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끼우 Jul 18. 2024

35. 우리는 어쩌면 별일이 아닌 일을 별일로 생각한다

20240718 여성 축구인의 부상 취급 정도

‘으악. 멍들겠다!’

공에 맞았다. 그것도 허벅지에. 강한 슈팅이었다. 맞는 순간 느꼈다. 상대편은 강한 슈팅을 했고 하필 나는 골대 앞을 수비했다. 내 왼쪽 허벅지에 공이 맞았다. 처음이었다. 부상으로 이어지는 일을, 정확하게 멍들었음 예측한 일.           


부상으로 이어지는 느낌을 경기장에서 캐치한다    

 

초등학교 고학년 어린이들과 하는 축구 경기. 요즘엔 오른쪽 사이드백에서 수비를 본다. 아이들이 공격할 때 막으려고 들어가는데 이 날따라 몸이 무거웠다. 언제든 몸이 안 무거운 적이 없었으나 유난히 힘이 들었다.(큰일을 며칠째 시원하게 배출하지 못했다. 그래서 대장의 무게가 나를 눌렀다.) 초등학교 고학년 친구들은 나와 키도 비슷하고 공에 힘이 있었다. 경기 중 강한 충격에 부딪히면 ‘이건 부상으로 이어지겠구나’하는 작은 느낌이 든다. 곧 9월이면 축구한 지 2년인데 그 느낌이 이제야 들어맞았으니 나는 얼마나 둔한가.  


         

여기저기 내가 모르는 멍도 있다  

 

경기가 끝난 후 집에 들어와 씻고 허벅지를 보았다. 왼쪽 허벅지에 내 손을 얹었을 때 손 주변으로 푸른색 원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마치 태풍과도 같았다. 맞은 건 가운데였는데 맞은 곳은 멀쩡하고 그 주변이 멍이 들었다. 태풍의 눈도 한가운데는 고요하지만 태풍 주변은 바람이 휘몰아치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이름을 정했다. 이 멍은 태풍고리다.

사실 내 몸에는 푸른 멍이 많다. 얼마 전에는 여성 축구에서 시니어분들과 뛰었는데 오른쪽 광대뼈 쪽이 얼굴을 씻을 때 아팠다. 그리고 아주 살짝 연두색 멍이 들어있었다. 언제 다쳤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내 키가 160cm로 작은 편이라서 상대편 팔꿈치가 내 얼굴을 찍었다고 상상할 수밖에 없었다.        

   

공을 가슴에 맞았을 때, 죽음을 느낀다     


이뿐인가. 한 달 전에도 시니어분들과 경기를 하다가 가슴에 킥으로 찬 공을 맞았다. 숨이 턱 막히고 그 자리에서 배를 움켜잡고 쓰러졌다. 이러다 내가 죽는구나 싶었다. 이런 느낌은 두 번째였다. 숨이 마음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횡격막에 맞았나 싶었다. 그것들도 근육이라서 갑작스러운 타격에 움직이지 않았으리라. 우리 여성 축구 팀원들은 잔디밭에 누워있는 나를 자신들의 몸으로 그림자를 만들어 뜨거운 땡볕을 가려주었다. 참으로 감사했다. 다들 알고 있었다. 억지로 일으켜 세워주면 더 무리가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내가 일어날 수 있도록 경기를 멈춰주었고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점차 숨이 돌아왔다. 그렇게 그날의 경기가 종료되었다.


숨이 턱 막혔던 나의 첫 번째는 아프리카에서 했던 번지점프였다.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높아 기네스북에도 있었다. 밑을 내려다보는데 너무 무서워서 우물쭈물했다. 번지점프 직원은 뒤에서 나를 밀어버렸고 나는 그대로 계곡으로 추락했다. 가파른 v자 계곡 위로 나는 216m 떠 있었다. 처음 느낀 죽음이었다.           



병원은 내 친구, 실비보험은 필수     


나의 부상들은 아직도 내 몸에 멍으로 남아있다. 왼발 세 번째 발가락은 자꾸 축구화에 밟혀서 보라색 멍이 빠질 날이 없고 오른쪽 첫 번째 발가락은 언제 다쳤는지 발톱도 뒤틀리면서 회색으로 물들어있다. 또 달리다가 어디에 박은지 모른 오른손은 새끼손가락 시상대(힘줄을 잡아주는 부분) 부분파열로 거의 두 달이 지났지만 부기가 다 빠지지 않아 슬쩍 걱정이다. 축구하기 전에는 실비보험이 무슨 필요가 있나 했지만 지금은 잘 애용하고 있다. 병원은 이제 친구 같은 존재가 되었다.        


  

기쁘게 축구하다 생긴 흔적, 부상     


이 밖에도 출처를 알지 못하는 멍들에게 부상이라는 표현은 붙이지 않겠다. 그저 내 몸을 정상으로 돌려주는 일을 하는 고마운 천사들이라고 믿겠다. 그래서 반바지 반팔을 입어도 창피하지 않다. 나에게 부상은 즐겁게 축구하다 생긴, 어차피 사라지기도 할 흔적일 뿐이다. 어떻게 입은 부상이냐에 따라 자세는 달라진다. 나는 기쁘게 행복하게 축구를 했다가 생긴 자국이 부상이다.  내 몸은 축구장 잔디를 닮고 싶었나보다. 몸의 이곳 저곳을 연두빛 초록빛으로 물들이는 걸 보면  안다.



깁스를 했을 때 온 세상이 무너진 시절이 있었다    


나는 부산하고 이리저리 몸만 바빠 부상이 잦다. 축구에서 말하는 진짜 부상이라면 ‘골절’은 되어야 병자 취급을 받는다. 바깥으로 보이는 부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지금은 알고 있다. 15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 교통사고로 인대가 늘어나 발목에 깁스붕대를 했다. 내 잘못이라는 생각으로 자신감이 바닥을 쳤을 때가 있었다. 그때 나의 온 세상이 무너졌다. 왜 그랬을까. 별일이 아님을 몰랐다. 그래서 나의 상사가 말했다. “왜 이리 축 처져있어. 자신감을 가져.” 그게 뜻대로 잘되지 않았다. 축구를 하기 전까지.      


이제 나는 부상을 쉽게 넘길 수 있는 힘이 생겨났다. 인대 파열은, 멍은, 시상대 파열은 골절이 아니니까. 별일이 아니다. 우리는 어쩌면 별일이 아닌 일을 별일로 생각한다. 그래서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어 혼자 정신이 나락으로 가곤 했다. 이젠 얼른 치료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한다. 부상으로 가지 않도록 예방하는 법을 찾아 숙지한다. 다치지 않으면서 즐기는 축구를 어떻게 할지 떠올린다. 축구는 내 인생도 어떻게 하면 불행하지 않을지 어떻게 행복할지 생각하게 해주는 연결고리가 된다.



축구를 하면서 내 몸도 내 생각의 자세도 달라져 있었다.




Ps. 장마입니다. 비로 축구를 많이 못하는 요즘인데 축구를 안 하면 이상하게도 몸살이 옵니다. 어제는 겨울처럼 온몸을 옷으로 감아 잠이 들었습니다. 땀이 나지 않아서요. 역시나 2년의 시간은 축구인으로 만들어줬나 봅니다. 내일을 축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야 그만 오렴. 다들 비 피해 조심하세요.

이전 14화 34. 축구장에서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