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의 무게

2-1

by 슬기롭군

하늘은 갈라지고, 산허리는 괴성을 지르듯 흔들렸다. 땅은 뒤집히듯 들썩였고, 흙먼지는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우리 위로 쏟아졌다. 그러나 포성은 오래가지 않았다. 곧이어 찾아온 고요는 더욱 낯설고, 더욱 무거웠다.

전장은 여전히 살아 있었으나, 동시에 무너져 있었다. 고개를 돌리자 흙 위에 흩어진 군번줄들이 눈에 들어왔다. 빛에 반사될 때마다 잠시 반짝였지만, 그것은 생의 빛이 아니라 종말의 표식 같았다. 누군가는 이름조차 불리지 못한 채, 쇳조각으로만 남아 있는 듯했다. 그때 누군가 낮게 중얼거렸다.

“오늘도 몇몇은 돌아오지 못했네.”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굳이 응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살아 있었다. 그 단순한 사실이 오히려 가슴을 짓눌렀다. 살아남았다는 건 단순히 운이 좋았다는 뜻이 아니었다. 살아남은 자는, 불리지 못한 이름들까지 등에 짊어져야 했다.

“김칠수 상병!”

분대장의 목소리가 무전을 타고 울렸다.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예!”

그 순간 내 목소리는 낯설게 들렸다.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얇은 유리처럼 떨렸다. 그 대답은 내 존재를 증명했지만, 동시에 대답하지 못한 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살아남은 자의 이름은 무거웠다.

군장의 무게보다, 총의 무게보다 더 깊숙이 어깨에 내려앉았다.

반대로, 죽은 자의 이름은 허망했다. 포성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려진 이름들, 군번줄의 활자 속에 갇힌 이름들. 그 누구도 다시 대답할 수 없는 이름은 공기 속에서 금세 흩어져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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