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빈 Aug 28. 2023

아버지라는 사람

아버지라는 사람

   

             들숨에 코털이 빳빳해지는 겨울 새벽 현관문 초록 주머니에 200ml 비락우유를 넣어두던 사람, 하루 걸러 밤을 새우고 돌아와도 낮잠 한두 시간에 집을 쓸고 닦던 사람, 8년 만에 장만한 흰색 티코를 10년 넘게 타던 사람, 좁은 방에서 성경과 불경과 오쇼 라즈니쉬의 책을 읽던 사람, 복권방에 들러 당첨 복권 대신 복권방 사장님을 얻었다며 행복해하던 사람, 술 취한 여름밤 맨발로 공원을 걷고 보름날마다 달 보라며 전화를 걸던 사람, 서른다섯 해 동안 딱 한 번 내 앞에서 서럽게 울었던 사람, 환갑도 한참 전에 머리가 세기 시작한 사람, 나보다 서른다섯 해 먼저 태어난 사람, 부쩍 야윈 팔을 들어 보이며 아직 기운이 세다며 허허 웃는 사람,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    


그가 나를 사랑하느라 잃은 것들을 먹고

나는 무럭무럭 자랐다

어떤 일은 다만 어떤 일로만 남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