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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불리는 이름

1-4

by 슬기롭군

“모두, 진지재정비한다. 인원 장비 보고!”


분대장의 목소리가 기어 나오듯 퍼졌다.

헬멧에서 피가 흘러내리는 대원이 있었고,

흙더미에 기대어 숨을 헐떡이는 전우도 보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손을 움직였다.

탄창을 확인하고, 피 묻은 소총을 닦아냈다.

비상식량이며 수통이며,

살아 있는 자들의 물건을 챙겨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그 자리에 앉아만 있었다.


그제야 내 앞으로 뛰어오던 병사가 기억났다.

내 이름을 부르며 뛰어오던 이름모를 병사.

그의 하복부는 이미 시뻘겋게 물들어 있었고,

숨소리가 들쭉날쭉했다.


“김칠수 상병…”


그가 나를 불렀다.

몸을 돌려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곧 의무병이 올 거야.”


“아냐… 그건 아냐…”


그는 고개를 살짝 저었다.


“나… 이름 불리면 기분 좋았어.

대신 말야… 죽을 때쯤 되니까…

그 이름이… 무거워지더라…”


나는 말이 막혔다.

그의 얼굴에선 생기가 빠져나가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또렷했다.


“형도 그런 생각… 해본 적 있어?”


그는 손을 꼭 잡으며 물었다.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작고, 젖은, 피 섞인 눈물이 내 손등 위로 떨어졌다.

피범벅이 된 그의 손이 내 손을 꼭 잡았다.

나는 그의 손을 매만지며 말했다.


“괜찮아. 아직 괜찮아.”


하지만 그 말은 너무 늦게 도착했다.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그렇게 조용히 숨을 거뒀다.


그가 내 이름을 불러줬다.

죽음의 끝에서 마지막으로 떠올린 이름이 나였다.

하지만 나는...

그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알지 못했다.


분명 같은 곳에서 밥을 먹었고,

밤마다 추위를 등지고 등을 맞대며 잠들었던 사이인데도 말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불러본 적이 없다.

아니, 어쩌면… 알고 싶지 않았던 건지도 모른다.


이곳에선, 이름을 아는 것조차 공포였다.

이름을 부르면 그가 사람처럼 느껴졌고,

사람처럼 느끼면, 그가 사라질 때 너무 아팠다.


이름이 무서웠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언젠가 죽을 수도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여한다는 게 겁이 났다.


나는 그의 눈을 감기지 않았다.

눈이 아닌, 내 마음이 감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나를 기억해줬다.

하지만 나는, 그를 기억할 수 없었다.

나는 그 무게를 견디지 못했다.


철모 속에 구겨져 있던 아내의 편지를 꺼냈다.

몇 글자 읽지도 못하고 다시 접었다.

글자들이 뿌옇게 번지고 있었다.

피 때문인지, 눈물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아직 내 이름이 무겁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누군가가 날 부른다는 것.

그게 왜인지, 너무 벅차다.


포성이 다시 멀리서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지금 이 침묵은—폭풍 전의 고요였을 뿐이다.


나는 아직, 내 이름을 제대로 붙잡지 못한 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곧, 화악산은 다시 불을 토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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