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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아지 Jan 25. 2017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

괴테,『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첫눈에 반했다


베르테르는 로테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다. 그녀에게는 이미 약혼자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애초에 그러니까 깊어지기 전에 그만두어야 하는 사랑이 맞는데, 이미 빠져든 감정은 어쩌지 못했다. 괴테는 첫사랑에 빠진 소년 같은 베르테르의 감정을 가감 없이 표현한다. 로테도 베르테르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것은 성애와는 다른 무언가였다. 로테의 사랑은 좀더 깊은, 자신에게 정말로 소중한 사람에게의 사랑 같았다. 한편 로테는 남편 알베르트를 저버릴 수 없는, 도덕을 어길 수 없는 인물이기도 했다.    


그때 이후로, 해와 달과 별들에 대하여 아랑곳하지 않게 되고, 낮인지 밤인지도 분간 못 하게 되었네. 세계가 온통 내 주위에서 모습이 사라져버렸네.    


(이미지 출처 : Pixabay)



젊은 날의 슬픈 사랑


괴테는 제목을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라고 지었다. 비극으로 맺어지는 베르테르의 사랑이니 ‘베르테르의 슬픔’까지는 이해하는데, 굳이 앞에 ‘젊은’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까닭은 뭘까.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람을 너무나 사랑해서 못 견디고 결국에는 자살까지 이르는 일은 젊은 시절에만 있을 수 있는 일인 걸까. 아니면 젊은 나이에 목숨을 끊은 베르테르의 비극성을 강조하는 걸까. 베르테르의 사랑은 누구도 자신의 사랑을 인정해주지 않는 세계와의 대결이었으며, 그의 죽음은 자기파괴적 결말이었다.    


인간이 행복해지고자 하는 바로 그 자체가 도리어 인간을 비참하게 만드는 원천이 됨은 이것 또한 불가피한 법칙이란 말인가?    


결국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이라 해도 아름답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이미지 출처 : Pixabay)



금지된 사랑을 넘어서


베르테르의 사랑을 단순히 ‘금지된 사랑’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복잡한 감정이다. 괴테는 이것을 베르테르의 입술을 통해 말한다. “세상 일이란 ‘이것 아니면 저것’으로 딱 부러지게 결말이 나는 경우는 극히 드문 법일세. 인간의 감정과 행동에는 실로 다양한 변화와 차이가 있는 걸세.” 


또한 자살에 대한 알베르트와 베르테르의 논쟁에서 베르테르는 이렇게 말한다. “요컨대 우리들은 똑같이 그 기분을 알고 난 후에 그 문제를 논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 … 따라서 이 경우 사람이 약하다든가 굳세다든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당하고 있는 고통을 정신적인 면에서나 육체적인 면에서 어느 한도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문제지요.” 해서 금지된 사랑으로 괴로워하다가 자살했을지언정 베르테르를 손가락질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무치는 행복을 이 몸으로 맛보고 그리고 나서 파멸하여 그 죄를 짊어져도 좋다고… 그런데 그것이 어찌하여 죄란 말인가?    


(이미지 출처 : Pixabay)



가는 이의 아름다운 뒷모습


자살, 특히 머리에 총구를 겨누는 식의 자살은 성스러운 죽음으로 여겨지곤 한다. 만일 베르테르가 그만두지 못하고 더 나아갔더라면, 베르테르의 사랑은 불륜 혹은 로테를 불행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을지 모른다. 알베르트는 그가 없던 밤에 베르테르가 찾아왔었다는 말을 듣고는 썩 내켜하지 않는다. 로테는 그의 기분을 살피며 사단이 발생하지 않을까 염려한다. 그리고 알베르트는 베르테르가 쉽사리 총을 내어주지 못하자 의아스런 눈초리를 보낸다. 그는 일부러 베르테르의 손으로 총을 내어주게끔 의도한 듯싶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죽음만을 앞둔 베르테르는 말한다.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으로 내 생애의 모든 소망이 다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로테를 사랑하는 것이 이승에서는 죄가 되었으니, 베르테르는 먼저 저승에 가 숭고한 사랑을 이어가려 한다. 그러니 이 소설의 결말에서는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다만 한 사람의 나그네, 이 지상의 한낱 순례자일세.
그러나 자네들은 그 이상의 존재일까?


(이미지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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