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푸신 파고다
바간은 37도의 뜨거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해가 중천에 뜬 12시 이후는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는 숨이 턱턱 막히는 기온이라 오전에 활동을 하기로 했다.
오전에 바간 내에서 벽화가 잘 보존되어있는 사원으로 유명한 술레 마니 파고다를 갔다.
역시 사람마다 개인의 취향이 있는 것 같다. 멋있고 아름다운 곳임이 분명했지만 또 다른 멋진 사원이군 하며 감흥이 크게 오지 않았다.
다음으로 찾아간 곳은 신푸신 사원이었다. 유명한 사원은 아니었다.
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이고 논을 지나서 깊숙한 곳에 위치한 곳인데 해지고 나서는 못 갈 위치 같았다.
한참 이바이크로 달려서 도착했을 때 신푸신 파고다에서 풍기는 평화롭고 화사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관광객은 보이지 않았고 소수의 미얀마 사람들만 있었다. 미얀마 사람들도 커플이었다. 아마 숨은 데이트 코스임에 분명했다.
털썩
시원한 바람과 새소리를 들으면서 주변의 조용한 공기를 느끼기 위해서 앉았다.
내 앞을 지나던 어린 청년이 자신의 그림을 보여줘도 되겠냐며 공손히 물어보았다.
사지 않아도 되니깐 그냥 내가 원하면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늘에 앉아 선선히 부는 바람을 맞고 새 지저귐 소리는 완벽한 음악이고 바로 내가 앉은자리에서 펼쳐진 그림들이란.. 바간 신푸신 파고다에서 펼쳐지는 미술관 여행을 흔쾌히 오케이 했다.
천천히 자신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조심스레 풀어서 보여주는 소년의 표정은 꽤나 진지하고 행복해 보였다.
바간에서는 바간 테크닉으로 그린 그림 스타일이 있다고 한다.
천 위에 모래를 붙이고 말리고 작업을 총 8번 한 후에 숯, 대리석, 꽃에서 얻은 천연 색깔로 그림 작업을 한다고 했다. 총 4일에 걸리는 힘든 수공예 작업인데, 작업을 전시하는 공간이 없어서 직접 발로 뛰면서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판매한다고 했다.
천연 색깔도 아닌 일반 물감과 3번의 층으로 모래 작업을 한 그림은 가격이 훨씬 쌌다.
항상 비싸고 정교한 정성을 많이 들인 작품은 티가 난다.
바로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들기 때문이다.
한 장 한 장 사원 바닥을 소년이 그린 그림으로 채워나갈 때마다 감탄이 절로 나왔고 한편으로는 왜 슬픈 마음이 자꾸 드는지...
유난히 손재주가 많고 재능이 많은 소년이 이 바닥에서 그림을 팔아야 한다는 게 너무 슬펐지만
내 슬픈 마음과는 달리 자신의 그림을 좋아해 주는 나의 모습을 보고 행복해하는 소년이 정말 순수했다.
왜 더 큰 사원이 아닌 이렇게 조용한 사원에서 그림을 파냐는 내 질문에 자신은 손님들에게 강요하고 싶지 않고 여유롭고 조용한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서 차분함과 다정함이 묻어나는 소년과의 시간이 좋았다.
한참을 그림을 보고 나는 구매하기로 했다.
아침에 더위를 피해 잠깐 나온 사원 나들이라 수중에 큰돈이 없었다.
내겐 100달러 이상을 받아도 되는 그림이 비수기라 35달러라고 말하는 소년에게 정말 가격을 할인하지 않고, 그대로 구매하고 싶었지만 30달러밖에 없어서 본의 아니게 할인된 가격으로 구매하였다.
그림을 받고 행복해하자 자신도 행복하다는 소년.
갑자기 미얀마 남자 두 명과 여자 한 명이 우리를 지나갔다.
지나가면서 남자가 무슨 말을 하자 소년이 웃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냐고 물으니깐
“장사 잘돼?”
“그럭저럭”
한껏 멋을 부린 미얀마 남성은 여자 친구와 사원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 소년은 삼촌의 옷을 빌려 입은 듯한 행색으로 바닥에서 앉아서 그림을 팔고 있고
소년의 재능이 너무 아까워서 자꾸 마음 한편이 짠했다.
나는 생각에 잠겼다.
“너 꿈이 뭐야?”
“나는 갤러리를 운영하고 싶어”
갤러리를 운영하고 싶다는 소년의 꿈이 꼭 이뤄지길 바라는 진심 어린 마음으로 소년과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나는 사원을 구경하고 자리를 일어났다.
신푸신 사원은 린린이라는 소년의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뜻밖의 일들이 내 마음을 움직이고 그 나라의 기억들이 새로 입혀지고 채색될 때마다 짜릿하고 따뜻해진다.
린린 나는 널 잊지 않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