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금반지

"가짜 반지라도 해줄까?"

by 꼭두

가짜 금반지

"가짜 반지라도 해줄까?"


예물 반지 해달라는 예비 동서


충청도 공주 종갓집에 맏며느리로 시집와서 3년간 시집살이 후, 남편 손 잡고 서울로 올라왔죠. 아무것도 가진 것 없었지만 남편만 믿고 올라온 서울이었어요. 참 가난한 시절이었죠.


여러 시동생들이 교대로 혹은 동시에 같이 살다시피 했는데, 큰 시동생이 연애를 시작하더니 결혼을 하게 됐어요. 그런데 시부모님 하시는 말씀이 "우린 아무 능력이 없으니, 너희들이 알아서 잘하거라" 하시더군요.


결혼식 날은 다가오고 곧 첫 동서가 될 신부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데, 신부가 저한테 금반지를 해달라는 거예요.


저야 시골 제 집 마당에서 혼례를 치렀지만, 그 시절 예식장 결혼식 순서에는 예물 교환이 있었잖아요. 신부는 신랑에게 만년필을 건네주고, 신랑은 신부에게 금반지를 끼워주는.


그동안의 집 마당 전통 혼례가 서양식 혼례로 바뀌어가던 시절입니다. 신혼여행이란 말도 그때 처음 생겨났어요. 제법 산다는 사람들이 가던 곳이 온양온천.


손윗동서가 될 저한테 예물 반지를 요구하는 예비 신부. 돈 없는 저로서는 참 난감하더군요. 서운했던 기억이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었구요. 정작 저는 혼례 때 반지 못 받았거든요.


저 혼례 때 우리 어머니가 "아무리 잘생긴 사위라지만 반지 하나 못 해주는 시댁 형편이라니..." 하면서 무척 자존심 상해하시던 기억에 마음 한켠이 울컥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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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라도 해달라고?


저만 쳐다보고 있는 예비 신부에게 말했죠.


"우리 집안 며느리 운명은 반지하고는 인연이 없으니 포기하는 게 맞아. 내가 능력이라도 있으면 해주겠지만, 나도 시부모 도움 하나 없이 결혼해, 지금도 가난한 신혼살림 꾸리며 밥상 차리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


이 예비 동서,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래도 격식은 갖춰야지요."


예비 신부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 신세 한탄하듯 그냥 지나가는 말로 그랬죠.


"그럼 가짜 반지라도 해줄까?"


헛일 삼아 한 말인데 아주 진지하게 답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주세요."


기가 막히기도 하고 한숨도 나오면서 그렇게 그날을 넘기고, 어느 날 동네 시장통을 지나가는데 한 노점상에서 정말로 가짜 반지를 팔더군요.


'이걸 사도 되는 일인가...' 한참을 망설이다 샀어요. 그때 돈 삼백 원을 주고.


삼백 원짜리 가짜 금반지


예비 신부를 만나 "이런 걸 사긴 했는데..." 하며 그 반지를 보여주니, "네, 그래도 좋아요." 하며 얼른 받더라구요. 어려웠지만 그렇게 예식장 결혼식도 잘 올렸어요.


그런데... 그 후 시댁 식구들 모이는 자리에서 결혼 이야기만 나오면, 그 동서가 그러는 거예요.


"난 삼백 원짜리 가짜 반지 받고 시집왔다."


마치 누구 들으라는듯.


그럴 때마다 제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는 거 잘 알텐데.


처음 몇 번은 그냥 넘겼는데 나중에는 도저히 못 참겠더라구요. 대답 삼아 한마디 안 할 수가 없더군요.


"난 가짜 반지조차 못 받고 시집왔어. 그나마 동서가 받았다는 그 가짜 반지 해준 사람이 나 아니야?"


모두 겸연쩍은 웃음을 터트렸고, 그 후 동서도 더는 그 이야기 하지 않더군요.


그렇게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진... 가난했던 시절의 해프닝이죠. 요즘에야 그런 일을 어디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겠습니까.


진짜 에피소드, 기구한 진짜 금반지


실은 저도... 남편하고 힘들게 살던 시절. 혼례 반지 못 받고 시집온 서운한 이야기. 남편에게 가끔 말했었죠.


어느 날 남편이 절 금은방에 데려가더군요. 이쁜 진짜 금반지 끼워주면서 말합니다.


"이제 혼례 반지 못 받은 건 다 지나간 이야기다. 옛날이야기 하며 사는 거야."


나중에 알게 됐지만, 제가 그 이야기 할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돈을 모았더군요. 겉으로는 듣는 둥 마는 둥 하는 것 같았던 남편이 말이죠.


세월이 흘러 시어머니 환갑잔치가 닥쳤어요. 사업을 하는 남편 따라 집안 형편은 좋았다 나빴다 했는데, 꼭 돈 들어갈 일이 생길 때면 형편이 안 좋았죠.


늦게나마 받았던 제 혼례 반지 팔아 시어머니 환갑 반지 해드렸어요.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리는... 아니 손가락 한 마디가 사라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그걸 무척 미안해하던 남편이 굳게 약속합니다.


"장손이 어머니 환갑 반지는 해드려야 하니 별수가 없어서... 환갑 축의금 받으면 새 걸로 다시 해줄게."


그런데 정작 환갑잔치가 끝나니, "그동안 고생하셨어요, 어머니." 하며 남은 축의금을 몽땅 시어머니께 드리네요.


시어머니는 노년을 마칠 때까지 그 환갑 반지와 함께하셨고, 돌아가시면서 결국 제가 물려받았죠. 다시 제 손가락 마디가 살아났어요.


사연 많은 금반지의 운명은 그게 끝이 아니었답니다. 진짜 금반지를 손에 끼운 지 10년 후쯤, IMF로 금 모으기 운동할 때 대한민국에 드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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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인생만큼이나 우여곡절 많았던 제 진짜 금반지의 기구한 사연입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너무 아깝답니다. 어떻게 제 손가락에 돌아온 금반지인데... 김대중 대통령, 미워요.


결국 제 말이 맞았던 거죠.


"우리 집안 며느리 운명은 반지하고는 인연이 없다."


이래저래 저도 '진짜 금반지'하고는 인연 없는 팔자려니 할 수밖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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