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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지 Aug 26. 2023

워킹맘이라 저절로 된 것, 평정심

직장맘의 육아일기


아이와 절대시간의 부족

그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오히려 키워진 능력이 "깊이 있는 대화"

그리고 저절로 된 것은 "마음의 평정심"


20년 전이니까 이전 IT 프로젝트 상황이라 지금과는 달랐을 때다.

션을 임신했을 때도 10시 이전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고, 션 낳고 나서 5세까지 했던 프로젝트에서 맡은 역할도 컸지만 업무적으로 성장을 했던 때라 이때도 마찬가지였다.

오죽하면 임신했을 때 자주 업무협의했던 분에게 애가 태어나면 (목소리 하도 들어서) 아빠인 줄 알겠다고 농담을 했다. 그래도 배 속에 품고 있을 때는 내 몸만 건사하면 되었지, 태어나서 배밀이하고 걸어 다니고 말을 하고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는 시기가 되니, 션과 함께하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안타까운 적이 많았다.


누구나 그러하듯 아이를 어떻게 키우는지 기본조차 없고 주변에 다 일하는 사람들 뿐이니, 육아서를 통해 기본 지식을 섭렵해 가고 한 가지씩 실천에 옮겨보곤 했는데 '물리적으로 아이와 시간'이 너무 짧으니 책에서 말하는 '기본'을 못 지켜서이다. 아니 얼굴을 봐야 스킨십을 하건, 말을 걸어주건 할 게 아닌가.

당시에는 전반적으로 야근에 대한 여러 압박이 있었다. 그때 저녁 먹고 들어와서 시간을 때우고 가는 사람들도 많아서 실제로 일의 퀄러티를 높이고자 남아 있던 사람과 뒤섞여 있었다. IT 프로젝트도 지금은 야근에 대한 압박은 많이 줄었다. 나는 여전히 자주 야근을 하고 있지만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 대다수는 과거와 비교하면 일찍 퇴근한다.


문제는 좋아서 남아서 하는 '일'이지만 집에는 엄마만 기다리는 '어린 션'이 있었던 것이다. 늦게 집에 도착해서 부랴부랴 안아주고 놀아주고 책을 읽어주고를 하긴 했으나 당시에는 항상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절대시간의 부족'에 대한 죄책감이 컸다.

션이 유치원에 가고 학교를 입학하면서 드디어 '다른 집'과 비교가 되면서 자괴감이 들 때가 자주 생겼다.

다들 섬세하게 아이들을 케어하는데, 나는 하루 종일 션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세히 알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그 어린 션이 "어머니,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생각을 하며 하루를 보냈나이다."라고 말할 리도 없다. (늙은 션도 저리 안 했다.)


내가 택한 것은 하루 1시간이라도 집에 가면 온전히 션에게 집중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였는데, '절대시간 부족'이 아이의 정서와 발달에 미치는 부분은 너무 궁금했고 때로는 불안했다.


'화장실에서 유축해서 2년간 완모수를 했다, 새벽까지 책을 읽어줬다, 주말이면 집에서 엄마표 놀이를 하고 여러 경험을 하러 데리고 나갔다,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려고 애썼다.'

이런 무용담 같은 글들이 내 블로그 곳곳에 있는데, 때로는 '절대시간 부족'을 기교로 때우려는 엄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으나, 이거라도 잘 하자라는 생각이 더 컸다. 다행히 이 과정이 즐거워서 계속 자가발전을 할 수 있었다.

힘든 업무는 육아로 풀었고, 육아가 힘들면 업무로 풀었나 보다. 둘 다 사랑하고 재미있는 일이니 그랬으나 하루가 참 벅찰 때가 많긴 했다. 체력 소모도 컸고. (그래도 그때는 젊었고 긍정적인 성격이라 어찌어찌 해나갔나 보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일터를 떠나는 분들이 더 늘어나기도 했고 일과 육아를 끝까지 해 내신 분들 경험담을 들을 수 있을까 하며 주변을 둘러봤으나 지금 기준으로 또 옛날이니 거의 찾기 어려웠다.


초등학생이 되면서 엄마로서 가지는 불안감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곤 했는데 다른 이유보다 '아이 친구 엄마'들의 대거 등장 때문이었다. 어릴 때일수록 엄마 교류가 아이들 친구 간 교류로 이어지고, 좀 자라니 대회 나가보면 엄마들의 세심한 배려가 장난 아니었다.

내가 션을 바라보고 키우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육아책'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이상적인 것 같기도 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다들 팀을 짜서 공부를 시키고 좋은 선생님 섭외해서 다음 레벨 올리고 하는 모습들인데, 그 물결에 올라타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항상 고심했었다.

결국 내가 택한 건, '탈 노선'이었는데 아마도 내가 살자고 그랬을 것이다. 션만 바라보면 너무 즐거운데 주변까지 확대해서 보면 뭔가 조급해지기 때문이다. 엄마들을 만나서 주변의 정보, 교육의 정보를 들을수록 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 같아서 월요일 출근길이 오히려 더 나을 때도 있었다.


'탈노선' 후 본격적으로 션 맞춤형으로 진행하니 마음이 편해졌으나 고3까지 션과 함께 하지 못한 '절대시간의 부족'에 대해서는 나도 은근 걱정을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애착관계 형성이 중요한데, 션이 엄마를 워낙 좋아한 탓인지 내가 워낙 야근, 철야가 심해서 가끔 션이 어릴 때 분리불안이 오곤 했다.

그래도 자라면서 일하는 엄마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꽤 생기면서 응원을 많이 해 주었고, 더 자라서는 자기는 아이 태어나도 엄마처럼 못하겠다는 극찬 아닌 극찬도 했다. 다행히 션의 정서적 안정감은 여러 차례 고비를 겪을수록 의외로 탄탄하고 안정적으로 잘 자리 잡았다. 그 덕에 현재 미국에 가서도 너무 잘 살고 있다.


지금까지도 여전히 짧은 시간이라도 션과 대화에 집중했고 단순히 '일상 대화'만으로는 션의 생각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우리 가족의 대화 주제는 넓기도 하고 깊기도 했다. 여러 이야기를 통해서 가족 서로 간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 특히 션은 매년 몸도 정신도 자라는 단계이므로 '어제의 션'이 '오늘의 션'이 아니다. 오늘은 또 '어떤 션'인지 새롭게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다.


엄마와 아이는 특별한 관계이다 보니 아이에게 '감정이입'을 하기 쉽다. 아이 싸움이 부모 싸움이 되는 경우 중 상당수 이유가 아이와 주변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보다 아이의 렌즈에 맞춰서 보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크다.

'자신에 대한 객관화'도 어려운데, '아이에 대한 객관화'는 더욱 어려워서 꽤 오랜 훈련이 필요하다.

아이와 대화는 엄마와의 좋은 관계를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엄마와 아이를 제대로 분리시키고 각자 모두를 객관화하는데도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곡해하거나 섭섭해할 일이 생긴다.

이때 '피상적인 대화'로는 깊이 있게 알기가 어렵다. 자연스럽게 대화의 폭과 깊이를 넓혀 나가야 한다.


워킹맘이라 그 순간순간 아이가 하고 싶은 말은 놓칠 수밖에 없으나, 워킹맘이라 짧은 시간 대화에 집중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일터 이야기도 많이 해 주기도 하면서 션도 자연스레 배운 것도 있을 것이다.


'대화'를 제대로 하는 것에는 노력이 필요했으나, 워킹맘이라 저절로 된 것 한 가지를 꼽으라고 하면 '마음의 평정심'이다. 아이와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다 보니 야단칠 일이 생겨도 퇴근 무렵이면 '이성'을 되찾는다. 낮에 이미 열은 있는 데로 받아서 주변 누군가에게 발산을 한 것도 이유지만, 시간이 지나다 보니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떡할 거야' 하고 반은 포기하게 된다. 그렇게 집에 가면 또 하루 종일 엄마 못 보고 기다린 게 짠하기도 해서 '다음에는 조심하자' 하고 넘어간다. 사안이 크거나 반복될 것 같으면, 눈을 맞추고 이성적으로 알아듣게 이야기하고 끝낸다.

(낮에 이미 헐크가 되었다가 돌아와서 가능함)


션이 중1 때인가 제주 학교에서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마침 방학을 시작할 때여서 우리 부부 내려가서 함께 제주 여행을 하기로 했는데 방학하는 날 선생님께 연락이 왔었다. 내용을 들어 보니 친구들과 장난을 쳤는데 이게 걸린 거다. 션은 엄마, 아빠에게 혼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둘 다 쿨하게 '규칙은 지켜야지' 하고 넘어갔고 이때 상당히 즐거운 여행을 했다.

나는 이 일을 다 잊었는데 얼마 전 겨울 방학 때 션이 이야기해 줘서 알게 되었다. '잔소리의 효과'에 대해 물어보던 와중에 저 이야기를 션이 해 줬다. 혼날 줄 알았던 여행이 너무 즐거운 여행이 되어서 좋았다나..


그나마 서울에 함께 있을 때는 퇴근하고 나서라도 봤지, 션이 제주로 간 이후는 '물리적 거리감'은 더 심해졌으니 '마음의 평정심'은 도 닦는 수준이 되었다.


만약 항상 가까이 있었다면, 애당초 실수나 잘못을 하지 않도록 '미리' 선제적으로 케어를 할 가능성도 높았을 것 같다. 아이의 취약성이 나타나는 곳은 미리 멀리했을 수도 있다.

엄마가 직장에 다녔기 때문에 션은 비교적 자유로운 생태계에 놓여 있었고 그 속에서 다른 아이들 보다 조금 더 일상에서 겪을 경험을 했다. 이런 경험은 우리가 어릴 때 기본적으로 겪는 경험으로, 오히려 독립심과 자립심을 키워줄 수 있다. 어찌 보면 미리 바리케이드를 치는 것보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나았다.


아이와 함께 있으면 실수에 대해 그 시점에 바로잡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은근히 '하지 않아도 되는 시시비비, 잔소리'를 하는 경우도 많다.

사무실에서 "얜 왜 이런가 몰라요" 하며 말하면 반응이 (특히 남자들) "별일 아니구먼"이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자신들은 더 사고 치고 다녔다는 둥, 그 정도 안 하면 애가 바보로 크지라는 둥. 야단칠 일이 아니라 쓸데없는 걱정이라는 둥. 처음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생각했다가 아이가 크면서 사춘기 맞이하고 고등학생, 대학생이 될수록 상당수 맞는 말이었다.

특히 '아들'의 경우에는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배우는 게 더 많아서...


돌이켜 보니 엄마가 일해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어느 정도 션 스스로 자율성을 가지고 자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나도 꽤나 쿨한 엄마가 될 수 있었던 것 같다.

핸디캡 같은 워킹맘 조건이지만 좋게 해석하면 좋은 점도 있다.


https://blog.naver.com/jykang73/2229979227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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