쫄보의 여행기
2019년 6월 10일
낯선 것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떠난 여행임에도 여자 혼자 여행하는 게 쉽지 않음을 새삼 더 느끼고 있다. 자동차 경적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쫄보가 미얀마라니..
현재 미얀마는 비수기라 한국인도 외국인도 많이 보이질 않는다. 내가 중학교쯤에 간혹 외국인이 지하철을 함께 타면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는데 그때 나뿐만 아니라 지하철에 탄 모든 사람들이 곁눈질로 외국인을 쳐다봤던 시절이 있다. 그때 그 외국인의 부담스러운 마음을 미얀마에서 똑같이 느끼고 있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면 느껴지는 시선들과 혼자 밥을 먹으러 식당에 들어가도 종업원들 및 손님들이 모두 힐끗힐끗 쳐다보고 가끔은 음식도 시켜주는 경우가 있다.
치앙마이에는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있어서 현지인 식당에서도 나의 존재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공기 같은 존재인데 만달레이에서는 유명인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과도한 관심은 쫄보인 내게 직감적으로 조심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이 스멀스멀 들었다.
만달레이 외곽의 관광지를 보려면 택시 투어를 해야 하는데 보통은 가격을 n/1 하고 또 안전을 위해서는 동행을 구하는 게 필수이다. 이래저래 동행을 구해보려고 노력했는데 비수기라 찾기가 어려워서 포기하던 찰나에 운명적으로 한국인 여자 세 분과 디돗폭포 투어를 함께 하기로 했다. 투어를 하기 전날 밤 우리는 간단하게 맥주 한잔을 하기로 했다. 여자 세분은 함께 온 일행이라 그분들 계신 숙소의 바에 가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다. 방콕 루프트탑 바에 대적하는 만달레이 루프트탑 바에서 서로의 소개 및 여행 이야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놀다 보니 어느 순간 11시가 되어 마무리를 하고 택시를 타기 위해 1층으로 내려왔다. 마침 택시가 있길래 가격을 묻자 4000짯 (3,500원)을 달라고 했다. 4000짯은 보통 가격보다 2배는 비싼 가격이었다. 가격으로 한참을 실랑이하다가 서로 기분이 상해서 언니가 그랩을 부르자고 제안을 했다. 그랩으로 가격을 알아보니 2400짯이라 바로 그랩을 불렀다. 그런데 실랑이하던 택시 운전사가 "Hey Hey " 하면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모르는 척 무시했다.
사건은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우리가 부른 그랩은 호텔 앞 우리가 실랑이를 벌인 그 택시(오토바이 개조 택시)였다.
멋쩍은 척 언니가 택시기사에게
“you are very funny guy”라고 했다.
그때 택시기사가 젊은 편이었는데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나는 선택권이 없어서 찜찜한 마음으로 택시에 올라탔다. 일행 분들이 머무는 호텔의 바에 간 거라 나만 숙소로 돌아가면 됐었다.
구글맵을 켜고 가는데 한 5분 정도는 큰길로 잘 가는 것 같았다. 근데 나머지 10분은 공포의 10분이었다. 잘 가던 큰길을 놔두고 갑자기 골목길로 턴을 하는 순간 나는 누가 등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서늘했다. 만달레이 골목길은 가로등도 제대로 없었고 칠흑 같은 어둠 속 교차로에서 경적 소리를 내며 가는 택시기사와 나뿐이었다. 가는 길에 택시기사는 친구로 추정되는 무리에게 고개를 까딱거리면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게… 나를 납치하자는 신호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경적을 주기적으로 울리며 운전을 하는 기사 뒤에서 나는 무서워서 내 위치를 서울에서 한참 자고 있는 친구들에게 보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점점 공포감이 극을 다다를 때쯤에는 나는 친구와 통화하는 척 연기를 했다. 한참 연기를 하다 보니 무사히 숙소 근처에 도착을 했다. 근데 도착과 동시에 기사분이 침을 뱉었는데, 거의 물을 뱉듯이 뱉은 침 색깔은 빨간색이었다. 나는 이 사람이 피를 토한 건가 아니면 약을 한 건가 싶었다. 이 위협적인 행동을 한 직후 택시 기사는 2400짯이 아닌 처음 나와 실랑이를 하던 4000짯을 달라고 했다. 나의 공포감은 극에 달에 지갑에 있는 돈을 다 주고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어 4000짯을 지불하고 서둘러 숙소를 갈려는데 택시기사가 내 숙소가 오른쪽이라고 했다. 실은 내 호텔은 왼쪽이였고, 이미 구글맵으로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터라 바로 왼쪽을 향해 전력 질주해서 숙소로 돌아왔다.
나중에 일행들에게 빨간 침에 대해서 물어봤는데 , 그 빨간 침의 근원은 미얀마 사람들의 담배 꽁야라는 것이었다. 나무 열매와 잎사귀를 감싼 것을 계속 씹으면 빨간 물이 나오는데 이걸 뱉어내고 계속 씹는 거라고 한다. 일종에 각성 효과가 있는 미얀마식 담배로 보면 된다고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 꽁야를 씹고 빨간 물을 뱉는 것인데 나에게는 공포의 빨간 침이었다.
미얀마는 아직 개방된지 얼마 안된 나라로 여행객 한명이 사라지더라도 이상할게 없는 곳이다. 미얀마 사람들 대부분이 순수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기에 나는 스스로 나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오늘의 경험으로 나는 절대 저녁에 혼자 택시를 타지 않기로 다짐했다.
이런 여행의 경험치들이 앞으로 예상하지 못한 당황스러운 일들도 금세 딛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이 될거라 생각하면서 스스로 다독이며 내일 갈 아름다운 디독폭포를 볼 생각에 놀란 마음을 다독이고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