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랑을 거래한 당근시장
결혼 후 A동에 왔다
총각 때 살던 동네와 거리 차이가 있지만 이 곳이 낯선 동네는 아니다
나는 결혼 전에 두 번 이 동네에 왔었다
둘 다 각기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여자를 만나러 A1동에 왔을 때 서울에 이런 동네가 있나 싶었다
그녀와는 핑크빛은 아니었고 무리에서 만났던 애라 몇 번 더 같이 어울리다 말았다
그 후 이삼년 후 두 번째 여자를 만나러 A2동에 왔었다
거리 차이가 있기에 전혀 다른 동네였고 산이 있어 조용한 베드타운이었다
그 후 십년이 흘렀고, 그 사이 난 결혼했다
하릴없이 당근을 볼 때가 있다
그러다 좋아하는 브랜드 점퍼가 싸게 올라온 걸 잡아챘다
당근 또한 손맛이 있다
거래는 밤 9시에 하기로 했다
나는 A1동에 사는데 그곳은 A2동이었다
판매자는 여자인데 남편의 옷을 파는 것이었다
판매자는 밖이라고 아파트에 들어가 집앞에 놓인 가방을 가져가라고 한다
돈은 입금해달라고 했다
가방을 챙겼고 점퍼를 확인 후 계좌를 물어봤다
00은행 XXX-EEE-VVV
그리고 예금주 '@@@'
이름을 보자
그곳이 A2동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10년 전 기억이 떠올랐다
그랬다 A2동은 두 번째 그녀가 사는 곳이었다
이름이 특이해서 아직도 기억한다
솔직해지겠다
만나본 여자 중 제일 이뻐서 기억한다. 특이한 이름은 덤이다
미인이라 모든 게 특별했다
그 미모에 막걸리는 좋아하는 그 취향도 기억한다
그 미모에 공부까지 잘 해 스카이대학에 다녔고 그 대학 그 과 그 학번도 기억한다
그렇다 난 열등인의 잘못된, '잘난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다
@@@
가운데 한 글자가 달랐다
성과 끝 글자는 특이하지 않다
가운데 한 자에 이름이 특이해졌다
판매자의 이름도 특이했다
왠지 자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길 바라는 내 마음이 만든 갈망이겠다
판매물품을 보니 나보다 서너살 밑일 것 같다
그녀는 나보다 네 살 어렸다
"혹시 막걸리를 좋아하면서 예쁘고 공시를 준비했던 자매가 있으신가요?"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물어봐서 뭘 얻겠는가
'당근에 변태가 많다더니...' 판매자께 이런 생각을 일으킬 뿐
시동을 걸고 다시 집으로 향했다
그녀는 배우 박시연을 닮았었다
도시적인 미모에 막걸리 콜라보는 그래서 잊혀지지 않았다
한 달 여 우리는 같이 서울 유명 막걸리집을 찾아다녔다
당시 대학로에 유명했던 빙수 막걸리를 처음 봤을 때 그녀는 세살 아기처럼 웃었다
장마가 시작되던 즈음
공시를 준비하던 그녀는 시험에 집중하기 위해 지방으로 간다고 했다
멀지 않은 끝을 알고 시작한 만남이었지만
제대로 발화도 못하고 불꽃이 찬물에 꺼지는 것 같아 아쉬웠다
지난한 장마가 끝나고 한 여름일 때
여름휴가에 할 일이 없어 그녀가 공부하는 동네에 가봤다
작지 않은 도시였고 도시 한 가운데 큰 하천이 흐르고 있었다
그곳에서 잠시 그녀를 생각하며 두어시간 보냈다
강은 지독히 조용히 그리고 무겁게 흐르고 있었다
더웠다
그날 나는 그 물가에서 막걸리를 마시지 않았다
그런 아재력은 없었다
시원한 맥주를 하나 들이켜고 다시 떠났다
나중에 누군가와 그 도시에 대해 얘기를 하면서
나도 그곳에 가봤다고, 어느 하천에서 두어시간 있다 왔다고 하니 괴짜라고 하더라
나는 그녀를 사랑한 게 아니었다
사랑 정도로 감정을 키울 시간도 없었다
그녀도 나를 좋은 오빠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게다
미련이 큰 것도 아니다. 어차피 잘 될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리에게 주어진 부피에 비해 너무 작은 차지만 하고 터져버린 것 같아 가끔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