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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고운 Oct 25. 2020

몸을 움직이자. 그리고 햇빛을 쐬자

가벼운 산책이 주는 일상의 위대한 변화

만사가 귀찮고 몸을 움직이기도 싫은 상태가 지속되는 나날이었다. 어떤 날은 저녁 식사 후 설거지가 끝나고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갈 때 비로소 ‘오늘 첫 바깥 외출이구나’라고 자각할 때도 있다. 그만큼 여러 가지 상황으로 집콕하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외부와 단절된 채 생활하는 날이 이어졌다.


소파나 침대에 누워서 쉬는 것이 당장은 편했다. 하지만 쉼의 질이 낮다고 해야 할까? 누우면 누울수록 더 몸이 축 쳐지고 기운이 없었다. 날씨가 추워서, 날씨가 더워서, 움직일 힘이 고갈되어서, 애들 숙제 봐줘야 하니까 등등 갖은 핑계로 애써 합리화시키며 집에만 머물렀다. 어느 순간 내 모습을 보니 옆구리에 살은 점점 붙어가고, 눈은 쾡 하고, 매사에 느슨해져 버린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이대로 나를 방치할 것인가
혹은 변화를 시도해 볼 것인 것인가?

고민할 가치도 없었다. 뭐라도 시도해봐야겠다 싶었다. 처음에는 동네 헬스장을 알아봤다. 여러 조건들을 비교해보니 딱히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렇다면 필라테스? 요가? 정보를 찾아볼수록 더 기운이 빠졌다. 원하는 시간에 맞는 수업도 없었고, 비용도 은근히 부담스러웠다. 러닝머신을 사야 하나, 실내 자전거라도 들여놓아야 하나 등등 또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쓸데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인근 병원에 갈 일이 생겼는데, 부득이 걸어서 가게 되었다. ‘하필 왜 오늘 남편이 회사에 차를 가져가는 날 이냐고, 이게 뭐야!’ 라며 속으로 투덜거리면서 걷기 시작했다. 차로는 5분이면 금방 가는 거리라 만만하게 보았는데 막상 걸어보니 20분은 족히 걸리는 꽤 먼 거리였다. 오르락내리락 언덕길을 걷기란 쉽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이 보였다.


주변에 나무들, 새소리, 길가에 핀 꽃, 까르르 웃으며 지나가는 활기찬 초등학생 아이들…. 그 날 따라 햇빛도 유난히도 밝았다. 햇빛이 이렇게 기분 좋은 존재였던가? 꽁꽁 닫히고 무뎌진 마음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어와 마음이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었다.  


자외선이라는 존재를 끔찍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매일 선크림을 필수로 바르고, 선글라스를 늘 가지고 다니곤 했다. 또한 서향집에 사는 지라 오후가 되면 암막 커튼으로 햇빛을 차단하기 바빴다. 노화의 주범이라 생각하며 햇빛을 멀리하는 게 당연하다고 느꼈는데, 그게 아니었다. 식물이 광합성을 하듯 사람에게도 햇빛을 쐬는 행동이 꼭 필요한 것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다. 비타민D가 면역이나 신진대사와 같이 정상적인 인체 활동에 필요하다는 것은 머리로는 알고 있었으나 막상 생활에서 실천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걷기의 위력, 햇빛 쐬기의 위대함을 실감한 날이었다. 그 후로는 웬만하면 차를 타고 편하게 다니는 대신,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쪽을 선택했다. 기분 좋게 일부러 불편함을 선택한 결과는? 몸을 움직이니 마음도 어느새 움직이고 있었다. 작은 일에 감탄하게 되고, 주변을 관찰하며 호기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아무 감흥 없이 다녔던 길을 걸어서 지나가 보니 또 다르게 보였다. 일부러 골목길로 가보기도 하고, 조금 멀어도 처음 가보는 길을 선택해서 빙 돌아서 가보는 무모함도 발휘해 보았다. 변 상가나 동네 공원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갈 때는 또 다른 세상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단 10분이라도 햇빛을 쐬며 동네를 한 바퀴 걷고 온 날은 오히려 덜 피곤했다. 첫 시작이 힘들어서 그렇지 일단 만사 제쳐 두고 잠시라도 햇빛을 쐬고 오면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루를 버틸 힘을 얻었다.


습관이 되니 밖에 나가서 걷지 않는 날이면 몸이 찌뿌둥했다. 퇴근하는 남편에게 정신없이 밥을 차려주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후다닥 바깥으로 튀어 나갔다. 때로는 셋을 놀이터에 몰아넣고 즐겁게 놀고 있는 동안 나는 근처를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놀이터로 돌아왔다.


처음에 했던 헬스장, 운동기구 고민은? 당연히 고민 목록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큰 비용을 들여서 대대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지속 가능한 소소한 운동을 선택했고 결과는 만족스러웠다. 밖에 나갈 기운이 없어서 운동을 포기한다가 아니라, 무기력할수록 목숨 걸고 일단 밖으로 나가야 한다. 모든 핑곗거리를 박차고 나가기를 반복하다 보면 나를 지탱해주는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한껏 움츠러들었던 몸과 마음이 기지개를 켜는 듯했다. 왠지 모를 자신감과 긍정적인 감정이 생기는 것을 경험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짬 날 때마다 잠깐이라도 걷다 보면 ‘내가 왜 그동안 이 좋은 것을 안 했던 거지?’라는 생각에 오히려 지난날이 반성이 되었다. 집콕하느라 여기저기 붙어있던 살도 점점 사라지고 조금씩 원래 체중으로 돌아왔다.


하루 이틀 하다가 끝나버릴 거창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계획 말고,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가볍게 시작할 수 있는 활동을 목표를 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하루에 10분 걷기, 계단 이용하기, 동네 한 바퀴 돌기, 인근 공원 산책하기, 5분 홈트 하기 등 일단 몸을 움직이자. 하다못해 자녀들과 놀이터에 갔을 때 한쪽 구석에서 맨손체조라도 해보면 어떨까?


사실 엄마들에게 고작 10분의 시간을 내는 것조차 어려운 일이라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처음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분만 자신에게 투자해보자. 자녀가 어려서 24시간 밀착 케어를 하는 상황이라 해도 배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깐이라도 내 시간을 갖자.


하루 10분 운동이 조금씩 몸에 익숙해졌다면 시간이나 횟수를 점점 늘려가면 된다. 경험상 주 3회, 이틀에 한번 이렇게 목표를 설정하기보다 그냥 매일 하는 게 더 쉬운 것 같다. 나는 의지가 약한 사람이기 때문에 쉴 틈을 줘버리면 이대로 계속해서 안 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아예 매일 고정적으로 운동을 하는 편이 나았다.


날씨가 안 좋거나, 여건이 허락하지 않는 날에는 유튜브로 홈트레이닝을 했다. 스트레칭이나 살 빼는 운동으로 검색해서 5분 혹은 10분짜리 짧은 것으로 골라서 했다. 힘들어서 중도 포기하느니 짧고 만만한 걸로 하다 보니 큰 부담 없이 이어갈 수 있었다. ‘어차피 땀도 나고 이왕 하는데 한 개 더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어느새 몇 개씩 쭉 이어서 운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작은 운동들이 매일 습관으로 쌓이니 의외로 군살이 조금씩 사라지게 되었다.  


걷기가 조금 지루하다면 자전거 타기도 좋다. 따릉이와 같이 공유 자전거를 이용하면 자전거 구매, 보관, 이동과 같은 골칫거리도 없고 비용 부담도 거의 없는 편이다. 한강공원을 달리다 보면 열심히 운동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극이 된다. 아름다운 풍경은 덤이고, 운동하는 주변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를 고스란히 받는 기분이라 여러모로 이득이다. 스마트폰, 힙쌕, 물병, 블루투스 이어폰, 편한 운동화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 좋아하는 음악과 함께라면 지구 끝까지도 달려갈 기세다.


처음에는 차가 없어서 강제 걷기로 시작된, 차마 운동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의 가벼운 산책이 고맙게도 우연히 변화의 시작이 되어 주었다. 일상을 지배했던 무기력함에서 벗어나는 길은 참 쉽고 간단했다. 걷기 그리고 햇빛 쐬기. 삶에 활력을 되찾고 싶다면, 이 작지만 위대한 두 가지를 잊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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