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축구할 때도 아이라인을 그린다

전업주부의 화장은 출근과 퇴근

by 끼우

“여자와 집은 꾸미기 나름이야.”

엄마가 말했다. 결혼을 막 했을 때는 흘려 넘겼다. 결혼 후에도 나와 집을 계속 꾸미라는 말이었다. 흘려 넘긴 그 이야기는 반복되었고 켜켜이 인이 박혀 어느새 마음속에서 자리 잡았다. 아이를 가질 때도 낳아서도 일과의 시작은 화장이었다. 선크림을 바르고 눈썹과 아이라인을 그렸다. 남편이 퇴근을 하면 세수를 했다. 주변에 사는 사람들도 내가 화장 안 한 모습을 거의 볼 수 없었다. 보호막은 화장이었다. 육아하며 지친 추레한 본모습을 숨기고 싶었다. (입덧으로 고생할 때는 화장을 쉰 적이 있었다)



내 화장의 역사


대학생 때는 화장을 하지 않았다. 그냥 내가 화장을 안 해도 예쁘다 생각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얼굴은 광활한데 눈은 가운데로 몰려있었다. 몰린 정도가 신동엽과 비슷하다. 친구가 그런 말을 할 때면 기분이 상했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26살부터 화장을 시작했다. 나를 알기 시작한 때다. 친한 언니가 말했다. “너는 나이가 몇인데 남을 생각해서라도 눈썹을 그려!” 유난히 나의 눈썹은 연하고 숱이 적었다. 남들의 시선에 부응하기 위해 눈썹을 그리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때는 모나리자라는 소리도 들었을 정도다. 아빠를 닮아 가운데로 몰린 눈을 커버하기 위해 아이라인의 끝을 눈꼬리 밖으로 올려서 처진 눈을 감당했다.


화장이 지워진 모습에는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 여주인공 얼굴이 떠올랐다. 축구해도 저런 느낌이다. 이미지출처 : blog.naver.com/minak5/221840432


축구하면 화장은 어차피 지워져

10년 넘게 가려온 가면 같은 화장을 지운채로 남에게 맨 얼굴을 드러낸다는 건 나에겐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 내가 축구를 하면서 또 달라졌다. 화장은 눈썹 아이라인까지 완벽히 하고 가는데 땀범벅이 되면 아이라인은 눈 밑으로 내려와 있고 눈썹은 다 지워진다. 다른 회원들은 아이라인까지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지워지니까. 하지 않는다.



화장에 가려진 내 본모습은 무엇일까

화장이 지워지면서 내 가면이 씻겨나간다. 나의 본모습이 드러난다. 그래도 나라는 사람은 변하지 않으니 화장 전후의 모습에 회원들이 놀라는 모습도 없다. 그만큼 나를 많이 내려놓고 내 본모습을 본다. 아이들의 육아기를 벗어난 나는 이제 더 이상 추레하지 않다.

인스타그램에서 보는 화장하고 앱으로 바뀐 내 사진이 마치 나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나는 화장한 화려한 내 모습이 나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화장한 모습이던, 땀에 덜 지워진 화장이던, 다 지워지던 그 모든 모습이 나라는 걸 축구가 알게 해 주었다. 이젠 눈썹이 지워지고 아이라인이 벗겨져도 창피하지 않다. 그게 내 원래 모습이니까. 당당하다.



그래서 오늘도 축구를 가기 전 화장을 한다.



+ 오늘은 둘째가 축구를 하다 발목을 접질러 집에 같이 있습니다. 엄마를 닮아 왼쪽 발목이 약한가 싶어 괜히 미안해집니다. 11월 마지막주에는 유소년 축구대회가 있는데 이 때 나갈 수 있을련지 걱정입니다. 우리 둘째 얼른 나아라!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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