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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김현영 Jun 08. 2021

“공군은 그래도 나은 상황”이란 말

한겨레 세상읽기, 2021.6.8.

공군 부사관 성폭력 사건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도된 바에 따르면 ㄱ중사는 야간근무를 바꿔서라도 회식에 참여하라는 지시를 받고 참여했다가 선임 ㄴ중사에게 강제추행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는 상관에게 바로 피해 사실을 신고했으나 제대로 된 지원은커녕 조직적 은폐와 회유, 압박 등에 시달렸다. 공군본부 법무실에서는 피해자 신상정보를 유출하고 외모 평가까지 했다는 증언까지 나오고 있다.


피해자 사망 후에도 피해는 끝나지 않았다. 국민의힘 이채익 의원은 전익수 공군 법무실장에게 자료를 받아 피해자의 신상정보가 포함된 보도자료를 뿌렸다. 가해행위는 조직적으로 은폐하고 피해자 신상정보는 조직적으로 배포된 것. 점입가경이 아닐 수 없다. 2013년 노 소령에 의한 육군 대위 성폭력 사건 이후 국방부에서는 몇번이나 전면적인 변화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대책이 발표되었고 피해 지원 체계와 가해행위 처벌 규정이 정비되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경우에는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매뉴얼은 유명무실했다. 시스템이 만들어지지나 않았다면 기대라도 하지 않았을 텐데 신고한 피해자는 얼마나 절망했을까 싶다.


사건이 보도된 이후 며칠 지나지 않아 공군에서 남성 부사관이 여군을 상대로 불법촬영을 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는데도 수사계장이 앞장서서 사건을 축소한 정황이 드러났다. 삼군 중에 성평등과 관련해서 가장 선진적인 조치를 한다고 자랑하던 공군이었는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일까.


“공군이 그래도 가장 나은 상황입니다.” 군대 내 성폭력 문제에 관해서라면 실태조사부터 정책제안, 교육기획 등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해오면서 여러번 들었던 얘기다. 현장에서 피해자를 상담하고 사건을 지원하는 담당자의 말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저 말을 ‘공군은 육군과 해군에 비해 여군 입지가 상대적으로 나은 편인가 보네’ 하고 별생각 없이 흘려들었다. 2018년 상반기 국방부 성범죄 특별대책 티에프(TF) 민간 전문위원으로 참여할 때 공군 양성평등센터에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도 지휘관 입에서 비슷한 말이 나왔었는데 나중에 다른 곳에서 교육생으로 만나게 된 현장의 실무담당자는 저 말이 무척 싫다고 했다. 공군이 그래도 제일 낫다는 말 때문에 뭐 하나라도 하기가 더욱 어렵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문제를 ‘진짜’ 해결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사건이 하나라도 줄어들기를 바라지 저렇게 말하지 않는다. 저런 비교우위 마인드의 상급자가 있는 조직일수록 사건을 덮고 뭉개는 은폐가 조직적으로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피해자의 신고가 얼마나 큰 용기였던 걸까. 


미투운동 직후였던 2018년 상반기 국방부 성범죄 티에프 활동 당시에 군대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신고 건수는 예상보다 많지 않아서 제대 군인에게도 신고를 받자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피해를 드러내는 것 자체의 어려움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당시 모여 있던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신고 채널을 다양화하고 민간 전문가들이 투입된 결과 군대 내 성폭력 신고는 늘어났다. 하지만 군사법원의 판결은 가해자에게 관용적인 모습, 즉 제 식구 감싸기라는 악습을 벗지 못했다. 그렇다고 피해자에 대한 보호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진 것도 아니다. 고등군사법원의 판결문에는 피해자를 추적할 수 있는 주변 정보들과 관련자들의 인적사항이 고스란히 공개되어 있다. 


2017년 해군 대위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섣불리 신고했다가 자신에게만 불명예로 남을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속앓이를 하다가 반복된 행위를 중단시킬 만한 수단을 결국 찾지 못하고 비관한 경우였다. 적어도 이런 사건들이 발생한 이후에는 피해자가 신고하는 편이 신고하지 않는 것보다 나은 선택이 되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래야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조금이라도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2021년 공군 중사의 자살 사건을 통해 신고해도 바뀌지 않는다는 경험이 하나 더 쌓이고 말았다. 너무나 안타깝다. 사고가 발생했다는 것 자체로 인사상 불이익을 받고, 기강 해이라는 말로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지 않고 비난하는 군 조직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성폭력 범죄 발생률 자체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문제 해결을 위한 시스템이 얼마나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에도 또 그러다 말겠지’,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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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998478.html#csidx2095bc31e5fcc899b11d8b327332e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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