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를 한 스물일곱 여름, 쉬는 동안에 종로 파고다 학원에 수업을 등록했다. 대학 시절 유일하게 재밌게 들었던 교양 수업인 중국어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다. 여름방학 기간 즈음이라 학원에는 대학생들로 보이는 어린 학생들로 가득했는데, 그중 나는 당시 상당히 연장자라 살짝 위축되었던 것 같다. 어차피 할 일도 없었고 주 5일로 몇 달을 다녔다. 인생 처음 공부가 재밌다고 생각했던 시기이다. 처음에는 기초를 그다음에는 HSK3급, 4급, 5급까지 순차적으로 취득했다. 하루 종일 공부하는 날도 있었는데 이제 와 생각해 보니 부담이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이걸 잘 못해도 뭐라 할 사람이 없었고, 당장 다음 내 일상에 전혀 타격이 없었던 거였다.
그렇게 그 해 여름, 가을을 보내면서 세상물정 모르던 나는 자격증만 취득하면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빠지게 된다. 대학 때도 자격증 취득하고 전공으로 취업했으니까 당연한 루트일 거라는 망상
그래도 양심은 있어서 전공자들과 대적할 실력은 전혀 아니었기에 살짝 활용을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봤는데, 정말 없었다. 찾고 찾다가 학원 다니면서 익숙하게 봤던 직업인 중국어학원 데스크 업무의 면접을 보러 가게 됐다. 면접관 3명과 나 혼자 면접을 보고 바로 2차로 대표까지 봤었는데, 업무에 관한 얘기를 들어볼수록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겠구나라는 판단이 면접 시간 내내 들었다.
경험으로만 남게 된 면접 이후 시간은 더 지나 겨울은 다가오고 있었고, 지독히 평범했던 나는 쉬는 날이 길어지자 알 수 없는 압박감에 결국 좋아하는 일은 찾지 못한 채 해볼 수 있는 일로 방향을 돌리며 CS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다.
구직 사이트를 둘러보며 크게 자격 없이 해볼 수 있을 법한 직업을 선택한 것이다.
학력, 나이, 경력 그 어떤 조건도 보지 않았고 업무들도 관리적인 일들이 대부분이어서 이력서를 최소로 넣어봤다. 3군데 중에 2군데 연락이 왔고 첫 면접 회사에서 나를 좋게 보셨는지 면접 자리에서 바로 출근 확정 짓자고 하셔서 그러자고 했다. 뒤에 면접도 잘 볼 자신은 없었기에 이쪽 경력을 쌓을 수 있을 때 쌓아보자라고 생각했다. 이 역시 운이 좋았다. (그때 당시에는 판단력이 흐려서 몰랐었는데, 지금의 나라면 '이렇게 사람을 급하게 뽑는다고?' 의심했을 것이다)
주문관리 위주의 업무라고는 했지만, 전화업무가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배달 앱이 없던 그 시절, 치킨 한 마리 먹으려고 해도 전화를 걸어서 주문했던 때에도 난 전화가 무서워 동생에게 떠넘기기 급급했는데 이제 돈을 벌려면 전화를 받기도 걸기도 해야 됐다
사람이 상황이 닥치면 결국에 다 하게 되더라
초반 적응하는 기간에는 다른 분들이 통화하는 멘트나 이런 것들을 메모해 놨다가 그대로 따라 해보기도 했다.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응대가 가능해졌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작은 코스메틱 회사였는데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업무는 많지 않았고 대부분 대리점주 분들의 응대를 하는 일이라 오히려 조금 나았다고 할 수 있었다. 회사의 사정도 어느 정도 알고 이해해주려고 하는 분들이 꽤 많았었다. 전화기에 뜨는 전화번호만 봐도 '아 어디 매장분이시구나'라는 게 떠오를 정도까지 적응했었다.
이렇게 보기에는 계속 다녀도 괜찮을 것 같아 보이지만 소기업에 가까웠고 가족회사였으며, 내 일은 나만 하는 일이었다(입사하고 몇 달 후에 알았다. 내 자리가 몇 달째 공석이었다는 것을) 쇼핑몰들처럼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게 아니라, 폐쇄사이트에 모든 업무 처리를 엑셀과 카톡으로 했었다. 다른 회사로 이직을 생각했을 때 사실상 물경력이라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또한 주방일과 마찬가지로 이 일을 하면서 업무에 대한 궁금함 같은 것은 전혀 없었다. 업무 강도가 높지 않았고 그에 걸맞게 아주 작은 월급이었기 때문에 다녔었다. 난 열정도 욕심도 없었기에 그게 잘 맞아떨어졌던 것 같다. 4년 가까이 이곳을 다녔고 회사생활을 하며 얄팍한 월급을 모아 부모님 도움 하나 없이 결혼도 했다.
여담으로, 결혼하면서 여권도 처음 만들어봤다. 여름휴가나 공휴일이 연달아 붙어있어 길게 쉬는 날이면 회사 사람들은 해외 어디로 여행 다녀왔다 얘기하는 게 부러웠었는데, 결혼 전까지는 비행기 타면 떨어져 죽는 줄 아는 아빠 덕분에 해외여행은 꿈도 못 꿨던 일이다.
결혼하기 한 달 전에 그래도 가족여행은 해야 되지 않겠다며 설득 끝에 처음으로 가족과 제주도에 갔었는데, 정말 가족여행이라는 것을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 기억이 되었다.
코스메틱 회사를 그만두고, 가구회사 CS업무로 이직을 하게 된다. 몰랐었다. CS업무의 끝판왕은 가구분야라는 것을.. 9시 업무 시작과 동시에 전화벨이 미친 듯이 울리기 시작한다. 업무시작하자마 오는 전화는 대게 좋은 전화일리가 없다. 업무시작부터 퇴근 때까지 하루 종일 전화로 욕을 먹는다. '제품이 너무 좋아서, 만족하는 일이 있어서요'라고 오는 연락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걸로 끝이면 차라리 그러려니 하겠지만 가구회사 사이에는 수많은 연결 고리가 있다. 소비자에게서 오는 클레임을 가구 제작하는 회사 사장님과 통화를 해서 조율 또는 제품 문제를 제기해야 하는데 '제품에는 문제가 없다와 고객은 제품이 문제다'라는 간극에서 피가 말린다. 또는 해당 배송기사님이 기분 상하지 않게 잘 말씀드려 빠른 배송이 될 수 있게도 해야 하고 중간 플랫폼인 각종 사이트의 상담사들의 문의와 클레임도 처리해야 한다. 거기에 문의게시판과 채널, 톡톡 등의 상담경로까지 정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야 한다. 내가 미쳤지
퇴직금이고 다 필요 없고 진짜 다시 생각하자 하고 1년도 안 채운 9개월 만에 퇴사했다.
그래도 관련 일의 경력을 쌓아야 하지 않을까 싶어, 전화보다는 대면상대가 오히려 수월하겠다 싶어 마지막으로 관련된 일을 선택했다. 지금 다니고 있는 개인병원의 원무업무. 짧은 기간이지만 가구회사가 워낙 고강도 일이었고 바닥도 많이 봤던지라 할만하겠다 싶었다. 평소 길거리를 다니면 도를 아시냐고 자주 물어보는 말 걸기 편한 얼굴이라 어쩌면 외형적으로 적합해 보였을 수도 있고, 앞 직장들에서 꽤 오랜 기간 근무를 했던 것도 작용을 한 게 채용의 이유 아닐까 싶다.
이직 후 일이 쉽고 수월하다고 할 순 없지만, 바로 전 직장에 비해서는 꽤 덤덤했다. 병원은 특히 이직이 잦은 직업이라 내가 취직한 지 1년이 채 되기도 전에 직원이 다 바뀌었고, 1년 만에 내가 가장 오래 다닌 직원이 되어버리기도 했다. 역시나 퇴사를 할 계기들이 있었고, 그런 계기들을 마주 할 때마다 서비스직으로 한 곳에서 오래 일한다는 게 보통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에 스치기도 했다. 이번에는 정말 그만두면 열정도 가져보고 성취감도 느껴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지라는 마음도 먹었었지만, 현실에 타협하여 여전히 근무하고 있고 어느덧 이곳에서도 두 달 뒤면 만 3년이 된다.
여기까지가 현재의 나
삶을 요약해서 나열해 보니 내가 생각하는 평범, 나라는 사람의 평범함의 정의는
'특별한 재능은 없고 뭘 하고 싶은지도 모르지만 찾는 방법도 몰라 현재의 머무는 사람인 것 같다.
이토록 평범한 내가 과연 진짜 나를 찾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