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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Jan 25. 2023

어렴풋한 바람->구체적인 꿈

직장맘의 육아일기

자기 계발서를 읽으면 대부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지니 꿈을 향해 나아가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 방법은 저자마다 각자 달리 적고 있으나 맥락은 같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뒤바꾼 책을 만났다고 하지만 나는 그 정도의 책은 만난 적은 없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나를 탈바꿈시킨 책은 없어도, 무수히 많은 책들로 인해 나의 유전자 어딘가가 끊임없이 진화되어 감은 알 수 있다.


즉, 좋은 책들로 인해 '나의 가치와 꿈'이 결정된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 '나의 가치'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깨달았던 것 같다.  


한때 자기 계발서나 현자들의 책을 읽고 나면 책에 적힌 내용 중 한 가지는 실천을 하려 했다.  한 권, 두 권 따라 하다 보니 좋은 습관도 많이 생겼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니,  책들이 전하는 메시지와 행동강령이 비슷한 것이 많아서, '새로운 실천'을 하겠다는 결심보다 독서를 통해 자신을 돌아보고 '꾸준함'이라는 동력을 가지려 했다.  

책을 통해 지적호기심을 채워 즐거운 반면, 갈수록  인생의 의미를 생각하게 해 주어 좋았다.  


자기 계발서를 읽을 때 '이건 나도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이 드는 항목이 있다면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 또는  가치관에 부합한 행동들이 아닐까 한다. 즉 같은 책을 읽어도 실천하고 싶은 항목은 사람마다 서로 다를 수 있다.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사람마다 '실천'하려는 행동이 다른 이유다.


실천에 대한 몇 가지 생각나는 사례를 들어보자면,


임신했을 때 '삐뽀삐보119' 중 '수유 편'을 읽고 줄을 치며 공부한 다음, IT컨설팅을 하며 2년간 완모수를 한 건 전설로 아직도 남아있다. 지금부터 20년 전이기 때문에 IT컨설팅 현장은 상당히 거칠었고, 프로젝트 환경은 수유실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며, 분유가 더 각광받던 시기이기도 했다.  


아이가 태어난 후 '베이비사인'을 읽고 말도 못 하는 아기와 소통을 하려 했고 꽤 많이 해독(?)을 했다. 이때 내가 말도 못 하는 션과 맞장구치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고 같은 엄마인데도 '진짜 (말 못 하는) 아이를 이해하는 거 맞아요?'라는 말도 들었다.


거의 모든 육아 책에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다 보니, 나도 션에게 매일 책을 읽어주고, 책에 둘러싸인 환경을 제공해 줬다.


어릴 때 외국어에 노출시키면 언어를 쉽게 받아들인다고 해서 영어책, 노래, CD 등 끊임없이 접하게 해주기도 했다. 내가 출근할 때마다 베이비시터에게 '오늘은 이 CD 틀어놔 주세요'하며 부담 없이 배경음악처럼 듣게 했고, 퇴근 후 관련 영어동화책을 꾸준히 읽어주었다. 그 효과는 톡톡히 봤다.


아이 키울 때 내가 읽은 책들은 모두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최소 한 가지는 실천했고, 나만의 육아 아이템으로 하나씩 자리를 차지했다.


아쉬운 건, 워킹맘의  롤모델 관련 책의 부재였다. 하늘의 별과 같이 크게 성공한 사람의 책은 간혹 보였으나,  그 업적이 위대하여 감히 따라 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 조차 여성분은 희귀했다.

전혜성박사님 같은 분의 책은 애당초 클래스가 다르다고 생격하여 현실세계에서 일과 육아,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공감대를 느끼기에는 넘사벽을 느꼈다.


이렇게 사회에서 아주 크게 성공한 분들 말고, 가정&일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신 분 중 내가 따라 할 만한 롤모델이 필요했는데 주변에서 찾기 어려웠다. 사회에서 열심히 사시는 분들 곁에는 대부분 '가족의 희생'이 있었다.


반면 한쪽 분야에 성과를 거둔 여성 분들의 책은 꾸준히 등장했다.

첫 번째 유형은 아이를 명문대 보낸 전업주부의 경험담이었고,  또 하나 유형은 사생활은 배제한 체 본인의 전문성을 내세운 직업여성이다.

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신 분들은 책을 내지 않고 조용히 자신의 일을 끝까지 묵묵히 하셨을지 모른다. 어찌 보면 그만큼 두 가지를 병행하기도 어렵다는 반증 같기도 하다.


우리는 '성공'을 꽤 단순하게 구분한다. 


일에서는 '돈'으로, 육아에서는 '명문대 합격'으로..

행복의 조건과 성공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때로는 혼란스러울 때도 있다.

어디까지를 성공으로 볼 것인지, 이 두가 중 어디에 비중을 둘 것인지는 내가 '어떤 가치를 우선'으로 두느냐에 따라 크게 다르다.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돈이 많다고 성공으로 보기도 어렵다.

한 가지를 제대로 하기에도 어려운 상황에서 사회에서의 성장과 육아, 이 둘의 어느 지점에서 줄타기를 해야 하는데 '좌절'과 '포기'를 하고 아예 한쪽 손을 놓아 버리기도 한다.  이건 '상황'의 문제이지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래서 나 역시 '누군가'가 이것과 유사한 상황을 견뎌낸 사례를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오래전 일이 하나 떠오른다.


션이 유아 때였다. 시중의 육아/교육책은 거의 다 섭렵하던 중이었다. 읽다 보니 대학입시 경험담을 쓴 학생들의 책들까지 읽게 되었다.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미국 명문대에 입학한 학생들의 책이 잠시  나온 적이 있었다. (그 이후에는 이런 학생들의 수기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때 하버드에 입학한 A학생의 책을 읽고 친한 B동료에게 이야기를 해 준 적이 있다. "A학생 정말 대단해요, 어린데 어쩌면 이렇게 열심히 살까" 하며 열정과 끈기에 대해 알려줬다.


션이 이제 아장아장 거리며 걸을 때라 션에게 어떤 도움이 되겠다고 읽은 것이 아니라, 원래 독서 습관대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읽게 된 책인데, 어린 학생이지만 배울 점이 참 많다고 느꼈다. 션이 이런 학생처럼 자랐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고, 이렇게 어린 학생도 꿈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니 나도 심기일전해야겠다 생각했다.


나는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당연히 모든 사람이 나처럼 생각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은 B동료는 "(그 학생) 사는 게 너무 힘들어 보이네, 그렇게 까지 악착같이 해야 해요?"라고 말한다.


이 사소한 대화가 머리에서 때앵 하고 종을 울렸다.

이 온도차는 무엇일까.

내가 이 책에서 느낀 것은 포기하지 않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릿과 회복탄력성이었다. 반면 B동료는 자기 학대에 가깝다고 보고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면 뭐가 좋냐는 말도 곁들인다.

같은 영화를 보고 누구는 눈물을 흘리며 감동을 했다면 누구는 '지루해서 혼났네' 정도의 차이다.


누가 맞다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의 차이를 제대로 느꼈다.


B동료의 아이들은 션보다 몇 살 더 많은 여아들이다. B동료는 아이들은 알아서 크면 되고, 자신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에 더 관심이 컸다.  가족들이 과도하게 열심히 하려다 삭막하게 살바에야 성공은 자신이 하고, 아이들은 예쁘게 자라주면 족하다 했다.


그로부터 십수 년이 지났다. 그 기간 동안 주변을 바라보니 '일 할 때 모두가 열과 성의를 다 하는 게 아니었고', '아이를 키울 때 모두가 정성을 다 하는 게 아니었다.'

사람마다 일과 육아를 임하는 에너지의 총량도 달랐고 둘 사이의 비중도 달랐다.


나와 B동료는 여전히 각자의 길로 걸어왔고, 이제 아이들은 모두 대학생이 되었다.  


저 책 한 권이 우리 둘의 인생에 영향을 준 것은 없다. 그런데 같은 책을 두고 서로 다른 생각을 한 우리의 십수 년간의 행보는 재미있게도 당시 대화 내용과 닮아있다.  


뒤돌아 보니 우리들이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는지 이미 오래전 결정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세월이 가면서 둘 다 진화 발전을 하긴 했으나 우리의 '가치관'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이전에 이미 결정되어 있었고 크게 바뀌지 않았으며, 그것이 무엇인지 우리 스스로 몰랐을 뿐이다.


크고 작은 선택의 순간, 우리들은 자신도 몰랐던 가치관에 따라 결정을 해 왔다. A학생을 기특하게 여긴 사람과 다른 가치를 중요하게 사람은 십 수년 후, 각자 자신이 바랬던 모습과 비교적 유사해져 있었다.


나 같은 경우 밤샘을 해도 우선적으로 아이와 눈을 마주치려는 스타일이라면, B동료는 일단 휴식을 취하고 기운을 회복한 후 좋은 에너지로 아이와 대하는 주의다.


오래전 명문대 합격한 대학생들의 책을 읽을 때 감히 션이 그런 학교에 입학하리라는 상상은 하지도 못했다. 미국에 있는 대학에 보낼 생각 자체도 없었다. 워낙 어리기도 했고 나도 딱 세 살짜리 아이를 둔 세 살 된 엄마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 후 어떤 선택의 순간마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해온 나의 행동은 아마도 션이 좋은 교육환경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그리 프로그래밍이 되어 갔던 것 같다.


B동료는 대화를 나눈 대로, 아이들에게 어떤 욕심을 부리지 않고, 아이들도 무난하게 자랐다. 대신 자신의 사회적 지위는 차곡차곡 쌓아서 원하는 위치에 올랐다.


우리 둘 다 자신도 모르게 원하는 방향대로 행보를 나아갔고 지금, 우리 둘 다 큰 후회 없이 잘 살고 있다.


"꿈꾸면 이루어진다." 

이 말의  의미를 매 순간 다시 생각해 본다.  


우리 둘을 보면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달려간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모호하긴 해도 '어렴풋한 바람'은 있었다. 그리고 그 '어렴풋한 바람'이 사라진 적은 없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의외로 '어렴풋한 바람'에 맞혀서 결정이 이루어졌다. 그 '어렴풋한 바람'의 끝에는 스스로도 몰랐던 '가치, 비전, 꿈'과 닿아있었다.


돌이켜 보면 자기 계발서, 멘토들이 나의 꿈을 결정 지어 준 것이 아니었고,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조력자들이 되어 주었다. 이 조력자들의 말을 듣고 행동에 옮겼을 때 '어렴풋한 바람'은 '구체적인 꿈'으로 점점 명확해진다. 


그래서 꿈이 없어도 그리 조급할 필요가 없다.

최소한 '행동'을 옮길 줄 아는 사람은, 나의 어딘가에 이미 내가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관이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증거니까.


행동에 옮기지 않는 사람도 절망할 필요 없다.

오늘부터 작은 행동 하나를 시작하면 되니까.

그 사소한 행동 내면에는 이미 '어렴풋한 바람'의 씨앗이 뿌려지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게 오늘 내가 선택한 행동이 쌓이고 쌓여서 내가 꿈꾸는 미래를 실현하게 됨을, 우리의 과거를 통해 배운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948898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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