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08 비 오는 축구장 풍경
더운 여름의 찌뿌둥함을 씻어주는 비가 내렸다. 마침 오늘은 장마였다. 비가 내리고 모든 동물들이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 우리는 달랐다. 자연에 굴복할 필요는 없었다. 지능이 있는 동물은 자연을 이용해 건강을 찾는 인간들이었다. 오늘은 지난주의 공식 휴가에 대한 체력 올리기가 목표였다. 오랜만에 나온 여성축구인들은 첫날부터 혹독한 훈련을 시작했다. 달리기를 30분 동안 다른 루트로 뛰었다. 그리고는 체력이 바닥났다.
“오늘 운동 다 해서 집에 가야겠다.”
땀인지 비인지 모를 물이 주르륵 얼굴이 흘러내렸다.
비둘기 여럿이 축구장 캐노피로 비를 피신하러 날아 들어왔다. 마침 시니어분들과의 경기가 시작되는 중이었고 비둘기도 경기 시간을 아는 것처럼 보였다. 비가 닿지 않는 인조 잔디를 비둘기 몇몇이 걸어 다니는 모습을 보니 황당하기도 했다. 사람이 있든지 말든지 상관하지 않았던 당당함에 놀랐다. 그리고 한 비둘기만은 멀리 높은 벤치에 앉아 있었다. 걸어 다니는 무리에 어울리지 않았지만 비둘기 한 마리는 비에 쫄딱 젖어 있었다. 그 비둘기가 우리 모습이었다. 땀인지 비인지 알 수 없는 물로 온몸을 휘감고 운동을 끝냈다.
오 유아 어 홀리데이~ 서치 어 홀리데이
오 유아 어 홀리데이~ 서치 어 홀리데이
분명 축구장인데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코미디에서 누아르 영화로 바뀌는 순간이다. 비 오는 날 안성기와 박중훈이 격투하는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였다. 주먹만 안 날렸다 뿐이지 분명 싸움이었다. 말씨는 날아가 상대방을 찔렀다. 보이지 않는 주먹이 서로를 때렸다.
로 시작된 말싸움이었다.
그 말씨 하나가 불씨를 옮겨 여기저기서 고성이 이어졌다. 단체 패싸움으로 이어질까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유는 여성축구교실 운영시간이 늦게 끝나서였다. 운동장은 제시간에 비웠다. 문제는 주룩주룩 내리는 비였다. 짐을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캐노피 안쪽으로만 한정돼 짐 놓는 자리가 부족했고, 비로 인해 차를 가져온 사람이 많아져 주차 공간도 함께 모자랐다.
여성축구교실이 쓰고 있는 축구장은 2시간씩의 대여 시간이 정해져 있다. 전광판의 시계가 두 시간이 되기 10분 전이면 모든 운동을 마무리하고 5분 전에는 축구장을 빠져나간다. 마무리 운동을 못했을 때도 축구장 안쪽 라인을 벗어나서 하는 게 불문의 규칙이자 서로 간의 예의다. 제시간에 나갔음에도 주차 공간과 짐 놓을 자리에 대한 불만으로 사달이 났다.
싸움 구경이 아무리 재밌다 한들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았다. 싸움의 당사자로 들어갔을 때는 오로지 피해야겠다는 생각과 다들 좋게 좋게 말하면 되는 일을 왜 크게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조용히 불씨가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며 빠르게 정리하고 집으로 달려왔다. 개인 휴가로 2주 만의 운동 시작 날, 개인 휴가 때부터 이어진 비를 감독님은 내가 몰고 왔다고 장난쳤다. 내가 몰고 온 비로 비둘기 손님을 맞이했고 싸움의 불씨가 되기도 했다.
비.
요 녀석 싸움의 핑계가 되지 말아라~!
우리는 운동하는 시간도 모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