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디독폭포
미얀마에 와서 다양한 일들이 한꺼번에 닥치고 있어서 정신을 못 차리는 나날들이다.
끊임없이 뭔가 닥치는 일이 여행이고, 인생인 것 같다. 기분 좋은 일이 일어날 것 같은 곳에서 가장 슬픈 일이 발생하고 그 길 위에서 자꾸 방황하고 배우면서 내가 현실에서 느끼는 감정들에 크게 일희일비 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오늘 내가 겪은 가슴 아프고 힘든 일이 기록으로 남기지 않아도 진하게 내 가슴 속에 남을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제일 기대한 곳 중에 하나인 디독폭포를 가는 날이다. 어렵게 구한 한국인 동행들과 택시 셰어를 하여 함께 이동하기로 했다. 내 동행은 언니 한 명과 두 명의 동생들이었다. 잘 맞는 동행을 찾기가 어려운데 코드가 너무 잘 맞았고, 동남아 여행에 빠삭한 사람들이었다.
미얀마라는 나라 그렇다. 아직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동남아이고 비행기편도 많지 않아서 시간을 내지 않으면 쉽게 오기 힘든 나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동남아를 모두 방문하고 마지막으로 오는 곳이 미얀마라고 들었다. 나도 동남아 마스터쯤 된다고 보면 될까? 훗
우리들은 모두 사는 곳은 다르지만 미얀마의 보석 같은 이 블루라군 "디독폭포"를 보기 위해 멀리서 왔다. 만달레이에서 디독폭포까지 약 1시간 30분 정도가 걸렸고 비포장도로가 많아서 약간의 멀미도 했다. 디독폭포로 가는 산 입구에 도착해서 또다시 30분가량 등산을 해야 했다. 샌들로 올라가기는 너무 자잘 자잘한 돌도 많고 산길이 가파라서 등산화를 신고 올라갔다. 등산화를 신었음에도 미끄러웠다. 내 옷이 땀에 흠뻑 젖었을 때쯤 디독폭포의 모습이 보였다. 그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때 마침 선선한 바람이 불어옴과 동시에 젖은 내 옷을 말려주었고, 뜨거웠던 햇살은 따뜻한 햇살로 바뀌어 디독폭포를 아름답게 비추고 있는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이 디독폭포에서 신나게 수영을 하고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 젊은 스님 무리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모두 어울려서 각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우리 일행도 각자 수영할 사람은 튜브를 빌려서 수영을 하고 나는 언니와 함께 디독폭포를 배경으로 한 돌 위에서 한참 사진을 찍었다. 허리도 곧게 피고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면서 인생 사진 남기기 열중할 때였다.
주변의 공기는 순식간에 긴장감으로 가득 찼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너무 소름이 끼치고 무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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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속에서 의식을 잃은 남자 스님을 끌고 나오는 무리가 있었다. 이미 의식을 잃은 스님은 얼굴도 파랗고 손도 파랗다. 10명 -12명 정도 되는 스님들이 돌아가면서 심폐소생술을 시작했고, 다른 동료 스님들을 다리를 주물렀다. 제일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이 소리를 지르면서 각각 스님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는 듯했다. 계속되는 심폐소생술에도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오랫동안 물에 있었던 거지?
오래된 심폐소생술에도 반응이 없자 다른 동료 스님이 의식 없는 스님을 안고 자리에서 뛰었다. 보통은 사람이 무언가를 먹고 목에 걸렸을 때 하는 건데 물을 뱉어내게 하고 싶은 간절한 스님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하는 듯했다. 머리가 앞 뒤로 계속 흔들거렸고 목이 마치 부러질 것만 같았다.
주변의 모든 관광객들은 말을 잃었고, 조용하고, 엄숙하고, 공포에 질렸다. 한 사람의 생사의 기로를 지켜본 적이 얼마나 많을까 싶다. 나 또한 이런 사고를 보는 것은 내 일생 처음이었다. 동료 스님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님의 입에서 거품이 나왔다. 어느 순간 심폐소생술을 멈추고 산 아래로 내려갈 생각을 한 것 같다.
30분 정도 내려가야 하는데..스님들은 모두 맨발이었다. 등산화를 신은 나도 미끄러웠던 길을 맨발로 빠르게 사람을 들고 이동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그 스님이 운명을 한 것을 짐작했다.
행복으로 가득 찼던 디독폭포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한 시간 정도 다들 물에 들어가지 않고 말을 잃은 체 있었던 것 같다. 그 이후, 사건이 난 줄 모르는 새로운 사람들로 인해 디독포포는 활기를 찾아갔다.
한 사람이 떠나가는 순간에도 예쁜 디독폭포와 새 지저귐 소리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산 사람은 또 살아서 지내고 죽은 자는 그렇게 말이 없고..
나중에 택시 아저씨에게 들었는데, 그 스님 무리는 20살 정도 되는 젊은 스님들이었고 수련을 마치고 1달 만에 휴가를 나와서 물놀이를 온 것이라고 했다.
마음이 미어졌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사람을 본다는 건 이리도 공허하고 무섭고 허무할 수 없었다.
숙소에 6시쯤 돌아왔고, 다른 일행들은 바간으로 넘어갔다. 나는 타이레놀 한 알을 먹고 늦은 잠을 청했다.
미얀마 간 후, 연락 및 블로그 인스타에 소식이 없어서 걱정하는 내 지인들이 많았다.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고 속상한 마음을 나누며 놀란 내 마음을 위로받고 싶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면 내가 더 힘들어질 것 같아서 다시 약을 먹고 잠을 청해보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