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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Aug 15. 2023

그저 바라보기

직장맘의 육아일기

* 아들의 대학 입학을 앞두고 써둔 글


아이와 엄마가 궁합이 참 잘 맞는 조합이 있다.

성향도 잘 맞지만 학습에 있어서도 '원팀'처럼 딱딱 잘 움직이는 경우가 있다.

'성실한 수재형 아이 + 매니저형 엄마'의 조합이 대표적이다.

사람 사는 게 비슷하니, 이런 조합도 나름 어려움과 갈등이 있긴 하겠으나 좋은 해결방법을 찾아서 금세 극복한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당탕탕 육아를 한다.

왜 우리 집만 예외가 적용되는지, 육아서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것 같은데 왜 아이는 다른 방향으로 튀는지 알 수가 없다. 공부를 잘하건, 못하건 예외가 없다.


나도 그런 경험 많이 했다.

분명히 1+1=2여야 하는데, 육아는 '수학'이 아니라 '추상미술'같다.

저 아이의 행동이나 마음을 이해하기도, 해석하기도 어려운 적이 많았다.

이유를 알게 되어도, '나와 다른 생명체구나'를 매번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나 같으면 저렇게 하지 않을 텐데'에서  나와 다른 생명체니까 '저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로 생각이 바뀌어 갔는데, 아이를 키우며 얻은 깨달음이 프로젝트할 때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참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모든 사람이 '나름의 이유'가 있음을 알게 해 주었으니.


그렇다고 무조건 아이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을 공감하는 것은 아니었다.

'내가 아니니까' 저들은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저들 역시 '내가 아니니까' 그들 나름대로 생각하는 것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도 우당탕탕 육아를 했다.

특히 션처럼 자기주장과 소신이 뚜렷한 경우는 본인이 생각하지 않으면 절대 하지 않는다. 해도 하는 시늉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좋은 엄마라서가 아니라 어쩔 도리가 없어서 "기다려줘야"하는 일이 많았다.


억지로 하게 하거나 못하게 할 경우, 부작용이 더 커질 캐릭터인 데다, 부모 자식 관계만 틀어질 거 같아서 차라리 내가 포기하고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다가 션이 깨닫는 순간이 오면, 순식간에 문제가 해결이 된다.

속으로는 '진작 엄마 말 듣지'라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올라오는 적도 많았다.


올여름 션은 여행을 정말 많이 다녔다. 여행뿐인가, 온갖 친구과 다 만나고 다니며 놀았다.

무슨 친구가 그렇게도 많은지 션말로는 나름 자제했다고 하는데, 내 눈에는 '그럴 리가'였다.

그렇게 내일은 없다는 듯 여름 내내 실컷 놀다가 대학을 갔는데,  션은 다양한 친구들 만나면서 나름 인간관계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는 말을 했다.


션이 대학을 가고 나서는 지금까지 내내 치열하게 자신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미래의 자신의 모습은 어떠한지' 등에 대해 그리 답을 찾아다닌다. 스스로에게도 질문하고, 여러 사람들의 경험과 조언도 구하고 다니고 있다.


새벽이 되면 션이 하루 일과를 마칠 때 즈음이라 나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자기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준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어떤 날은 철이 든 것 같다가, 또 어떤 날은 아이스러운 말을 하기도 하고, 기분도 up & down이 심하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해서 최대한 들어주고 응원만 해 주었다.

션이 하고 있는 고민 중 절반은 이미 내가 답을 알고 있고, 션이 미국에 가기 전에 해 준 이야기다.

션은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스타일이고 내가 해 준 이야기는 머릿속에 남아 있는 것 같지 않아서 내내 잘 들어줬다.



어제 친한 S언니와 이야기하다 서로 아들 이야기를 했다.

마침 션도 생각이 많이 무르익고 답을 제대로 찾아가고 있기도 했고, 언니의 아들도 사춘기를 끝내고 하루아침에 철이 든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들들이 진작 엄마말 들었으면 그리 힘들지 않게 지름길로 갈 텐데 왜 엄마 말은 이렇게 안 들을까' 이런 말 잠시 하다가 다시 말을 거두고 우리 아들들을 응원했다.



우리가 대학을 다닐 때는,

무엇을 공부하는 것이 좋은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 살아야 행복한지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다.

지금보다는 많이 심플한 사회구조였고 선택할 여지가 많지 않았으므로, 미래를 위한 '치열한 고민'이 아니라 '적당한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아니 미래를 향한 적당한 고민조차  했나 모르겠다. 그렇게 안 해도 충분한 세상이었다.


반면, 지금은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빠르게 변한다.

이런 세상에서 부모 말 잘 듣고 따르면, 나중에 어떤 결정을 할 때 '생각이라는 걸 해보지 않아서'  스스로는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없을 듯하다.



션이 미래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온갖 생각 다 해 보는 이 기간이,  과거 그 어떤 때보다도 값진 경험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간중간 엉뚱한 말, 서투른 아이디어를 말할 때도 있으나, 이제 시작이므로 당연하다.

앞으로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결정할 일이 많을 텐데 이런 훈련이 없다면 헛똑똑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S언니와 다시금 "쟤들은 직접 겪어봐야 똥인지 된장인 지 아는 애들이야. 우린 그냥 기다려주면 돼"라는 이야기 했다. 그렇게 돌고 돌아오면 그때는 부모가 한 말에 대한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고, 부모의 조언도 잘 받아들인다.



지금의 기다림은 무슨 목적이나 목표가 있는 기다림이 아니다. 이미 내 손을 떠났으므로, 사실은 그냥 바라보기다.

그렇게 바라보다 보니 시간낭비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성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나 같은 경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나이가 들고 아이를 키우면서 점차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어린 션이 하는 고민이 낯설지만 부럽기도 하다.  







하다 만 이야기 추가!



17세기 활동한 유명한 과학자 보일은 '보일의 법칙'으로 유명하지만, 더 중요한 책인 <의심 많은 화학자>를 내놓았다. "아무도 믿지 마라, 나도 믿지 마라, 대가가 해 놓은 것이라고 함부로 믿지 마라, 네가 검증하고 확인한 것만 믿어라"라고 적혀있다.

이후 과학은 직접 실험과 검증을 통해 사실을 정립해 나간다.



아이들도 이와 같아야 하나 보다.

부모, 선생님의 말이라고 무조건 따르지 말고, 직접 해 보고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아가야 한다.

우리가 20살 아이에게 해 주는 조언은, 20년 전 우리가 배웠던 '오래된' 배움을 바탕으로 한다.

아이들은 지금부터 몇 십 년간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고 개척해야 하는데, 20년, 30년 전 배움을 바탕으로 한 조언과 얼마나 긴 시차가 존재하게 될까. 20, 30년이 아니라 40년, 50년 이상 벌어지게 된다.

부모가 해주는 미래에 대한  조언에는 오류가 계속 쌓을 것 같다.



게다가 20대에 '적당한 고민'을 한 내가, 20대에 '치열한 고민'을 하는 션에게 섣부른 조언을 해 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50년 세월 간 얻은 지혜가 있다손 치더라도, 션에게도 적용될지는 계속 돌다리 두드리며 속으로 말을 삼키게 된다.




당장,

시대별 서울대 인기학과만 찾아봐도 답이 나온다.

시대별 의대에서 인기 분과만 찾아봐도 답이 나온다.  


과거에는 하찮은 돌이 지금은 다이아몬드가 되어 있고,

과거의 다이아몬드가 지금은 먼지가 되어 있다.



무엇을 하든, 미래에서 다이아몬드가 되기 위해서는  '고민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전문직이 답이 아니라, 전문직 안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래서 션이 어떤 업종을 선택해도 크게 관여치 않고 의견도 주지 않는다.

세일즈 업을 해도, 전문직을 해도, 연구직을 해도, 그냥 놀아도..

션의 성향과 좋아하는 스타일에 맞게 그 속에서 '재미'를 찾을 테고,

그 모습은 다 동일할 것임을 알기에.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나에게 맞는지 맞지 않는지 알 수 없이 시작한 IT컨설턴트.

그 속에서 나의 성향에 맞는 일을 점차 찾아가고, 없으면 만들었다.

아마도, 다른 일을 했어도 그리 했을 것이다.



결국 부모가 가르쳐 줄 것은,

사람이 가져야 할 근본 마음과 삶의 대한 태도이며,

미래에 대한 예측은 해 줄 수가 없다.

나조차 나의 미래를 모르겠는데..



'나 때는 말이야'가 유효할 때도 있으나,

아마도 앞으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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