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고운 Oct 25. 2020

내 상태를 객관적으로 점검하자

너무 바쁘거나 너무 한가하거나, 그 균형을 찾아서

엄마의 삶은 참 다이내믹하다. 아침시간만 하더라도 식사 준비, 등원 등교 준비, 출근 준비 등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일 속에서 진두지휘를 해야 하는 주인공이 바로 엄마이다. 꼭 바쁠수록 아이는 우유를 시원하게 한바탕 쏟고, 머리스타일과 옷차림으로 투정을 부린다. 형제자매끼리 한바탕 싸움이 붙기도 하고, 남편은 본인이 쓴 차 키의 행방을 꼭 나에게 묻는다. 화장실은 늘 서로 앞다투어 북적이고, 식사를 마치고 본 부엌의 풍경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아침에 한바탕 소란이 드디어 잠잠해지면 ‘이제 좀 쉬어야지’가 아닌, 개판이 된 집 뒷수습부터 빨래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먹거리 구매 등등 그때부터 또 다른 집안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물론 출하는 엄마들의 경우에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정신없이 일터에 겨우 도착해서 산더미 같은 일을 처리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하루가 후딱 간다. 업무 시간 짬짬이 아이 상태를 점검하고, 학부모 공지사항 등을 챙기다 보면 몸이 열개라도 바쁘다.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아직 끝내지 못한 업무로 인해 압박감으로 마음이 쫄리고, 퇴근하면 또 한 번 한바탕 벌어질 자녀들과의 씨름에 생각만 해도 벌써 어질어질하다.  


이처럼 엄마라는 위치 자체가 참으로 극한 직업이다. 몸이 바쁜 건 기본이고, 정신까지도 분주함에 지배되곤 한다. 이렇게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다 보면 ‘내가 대체 무얼 위해 살고 있나’하는 존재의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각종 잔업을 처리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먹고 입히고 씻기는 일을 해내다 보면 또 그렇게 허무하게 하루가 끝나버린다.




몸이 바쁘다 보니 정신도 덩달아 바쁜가? 아니면 혼자 있는 시간에는 더욱 격렬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가? 나의 경우에는 둘 다 경험해 보았다. 어느 한쪽이 더 나쁘다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히 둘 다 문제다. 지나치게 쫓기듯이 바쁜 일상을 보낸다면 과부하가 걸려 언젠가는 방전되기 마련이고, 반대로 시급한 일보다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주된, 긴장감 없는 일상이라면 매일 똑같은 하루가 지겹고 싫증이 날 것이다.


그 적정선을 찾아 균형 있는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번아웃 증후군(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을 겪고 나가떨어지기보다, 사전에 예방하는 차원에서 때로는 강제 휴식이 필요하다. 완벽한 엄마, 착한 엄마, 부지런한 엄마가 되어야겠다는 압박감을 내려놓고 미친척하고 쉬어 보자. 집밥을 고수하는 나도 주말에 한 두 끼 정도는 외식을 허용한다. 혹은 반조리 식품, 간편식으로 대충 먹기도 한다. 부엌데기에서 벗어나 잠시 파업을 선언해야 한다. 그래야 엄마인 나도 행복하고, 남편도 행복하고, 자녀들도 행복하다. 외식비가 너무 아깝다고? 이럴 때 쓰려고 버는 것 아닌가.

 



날씨가 좋다면 주말에는 반나절이라도 집을 떠나서 가족끼리 시간을 보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여행을 가거나 캠핑을 떠난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현실에서 쉽지 않으니 만만한 한강공원이라도 가는 거다. 그늘막 텐트도 좋고, 캠핑 의자도 좋다. 돗자리 하나만 있어도 괜찮다.


집에서 뒹구는 간식거리 몇 가지 대충 챙기고 공 하나 들고 가면 아이들도 신나게 논다. 자연을 탐색하고 지나가는 개미도 관찰하고, 마음껏 뛰어다니기도 하며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래야 일찍 잔다 = 그래야 엄마도 행복하다) 생각지도 못한 놀잇감을 찾아 상상력을 발휘하며 어떻게든 놀기 마련이다. 박물관이고, 도서관이고, 인근 공원이고 어디든 다 좋다. 까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밝은 표정, 이 보다 더 행복한 것이 있을까? 행복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기하게도 집에만 있으면 자꾸만 집안일만 보인다. 이불도 한번 빨 때가 된 것 같고, 커튼도 한동안 손보지 않아 세탁소에 맡겨야 할 것 같다. 냉장고도 냉동실도 마음먹고 한번 싹 치워야 할 것 같고, 아이들 방도 손을 좀 봐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집에만 머물면 엄마는 여전히 마음이 불편하고 괜히 분주하다. 한두 개라도 마음먹고 실행하다 보면 몸까지 확 피곤해진다. 물론 집안일을 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꼭 필요한 일들을 적정선에서 끊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의외로 바깥에서 활동하고 에너지를 얻고 오면 남편과 의기투합해서 짧은 시간에 후다닥 정리를 끝내곤 한다. 한참 걸릴 것 같던 일이 빛의 속도로 해결될 때, 이런 초능력은 어디서 생긴 건지 참 신기한 일이다. 아마도 자녀들과 함께 뒹굴며 가족끼리 쉼을 누리며 긍정적인 에너지가 쌓여서가 아닐까?


또한 청소로부터 오는 스트레스와 육체의 피로를 덜고 싶다면 가전제품의 도움을 받는 것도 좋다.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자동 물걸레 청소기 등 본인의 상황에 맞게 가전제품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나의 경우 건조기를 영접하고 할렐루야를 외쳤다. 그동안 건조기 없이 어떻게 살았을까 싶었다.


혹은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는 방법도 있다. 몇 년 전 대학원에 다녔을 때 학업과 육아, 살림을 병행하는 것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늘 시간 쫓기듯 살았다. 화장실 청소, 다림질과 같은 사소한 일로 남편과 싸우게 되고, 서로 날카로워지다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


그래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다림질의 경우 아이들이 10시 넘어서까지 잠들지 않으면 남편이 직접 다음 주에 입을 셔츠를 다림질해서 입을 것, 최소 한여름 동안은 서로의 정신 건강을 위해 다림질이 필요한 옷들은 세탁소에 맡길 것 등의 원칙 말이다. 그리고 학기 중에는 2주에 한번, 그러니까 한 달에 두 번 반나절 동안 가사도우미 업체의 도움을 받아 밀린 집안일을 해결했다. 이렇게 말하면 우리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엄마가 게으른 것 아닌가 하는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학업에 임하는 동안만이라도 잠시나마 비용을 들여 시간과 에너지를 확보한 방법이 나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고 지금도 후회는 없다.


마음의 분주함은 어떻게든 해결한다 치더라도, 육체의 분주함은 자체 해결하는 게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들의 형편에 따라 외부 도움을 통해 집안일을 줄이고 여유를 찾는 것도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본인이 자체로 업무 강도를 조절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


나도 꽤 깔끔 떠는 성격인데 최근에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힘을 빼고 좀 대충 살았더니 나쁘지 않았다. 덜 깨끗해도, 덜 치워도 사는데 별 차이가 없었다. 청소기는 매일 돌리지만 걸레질은 며칠에 한 번씩 한다. 먼지가 쌓여 있는 구석구석도 그냥 참고 살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한 번에 몰아서 어지간히 처리하고 만다. 어차피 또 더러워질 테니까 열과 성의를 다하지는 않는다.


애들 마음껏 어지르게 하고(가능한 방 안에서만) 잠들기 전에 딱 한 번에 싹 치운다. 당연히 아이들 스스로 치우게 한다. 그렇게 마음에 여유를 두는 훈련을 하다 보니 아이들에게도 너그러워졌고, 나도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지금까지는 바쁜 몸과 심리상태를 안정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았다면 이번에는 반대로 너무 느슨해진 상태를 적절한 긴장상태로 끌어올리는 방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먼저 하루 일과를 살펴봐야 한다. 목표를 정하고, 적정선의 마감 시간을 정해 놓는 거다. 그래야 일을 빨리 끝낼 수 있다.


펜으로 적어도 좋고, 스마트폰 어플에 메모해도 좋다. 해야 할 일을 장단기로 나누고, 급한일과 중요한 일에 따라 우선순위를 나눠본다. 그리고 오늘 처리할 일을 뽑아보자. 나의 경우 식단을 짤 때도 메모를 한다. 식재료 상태에 따라(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 우선) 먼저는 오늘 아침, 점심, 저녁 메뉴를 짜고 그 후로는 이번 주 안에 먹어야 할 재료들로 할 수 있는 요리를 빈 공간에 적어 놓는다. 이렇게 하면 식재료가 상해서 버리는 일도 없고, 중복으로 구매하는 일도 없다.


해야 할 일을 하나 둘씩 점검하며 진행상태를 파악하면 성취감을 느끼기도 하고, 자기반성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오늘 많은 일을 했구나’하는 생각에 뿌듯해지기도 한다. 반대로 ‘아 내가 오늘 너무 쇼핑하느라 시간을 빼앗겼네. 처리하지 못한 일이 태반이구나. 내일은 좀 더 시간을 아껴 써야지’하고 반성하며 마음을 다잡게 된다.


이러한 일에 마감 시간을 정해 놓는 것이 과도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래야 긴장감이 생긴다. 티브이를 보며 빨래를 개면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다. 그 재미있는 장면을 놓치고 싶은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그래서 집안일을 하든, 개인적인 일을 처리하든 ‘오전 11시 까지’, ‘이번 주까지 무조건 끝낸다’ 등의 목표를 정하는 것을 습관화해보자. 일에 속도가 붙고, 더 효율적으로 빨리 처리하기 위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또 하나, 작은 일이라도 몰입해서 푹 빠져보는 경험이다. 자녀가 색종이 접기에 한참 열을 올렸을 때, 나도 덩달아 같이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도와주느라 마지못해 시작한 것이지만 종이접기를 하면 할수록 생각보다 재미있었다. 어릴 적에 삼각, 사각, 오각형 상자 접기를 좋아했던 것이 떠올라 종이접기 책을 뒤져가며 아이들과 같이 접어보았다. 다 완성했을 때 참으로 오랜만에 느끼는 성취감이 오히려 낯설게 느껴질 정도였다.


둘째 아이는 자기가 고른 색깔로 상자를 접었더니 너무 마음에 든다며 예쁘다고 감탄을 쏟아냈고, 첫째 아이는 반에서 열릴 아나바다 장터에 가져가겠다며 신나 했다. 실제로도 우리가 같이 접은 종이상자는 인기 품목으로 친구들에게 꽤나 주목을 받았다고 했다.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곧 마흔이 되는 나이에 종이 접기로 이렇게 성취감을 느낄 일인가…? 한편으로 조금 웃기기도 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활동을 자녀들과 같이 해 보는 게 참으로 가치 있는 활동이었다.


그 후로도 아이들이 뭔가를 할 때 관망하지 고 눈높이를 맞춰 웬만하면 같이 참여했다. 피아노를 배울 때 같이 피아노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물감으로 색칠을 할 때 나도 똑같이 몰두해서 만의 작품을 완성시켰다. 줄넘기를 할 때면 같이 줄넘기를 하고, 농구 연습을 할 때는 같이 드리블과 슛 연습을 했다.


아직까지는 자녀들보다는 엄마의 실력이 우월하기 때문에 늘 아이들의 환호를 받고, 존경의 눈빛은 덤이었다. 은근히 해볼 만한 일이었다. 그렇게 본의 아니게 취미생활이 늘어나다 보니 내가 무얼 좋아했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흥미를 느끼는지 조금이나마 파악이 되었다.  


또한 마음이 맞는 사람이 있다면, 소그룹으로 같이 취미 활동을 하거나 그룹 스터디를 해는 것도 추천한다. 모임의 취지를 살리려면 모임의 성격을 명확하게 하고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설정하고 잘 지켜주는 것이 포인트다. 자주 모이다 보면 신변잡기 이야기, 신세 한탄, 자녀 비교 등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반드시 모임의 목적을 기억하고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교회 목장 사람들을 중심으로 성경통독을 했었다. 7~8월 방학 동안 단타로 하는 거라 큰 부담이 없기도 했고, 따로 오프라인 모임 없이 단톡방 채팅으로만 운영이 되었기에 시간적인 면에서 효율적이었다. '신약성경 읽기'라는 목적성이 뚜렷했기 때문에 매우 성공적이었다. 혼자 성경 읽기를 했을 때는 하지 못할 다양한 핑곗거리가 매일 샘솟아 내일로 미루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소그룹으로 했을 때는, 서로 격려도 해주고, 그 날 그 날 와 닿는 말씀도 나누고 하다 보니 재미도 있었다.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일들이었지만, 동일한 목표를 가진 사람들과 함께였을 때는 달랐다. 때로 숙제가 밀렸을 때는 쭉쭉 진도를 나가는 구성원들을 보며 자극을 받고 부지런히 다시 속도를 냈다.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고 하다 보니 통독 완주를 해냈고, 그때의 그 기쁨은 말할 수 없었다.


물론 매일 읽어야 할 분량이 정해져 있어 짧게는 10분, 길게는 30분씩 소요되어 부담스럽기도 했다. 잠이 쏟아지는 저녁시간에 아이들을 재우고 그대로 나도 뻗어버리고 싶었지만, 피곤한 몸을 일으켜서 억지로 다시 책상에 앉기도 했다. 적절한 압박감을 가지고 생활하다 보니 오히려 이런 긴장감이 나를 활기차게 만들어줬고, 목표 달성이라는 쾌거도 안겨주었다.


‘성경 읽기’라는 과제를 우선순위에 놓으니 점차 일상이 개편되고, 질서가 잡혔다. 티브이를 보거나 목적 없이 뉴스를 뒤적이는 등 불필요한 시간들이 정리되었다. 원하는 물건을 찾으며 비교하고 한참 고민하며 시간을 보내기보다, 적정선에서 빠르게 구매하고 끝냈다.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가 아니라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는 일이었다. 이때 적절한 스트레스가 일상에 에너지를 준 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리고 공동의 힘으로 함께 목적을 달성하는 일은 참으로 짜릿했다. 서로 수고했다고 자축하며 거의 축제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당연히 꼭 종교적인 모임일 필요는 없다. 독서 모임, 영어 공부 모임 등 상황에 따라 선택하면 된다.




이처럼 나의 일상을 점검해보고 문제점을 찾는 행동이야 말로 엄마들에게 꼭 필요하다.

정리해보자면,


분주한 일상에 함몰되거나, 혹은 긴장감 없는 반복되는 일상에서 빠져나와 균형 있는 상태를 찾을 것
강제 휴식이 필요한 경우,
-반나절이라도 집을 떠나서 가족끼리 시간을 보낼 것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하기 한계가 있다면, 외부 도움을 적극 활용할 것
느슨해진 상태를 끌어올려야 할 경우,
-일상에서도 목표와 마감 시간을 정할 것
-작은 일이라도 몰입해서 푹 빠져보는 경험을 시도해 볼 것
-적당한 압박감을 유지하는 활동을 통해 활기를 얻을 것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몸과 마음의 짐을 덜어내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각자 처한 상황에 따라 형편에 맞게 적용하여 보면 조금씩 방법이 보일 것이다.  삶의 활기를 찾을 수 있도록 적정선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할 것.

이전 06화 몸을 움직이자. 그리고 햇빛을 쐬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