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깡지 Jan 23. 2023

행복한 과정 vs. 좋은 결과

직장맘의 육아일기

이전 <해외명문대 친구들 vs. 국내명문대 친구들>에 이어 우리 가족이 나눈 또 다른 주제는 <행복한 과정 vs. 좋은 결과>다.


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과정을 즐기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나 역시 과정을 중시하는 사람 중 하나다.

목표가 높을수록, 기간이 길수록 지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면 무엇보다 마음관리가 중요한데 즐겁지 않으면 끝까지 해낼 동력을 잃는다. 그러나 매 순간, 매일이 즐거울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존재하지도 않고 있다 해도 같은 즐거움도 반복되면 식상해진다.


즐거움을 얻는 방법은 많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때 모두 즐겁다.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즐거움은 크고 작은 고비를 헤쳐가며 작은 성취를 이뤄냈을 때라고 생각한다. 이때는 외부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지만 내면에 쌓여가는 자존감도 함께 느끼게 되어서다.


종종 '고3 엄마가 이렇게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말을 하곤 했다.

이 기간 내가 내내 나에게 했던 말은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였다.

션 대신 공부를 해 줄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션이 공부할 때 나는 내 일을 열심히 했다.   

엄마로서 한 일은 학교 마치고 온 션을 두 팔 벌려 안아주는 것, 션의 하루 한 끼를 최선을 다해 정성껏 차리며 밥상머리 대화 나눈 것, 그리고 잔소리 안 하기였다.


흔들리고 걱정되는 고3 엄마 마음을 평온하게 해 준 것은 무작정 걷는 것과 독서였다.

수련을 하듯 꽤나 과하게 걷기와 독서를 한 덕분에 정말 행복한 고3 엄마로 1년을 보낼 수 있었다.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고 1년 내내 매일 되새김 질 했던 이유는 어쩌면 나에 대한 보험을 들은 것 일 수도 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니까 혹시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을 때 나의 멘털이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 미리 예방접종을 365대를 맞았던 것이다.


그런데, 엄마 마음이라는 게 참 요상도 하다. 나의 마음은 그리 중심을 잡을 수 있지만, 자식의 마음에 감정이입이 쉽게 되곤 한다. 션이 저리 애쓰는데 결과가 좋지 않으면 당사자 입장에서는 얼마나 실망할까 하는 마음은 쉬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엄마니까 할 수 있는 마지막 역할은 '진심'을 담아 괜찮다고 격려를 해 주고 싶었다.

그렇기 위해서라도 '고3 엄마의 과정'은 행복했어야 했고 실제로 행복했다.


션의 입시는 운도 따라 주었겠지만 결과가 좋았다.

그런데 고3 엄마의 과정은 행복했을지 몰라도 션의 고3은 행복했을까가 궁금해졌다.

정말 치열하게 머리 쥐어 짜내며 노력하는 모습을 봐왔고 고비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다.


그래서 션에게 물어봤다.

'행복한 과정'과 '좋은 결과' 중 하나만 고르라면 뭘 고르겠냐고.

그랬더니 션은 '좋은 결과'를 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과가 좋은데 '행복한 과정'까지 있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경우다.

결과가 좋은데 '불행한 과정'이 있다면, 뒤돌아 봤을 때 자신이 그 고난을 이겨낸 뿌듯함이 생긴다.  많은 성공사례들이 자신의 결과보다, 역경을 이겨낸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셀프브랜딩을 위한 무용담까지 얻게 된다.

'행복한 과정'과 '좋은 결과' 모두 행복한 결말이면 '좋은 결과'는 좋은 결과가 덤으로 생기니 더 좋아 보인다. '행복한 과정+나쁜 결과'는 긴 세월 동안 행복한 것은 맞지만 '그래도 난 행복했어'라고 하는 정신승리로 보인다. 그래서 '좋은 결과'를 택했다.


이번에는 션파에게 물어봤다. 션파는 '행복한 과정'을 택했다.

션파는 결과는 항상 좋을 수가 없고, 결과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했다.

과정이 행복하지 않고 괴로운데 확실하지 않은 결과만 바라보고 참고 사는 것보다 '긴' 과정이 행복한 것이 훨씬 좋다고 했다. 그리고 결과가 뭐가 중요해하는 말도 덧붙였다.


내가 고른 것은 '행복한 과정'이다.  

나의 경우는, 성취지향적 성격이 강해서 목표가 있으면 아등바등 이루려고 애쓰면서도 긍정적인 성격 또한 강해서 어떤 과정이라도 행복해하는 스타일이다. '좋은 결과'가 과정을 미화시키는 힘이 있는 것은 안다.  

과정이라는 것이 당연히 여러 고비가 있기 마련이라 이 과정을 이겨내고 견뎌내며 그것을 즐기기까지 하면 좋은 결과를 맞을 확률이 높아질 것이라고 여긴다. 결과가 기대 이하면 지금이 아니라 더 훗날 딸 열매를 지금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행복한 과정'을 택한 것은 어쩌면 ,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 아쉬움도 느껴봐서 일 수도 있고, 또 반대로 '행복한 과정'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자신이 있어서도 있다.

'좋은 결과'를 얻을 자신이 없는 일은 아예 미련을 두지 않으므로 이런 경우는 '과정' 자체가 없다.


그런데 션이 하는 말이, "아빠는 행복한 과정을 택한 것이 맞는데, 엄마는 아니야. 항상 말은 과정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결과도 중요하게 생각해. 엄마도 좋은 결과 쪽이야."라고 한다.

녀석, 예리하기는. 어차피 '좋은 결과' 얻을 자신이 있어서 '행복한 과정'을 택한 것을 아나보다.


우리 가족은 셋 성격이 다 다르다. 특히 나와 션파는 정반대의 성향이 많다.

션은 엄마, 아빠에게서 일부분을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합집합으로 물려받은 게 많다.

그중 진취적인 성향은 나의 기질과 유사하지만 몇 배나 업그레이드된 듯하다.


각자 기질과 그간 경험으로 답변과 설명이 다 다른 것이 재미있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일터에서의 동료과 친인척, 친구까지 더 확대해서 물어봤다. 마침 아버님 기일이 있어서 성비도 고루 분포했고, 연령대가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해졌다.

7:3 정도 차이로 '좋은 결과'와 '행복한 과정'을 택했다.

절반 조금 넘게  빠른 답변을 했고,  절반 조금 안되게 꽤 고심해서 답을 했다.


'좋은 결과'를 택했느냐에 대한 답변은 대부분 비슷했다.

아무래도 결과가 좋으면 힘든 과정에 대한 보상심리가 작용하기 하고 과정이 미화되는 것 같다는 의견이다.


의외인 것은 '행복한 과정'을 택한 경우다.

션파는 '행복한 과정'을 택할 줄 알고 있었고, 나머지 분들은 '좋은 결과'를 택할 것 같은 사람들이 '행복한 과정'을 택했다.

그리고 이 분들은 선택에 있어서 주저함이 없었다.

오히려 '좋은 결과'를 택한 사람들 중 절반은 빠른 선택을 했고, 나머지 절반은 고민고민 하다가 '좋은 결과'를 택했으며, 다른 사람의 이유를 듣고 자신도 '좋은 결과'로 바꾸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선택에 주저함이 있고 없고 차이는 평소 이런 문제를 생각해 본 경우가 있느냐 없느냐 차이로 보였다.

이 주제만 두고 깊이 있게 생각했다기보다, 여러 경험에서 얻은 각자의 가치관의 변화였다.

좋은 결과를 택한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산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행복한 과정을 택한 사람이 의외로 자신을 온전히 내맡기며 그리 열심히 산 경우가 더 많았다.


이 중 한 명은 이제 갓 스무 살로 원하는 결과를 얻기는 했으나 과정이 너무 치열하여, 두말하지 않고 '행복한 과정'을 택했다.

또 한 명은 사회적인 지위를 꽤 높이 누렸음에도 불고하고 은퇴를 하고 나서 돌이켜 보니 남는 것이 '희로애락을 함께 하는 진정한 동지'였다고 했다.

또 한 명은 자신의 일에 열정을 쏟아부었는데, 과거를 회고해 보니 주변을 좀 더 둘러봤어야 했는데 젊은 시절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렸고 자신의 역량이 가장 뛰어났다며 자만했다고 했다.

그리고 또 한 명은, 고속도로에서 아무리 속도를 내고 달려도 도착해 보면 안전거리 유지한 사람과 겨우 10분 차이라며, 그 10분을 단축하기 위해 광란의 스피드를 올리는 것보다 경치를 보면서 가는 것이 좋다는 주의였다.


션의 고3 경험기간 때가 생각나서 재미로 시작한 질문이었는데, 나의 주변인들의 생각을 알게 된 것도 좋았지만 이들의 말이 모두 일리가 있어서 더욱 좋았다.

행복하기만 한 과정좋은 결과를 보장해 준다면 참으로 좋겠으나 절대 그렇지 않다.

괴롭고 치열한 과정을 거친 사람이 '좋은 결과'에 이를 확률이 더 높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행복한 과정'에 대한 정의부터 다시 했다.

그저 웃고 즐기는 것이 '행복'이 아니라 거센 파도와 지루한 망망대해를 견뎌내는 힘이 행복의 근원이며, 그 행복은 나 혼자서가 아니라 함께 할 사람이 있어야 진정한 '행복한 과정'임을


그리고 '좋은 결과'에 대한 정의도 다시 했다.

단지 목표를 이룬 것이 좋은 결과가 아니라, 그 목표를 다달았을 때 더 멀리 볼 수 있는 시야를 얻는 것이 '좋은 결과'임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