경시를 준비를 한다거나, 유행처럼 뜨는 학원을 좇아 다니지를 않는다. 관심은 가지되, 아이의 성향 파악에 힘쓰고, 아이 속도에 맞추어 단계를 하나씩 업그레이드해 나간다.


반면, 아이의 자질, 성향, 수준을 살피지 않고, 유명 학원을 보내기 위해 애쓰는 경우도 많다.



워낙 선행이 기본인 세상인 데다, 일찍 앞서 가는 아이들이 많아서 상대적으로 느려 보이는 거지, 사실 느린 게 아니다. 제 나이에 맞춰서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



'빠른' 아이들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이지만, 꾸준히 하되 중단하지 않으면 결국 모든 아이들이 어느 시점에 다 만나게 된다.



올해 입시를 치르면서 아이들의 입시 결과를 보니 그랬다. 초등학생 때부터 오래 지켜본 아이들이 많았는데, 묵묵히 꾸준히 해 온 아이들 결과가 너무도 좋았다.


반면 어릴 때 이름을 떨친 아이들은 결과가 다양했다.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로 한 말이 있다.


아무리 빨리 가도 '고3'에서 다 만난다고.


아이가 어릴 때는 몰랐는데, 입시를 치르고 나니 이해가 간다.



부모님들이 학업에 많이 초점을 맞추게 되는데, 나는 운동에서 '느림의 미학'을 크게 깨달았다.


션은 운동을 못했다. 아니, 아예  운동을 하지 않았다.


아기 때부터 걷지도 않고 안기고 업히려 했다. 5살 무렵 갑자기 걷길래 이유 물어보니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걸어야 골다공증 안 걸린다는 것을 걸 알았어 "라고 말했다.


뛰어다닌 적은 더욱 없었다. 초등학교 입학 후 친구들과 일주일에 한 번 축구를 할 때도 운동장을 어슬렁 걸어 다녔다. 몸으로 하는 건 모조리 한 적이 없다 보니, 스스로도 운동을 못한다고 생각했다.



이 생각을 깬 것은 중학생이 되면 서다. 어느 날 션이 운동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달리기부터 시작했다. 처음 달리기 할 때는 발바닥부터 쇄골까지 아팠다고 했다. 이어서 배드민턴, 수영 등을 하다가 헬스를 시작했는데 조금 하다 말겠지 싶었으나 고3이 되어서도 꾸준히 운동을 했다. 운동신경이 없다 보니 남들 배 노력을 하였고, 어느 정도 정상 범위의 동작 능력을 얻게 되었다.



타고난 몸치에 운동은 담쌓고 살았던 사람이 '나'다. 션이 처음 운동을 할 때 '저러다 말겠지' 했다가 1년, 2년, 3년을 하는 것을 보고 션의 운동능력이 키워주며 체형 변화까지 오는 걸 보고 나서야 '아, 저 아이도 되는구나. 그러면 나도 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후 운동을 조금씩 시도해 봤다.


운동은 나의 평생 트라우마였으므로 당연히 해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나 같은 사람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신체능력이 워낙 바닥이라 두, 세배 기간이 더 걸리겠구나 했는데 조금씩 나아짐을 느끼면서 크나큰 성취감을 느꼈다.


이렇게 타고나기를 못하는 것도 하니 되는데, 기본만 가지고 있을 때 꾸준히 하면 얼마나 잘하겠어?라는 생각도 했다.



내가 현재 가지고 있는 운동능력은 여전히 평균 이하이다. 하지만 가끔이라도 몸을 움직여 주니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나아진 나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많은 아이들과 성인들이 말한다.


"나는 원래 그거 못해"라고.


원래 못하는 게 맞는 말이겠지만 더 정확한 뜻은 "나는 어차피 못하니까 앞으로도  그거 안 할 거야"이다.


다는 아니더라도 '원래 못했던 것' 한두 가지는 깨어보면 어떨까. '나도 되는구나' 자신감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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