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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Apr 21. 2023

미운 남편 다루는 특급 매뉴얼 대 공개

서로를 미소 짓게 만드는 효율적인 세 가지 방법

공감보다 팩폭을 지체 없이 날리는 아내, 그리고 불 난 데 기름을 끼얹는 독특한 화법을 구사하는 남편. 그렇다, 우리의 대화가 순탄할 리가 없다. 차라리 서로 안 마주치는 게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을 때가 많다. 남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나에게 하소연할 때 "어휴~ 당신 참 힘들겠다."라고 토닥여줘야 하거늘, "그러니까 이런 점이 문제네! 이렇게 대처해 보고, 저렇게도 해보고..."라고 응수하는 나도 결코 괜찮은 아내가 아닌건 맞다. 따뜻한 위로와 공감을 원하는 건 주로 남편 쪽이고, 상황 분석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쪽은 나다. (이렇게 우리 부부는 일반적인 남녀의 성향이 뒤바뀐 독특한 조합이라는 사실)


그렇다면 반대로 남편은 나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고 공감을 잘하느냐? 절대로 그럴 리가 없는 걸 이미 눈치챘을 거라 믿는다. 내가 하는 이야기를 대부분 건성으로 듣는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일단 본인의 관심사가 아닐 때는 적당히 귀를 닫아버린다. 세 번 정도 반복해서 가족 행사를 알려줬음에도 나중에 기껏 하는 말이 "아, 그런 일정이 있었던가?"라며 초 뒷북으로 딥빡을 선사한다. 중간에 아이들이 우리의 대화를 방해하는 것도 한 몫 하지만, 아무리 이야기 해본들 한 손에 쥔 스마트폰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는 모습을 적발할 때면 깊은 공허함을 느낀다. 벽에다 대고 이야기하는 게 낫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대화를 하더라도 기분 나쁘게 받아 치는 데는 전 세계 챔피언급이다. 그가 던지는 몇 마디에 말 문이 턱 막혀버린다. 오죽했으면 시댁에서 남편의 별명이 '이복장'이었을지. 상대의 복장을 터뜨리는 화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탓에 얻은 별명이다. 참고로 복장터진다'라는 뜻의 사전적 의미는 <화가 난다 또는 답답하여 속이 터진다> 라는 뜻이다. 남편과 대화의 종착역은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고, 화를 돋궈 전투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려주는 것으로 끝난다. 한마디로 파국이다. 차라리 "하기 싫다.", "아니다."등의 직설적인 의사 표현을 하라고 여러 번 요구했음에도 이 최악의 화법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 나도 좋은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없다. 그 후의 대화는 생략하겠다.

우스갯소리로 남편에게 종종 하는 말이 있다. "여보 나는 남들보다 신체기관이 몇 개 없는 거 알지? 애들한테 비위 맞추느라 맨날 간이고 쓸개고 내주지, 당신 때문에 수도 없이 복장 터지지." (아, 그러고보니 이러다가 단명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무튼 평화로운 대화를 하는 날 보다 공격적인 분위기로 서로에게 비수를 꽂는 대화가 더 일상적으로 자리 잡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분명 존댓말을 하는 사이였음에도(나이 차이가 5살 나기도 났고, 대학 선후배로 만났었기에) 점점 반말의 비중이 높아지고 반말과 존댓말의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이어졌다.


 더불어 자꾸 남편의 감정에 끌려 다니는 기분이 들었고, 어느 순간 더 이상 이 인간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아야겠다 싶었다. 차곡차곡 쌓여만 가는 남편을 향한 미운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가 언제나 가장 큰 숙제였다. 아이들에게도 맨날 부모가 싸우는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는 거니까. 아무튼 세월이 흐르며 터득했던 나만의 비법인, 일명 <미운 남편 다루기 특급 매뉴얼>을 공개하고자 한다.



<미운 남편 다루는 세 가지 방법>




1. 미운 감정 끊어내기


사소한 일로 시작되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걷잡을 수 없이 부정적인 감정이 눈덩이처럼 커지는 경험을 해 보았는가? 꼭 이럴 때는 배우자의 지난 만행이나 망언이 생생하게 떠오르며 화를 부추기게 된다. 이럴 때는 일단 미움의 감정을 멈추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폭주기관차를 탄 것처럼 부정적인 감정은 계속해서 증폭되고, 점점 위태로워지기 때문이다. 


‘분노하는 일’ 자체가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든다. '가치 없는 일에 나의 소중한 감정을 더 이상 소모하지 않겠다.'라고 선언하기를! 그 후에는 '그래서 이렇게 화를 내본 들 얻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해 보면 앞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명확하게 답이 나온다. 지금 당장 미운 감정을 끊어내도록 노력해봐야 한다. 나중에는 증오심으로 불타는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는 일은 더욱 어렵다. 부디 감정을 정리하고, 분노를 멈추고, 감정의 롤러코스터에 휘둘리지 말고 벗어나기를 추천한다.




2. 숨은 뜻 파악하기


'말의 진짜 의미'를 잘 파악하는 것도 배우자로서 갖춰야 하는 부분이다. 어린 자녀들이 종종 감정 표현이 서툴러서 엉뚱한 말을 던져서 화 나게 할 때가 있는 것처럼, 남편도 똑같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타고나기를 언어 감각이 떨어질 수도 있고, 혹은 너무 솔직한 성격이라 돌려 말할 줄 모르는 걸 수도 있고, 안타깝게도 눈치가 없는 경우 등 아무튼 남편들이 언어의 지혜가 부족할 때가 있다. 그래서 남편이 툭 던진 한마디에 갈등이 시작되고, 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이럴 때 표면적인 의미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행간을 잘 파악해야 한다.


내 남편의 경우, 주말에 친정 식구들과 시간 보낸 후 귀갓길에 기껏 한다는 말이 "아, 시간 아까워. 주말이 다 갔네."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말을 듣고 얼마나 화가 나던지... 비싼 밥도 부모님께 얻어먹었겠다, 두 손 가득 챙겨 주신 먹거리도 가져왔겠다, 그럼에도 뭐 시간이 아깝다고? 이럴 바에 처음부터 오질 말던가, 배은망덕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정 식구들 만나서 시간 보내기가 싫었다는 뜻이 아니라, 쇼핑몰에 가보거나 산책을 하는 등 바깥에 좀 나가고 싶었는데 내내 집에만 있어서 그게 아쉬워서 한 소리였다. 즉, "아까 장인댁에서 재미있게 시간 보낸 건 좋았는데, 근처 쇼핑몰이라도 좀 다녀올 걸 그랬나? 주말이 벌써 끝나서 아쉽네."라는 의미였다.


또 하나 예를 들자면, 몸이 불편하신 시댁 부모님께 먹거리를 나눠드리고 싶어서 내 딴 에는 열심히 부엌에서 국도 끓이고 재료도 다듬고 하며 분주했던 적이 있다. 내내 투덜거리며 못 마땅해하는 남편의 태도에 신경이 거슬렸는데 "괜히 왜 사서 고생이야? 그냥 시장에서 반찬거리 사면 되잖아?"라는 말로 쐐기를 박았다. 상식적으로 아내에게 고마워해도 모자랄 판에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싶어 화가 났다. 하지만 나중에 이야기를 나누다가 알게 된 속마음은, 내가 주말인데 쉬지도 못하고 본인 부모님 때문에 한참 고생하는 게 미안해서였다고 했다. "당신이 우리 부모님을 위해 수고해줘서 고마워. 근데 내내 주방일로 바쁜 걸 보니 내 마음이 영 편하지는 않네. 다음에는 편하게 시장 반찬가게에서 먹거리 사가는 걸로 하자." 이렇게 말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3. 내 삶에 집중하기


남편과 잘 지내려면 '남편'이 아닌 '나'에게 집중해야 한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집안일을 도와줄 거라 믿었던 남편의 무관심에 실망하고, 아이 키우느라 고생하는 내 처지를 알아줄 거라 기대심을 가졌지만 제대로 배신당했던 숱한 나날들을 거쳐오면서 남편에게 걸었던 모든 기대를 내려놓았다. 지금도 웬만하면 남편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려 애쓴다. 남편에게 기대고, 실망하고, 탓할 바에 차라리 내 시간, 내 자유를 스스로 챙기며 내 삶을 더 잘 꾸려 나가는 방법을 선택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일까 천천히 생각하고, 탐색하다 보면 매일 나를 발견하는 재미를 느낄 것이다. 동네를 산책하며 길가에 핀 꽃에 시선이 머물며 미소 짓게 되는 순간, 나를 위해 정성껏 건강에 좋은 메뉴로 집밥을 만들어 먹는 혼점 시간, 도서관을 향하는 가벼운 발걸음, 책에서 마음에 와닿는 문장을 발견하는 그 짜릿한 순간 등등 매 순간을 감사하고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요새 나는 운동을 꾸준히 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체력도 길러지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어서 매우 행복하다. 날씨가 좋을 날에는 자전거를 타거나 한강 공원을 달리고, 짬짬이 홈트를 한다. 글을 쓰는 것도 내 삶에 큰 활력이다. 이렇게 작고 소소하더라도 성취감을 맛보며 나를 잘 다스리는 게 정말 중요하다. 그래야 남편이고 아이들이고 아무리 나를 뒤흔들어도 큰 요동없이 다시 평정심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누군가를 만나거나, 정해진 스케줄이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 일기 쓰기, 만보 걷기, 10분 독서, 영어 공부 등과 같이 소소하게, 꾸준히 할 수 있는 활동으로 하루를 채워 나가도 충분하다. 내 삶에 충실하다 보면 남편의 언행에 크게 신경 쓰지 않게 된다. 지속적인 자기 돌봄, 자기를 위한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는 것이야 말로 발전이 있는 삶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가 잘 돌보기로, 나를 위한 투자를 아까워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 때문에 마음 상하고, 상처받기보다 나의 내면을 튼튼하고 건강하게 다지는 것이 더 훨씬 괜찮은 방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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