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때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
하나하나의 일들을 그리 집중해서 하고 있지는 않은데 막상 모아놓고 보니 상당한 에너지가 들었다. 혹시 한곳에 집중해야 하는 에너지를 너무 많이 분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봤다. 다시 생각해 봐도 어느 한 가지를 놓치기에는 아쉬운 점이 여전히 많다. 너무 작은 것에 연연하며 큰 것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한편에서 떠나가지 않는다. 그래도 역시, 다시 생각해 봐도 그 당시의 내가, 그리고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해왔다. 지금 내가 힘들다고 느낀다면, 적당히 잘 끓고 있는 거다.
나는 2030을 조금 더 바쁘게, 4050을 조금 더 수월하게 해내고 싶은 인간이니까. 무르익어갈수록 더 깊은 맛을 내는 사골 같은 인간이고 싶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좀 더 팔팔 끓어도 되지 않나 싶다. 물론 너무 끓어서 타버리면 안 되니 적당한 불조절은 필요하다. 확실히 지금의 온도는 미지근에서 따뜻한 정도 되는 것 같다. 적당히 보글거리는 정도. 어느 정도는 무르익었고 어느 정도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다. 물론 여전히 맛은 이맛도 저 맛도 아닌 것 같기는 하다만. 아주 미약하지만 나는 분명 조금 더 진해졌다.
유난히 무언가 많은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괜히 이리저리 생각해 보니 그렇다. 간병하러 병원에 한동안 있기도 했고, 꽤 큰일 일 뻔했다. 다시 한번 생각해 봐도 천운이다. 지금의 이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어서 정말 다행이다 싶었다. 지금은 모두가 건강하다.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기념일에는 같이 파티도 한다. 한 해의 끝자락에 모두와 함께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행운이다. 그래서 2024년 건배사의 한마디로 모두 건강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역시 건강한 것만큼이나 최고의 소원은 없는 것 같다.
갭이어와 함께 다양한 경험을 했던 2022년이 가장 다양한 경험을 한 한해라고 생각했는데 사회경험을 곁들인 2023년은 훨씬 더 다이내믹했던 것 같다. 거기에 더불어 주변의 상황도 한몫했다. 모두가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이라고 했던가.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자신이 원하던 일인지, 자신과 맞는 일인지를 알아가는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자신도 함께 돌아보게 된다. 나는 어떤 삶을 꿈꾸는가. 나는 어떤 생활 패턴을 원하며 어느 정도의 지인과 어떤 관계를 원하는가.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운가? 나는 지금 만족하고 있는가?
지금 이 삶이 너무 감사하다. 이 생각이 변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오늘도 눈을 뜨고 바라볼 수 있는 세상이 다채로워서 감사하고, 여느 때와 다름없는 겨울내음을 맡을 수 있어서 행복하다. 어제와는 조금 달라진 국을 맛볼 수 있어서 좋고, 가족들과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가벼운 장난을 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따뜻한 방 안에서 이렇게 편안히 글을 적어 내려 갈 수 있는 이 적당한 환경이 갖추어진 곳에 있어서 너무나도 좋다. 난 참 복이 많은 인간이다.
한 가지 남았다. 어떤 일을 하면서 살 것인가. 마냥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은 두렵다. 겁이 많은 인간이기에 돌다리에 남들이 여럿 건너는 것을 한참이나 구경한 이후에야 건너가는 인간이다. 그 와중에도 안전장치를 하나씩 마련한다. 그 정도로 겁이 많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있는 상태에서 도전을 한다. 그런데 또 너무 안전하고 무난하고 평탄한 길은 가고 싶지 않았다. 너무 안정된 길을 걷기에 아직 나는 너무 젊고 도전해보지 못한 것이 많았기에. 그래서 안전을 어느 정도 확보한 상태에서 도전을 하고 싶었다. 도전과 안주라는 상반되는 단어 속에서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내가 택한 것은 그 모든 것에 몸을 감는 것이다. 이 일, 저 일에 줄을 하나씩 엮었다. 감긴 줄의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서있기란 쉽지는 않았다. 그런데 지금 안 하면 언제 할 것인가. 넘어지더라도 지금 넘어지는 게 훨씬 낫다. 그리고 실제로 넘어지는 일도 없이 2023년 한 해를 잘 마무리하지 않았던가.
주변 어른들의 충고를 충분히 받아들이고, 세상은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새기며 사회생활에 임했지만 역시 만만치 않았다. 누가 봐도 사회초년생. 딱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사회초년생 티가 나지 않는, 기본적인 센스가 탑재되어 있고 일을 척척해낼 것을 기대했다면 어느 정도는 맞았고, 어느 정도는 틀렸다. 범주 내에서 어리숙했고, 생각한 범주보다 조금 더 능숙했다. 자기 객관화가 꽤나 잘 되어있다고 여겨졌다.
예상 가능한 환경이 갖추어졌으므로 예상 불가능한 환경 속에도 뛰어들 수 있었다. 새로운 도전이 마냥 두렵지 않았던 것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여 예상 범주 안에 넣은 탓도 있고, 아주 안정적인 환경을 등에 업은 덕분도 있다. 새로운 도전은 숨 막히게 했지만 그만큼 나를 성장하게 해 주었다.
한 해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와서 늘 하던 생각. 나 올해 뭐 했지? 항상 한 게 없다고 느꼈다. 그런데 사실 아니다. 꽤나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고, 새로운 도전에 과감하게 몸을 던지기도 했다. 그래서 연말에 느끼는 피로감을 마냥 무시하지 않고 제대로 직시했다. 나는 많은 도전을 했고, 잘 해냈다. 내가 힘들다고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사실 이 사회를 하루하루 잘 살아나가는 것도 엄청난 도전이지 않은가. 그러니 연말에는 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주기로 했다. 마음 한편이 불안할 정도로 할 일이 생각이 난다면, 그 정도로 급한 일이라면 빠르게 일을 끝내고 멍하니 누워서 눈을 감았다. 잠이 들었다가 깼고, 말똥 한 정신으로 여기저기서 들리는 소리를 들었다. 의식의 흐름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먹고 싶은 음식을 먹었다. 가장 안정된 공간에서 오롯이 하고 싶은 일을 했다. 지금의 이 선택 역시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선택이다.
2023년에서 2024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의 제야의 종소리를 들었다. TV속 사람들과 같이 카운트다운을 했고 2024년을 맞이했다. 제야의 종을 치고, 그 앞에 있는 시민의 핸드폰 속 네온사인을 멍하니 지켜봤다. 그리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아까와 달라질 것 없는 방인데 괜히 달랐다. 해가 바뀌었다. 원래는 이 글도 2023년 마지막 날에 올리려고 했는데 2024년에 가장 처음 올리는 글이 되었다. 그래도 상관없다. 2024년에도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는 거다. 2024년에도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을 위해 노력할 거다. 마찬가지로 힘들 거다. 안 힘들 거라고는 도저히 말을 못 하겠다. 내가 원하는 삶으로 가는 여정이 힘든 것을 어찌하겠는가. 스스로 결정한 건데 스스로 책임져야지. 2024년도 잘 부탁한다. 나 자신. 적당히 잘 끓어주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