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곱창이 어울리지 않았던 여자
"곱창도 먹어보고 싶어요."
그녀는 곱창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니 정확히는 '먹어보고 싶다'는 거였다
먹어보고 싶다는 건 아직 먹어보지 않았다는 전제에서 하는 말이다
그해 32살이던 그녀는 곱창을 먹어보지 않았다
33살을 석 달 앞둔 날, 한강둔치에서 쥐포와 캔맥주를 마시며 그 말을 했다
그녀는 그것도 난생 처음해본 일이라고 했다
소녀처럼 웃으며 기뻐했다
며칠 후 우리는 종로5가 곱창골목을 찾았다
그녀의 소곱창 구이 첫경험을 하는 날이었다
그녀는 종로5가도 처음 와본다고 했다
서초동과 대치동에서 쭉 살아온 그녀는 강 건너가 새로웠다
백년은 더 된 것 같은 거리를 그 거리의 증손자뻘인 내가 휘젖고 다니자 신기해했다
뜨거운 불판에 소곱창과 양, 대창 등이 구어져 나왔다
지글지글 곱창 끓는 소리에 그녀는 환호했다
곱창을 먼저 먹어요, 금방 타거든요
곱창을 양념장에 찍고 양파나 부추랑 같이 먹으면 돼요
대창 안에 있는 하얀 건 모두 지방이니 알고 드세요
양은 꼬들꼬들한데 많이 익으면 딱딱해져요
나는 메뉴얼처럼 먹는 법을 읊었고 그녀는 부지런히 젓가락을 옮겼다
소주가 서너 배 돌았다
두 잔을 털어놓고서는 소주도 처음 먹어봤다고 한다
친구들은 술을 잘 안 먹고 먹어도 와인이나 맥주 정도 한다고 한다
조선부터 이어져온 골목의 오래된 노포에서 흔해빠진 소주를 마시며 나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를 들었다
소주 한 병이 비워졌다
호기롭게 나와 맞춰 먹던 그녀는 볼이 발그레졌다
"3월 이후로 30여년 살아온 삶과 전혀 다른 생을 살고 있어요
아주 내멋대로 살고 있어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춤추러도 가고 여행도 가요
혼자서도 여행하고 싶은데 아직 그건 못 해봤어요
또 이렇게 인터넷 친구도 만났어요
작년까지는 상상도 못할 일이거든요."
국적기 승무원이던 그녀는 사업하는 남자와 선을 보고 결혼해 5년차에 이혼했다
이혼 후 처음이자 제대로 혼자 사는 삶을 만끽하던 그녀는 최선을 다해 자유를 누렸다
자유와 일탈은 묘한 경계에서 뒤섞였다
낯설고 신선한 세계에서 자유를 즐기던 그녀를 친구들은 일탈의 맛에 빠졌다고 놀렸다
붕 뜬 자유는 불안함 위에 서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남은 생을 위한 단단한 토대를 준비했다
그 토대에 내 자리는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 욕심내지 않았다
우리는 청계천을 걷고 남들이 추억을 박제한 타일들을 보고 주인공들을 상상해봤다
이태원에 가서는 그녀가 자주 가는 메인 스트릿을 벗어나 미군부대 윗쪽 후암동 가는 골목을 쏘다녔다
다시 한강에 가서 유람선도 타봤고 유치하지만 즐거운 타이타닉도 흉내냈다
케이블카를 타고 남산도 갔다
하늘공원에 가서는 문이 닫을 때까지 공원을 돌아다녔다
서울에서 데이트코스라고 꼽히는 건 다 해보려 했다
그녀는 다 안 해봤던 것들이었다
첫눈이 내리고 세상이 식기 시작했다
우리의 약속은 늘 그녀가 먼저 제안했었다
그녀의 연락이 뜸해졌다
세상이 더 차가워지고 있었다
나는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기다려졌지만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봄이 가까워지자 연락이 왔다
새로운 일과 살 곳을 찾아 미국으로 간다고 했다
연락할 수 없었다고 했다
나도 충분히 이해가 됐다
미안함이 켜켜이 쌓이면 죄가 된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렇게 매정한 적이 있었다
그녀는 페이스북 친구를 하자고 제안했다. 가끔 내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싶다고 했다
그녀는 미국 도착 한달 후쯤 꽤 넓은 도로 사진을 올렸다
출퇴근하는 거리라고 한다
집에서 회사까지 차로 한 시간 걸린다고 했다. 역시 미국은 넓구나라고 생각했다
넓은 도로, 파란 하늘, 하얀 구름, 다양한 차...
사람은 안 보였지만 그녀와 어울리는 동네란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이후에도 집과 회사, 동료, 동네에 관한 사진을 올렸다
그녀 얼굴은 없었다
나는 그녀와 친구를 맺고 페이스북에 소식을 올리지 않았다
모든 사진과 글은 그녀를 향할 것 같았다
그녀에게 하고싶은 말이 많았지만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물론 그녀는 그런 나와 달리 전혀 괘념치 않았을 게다
그래도 난 못했다
몇년 전 곱창 바람이 불었다
징그러워서 못 먹겠다던 젊은 여직원들도 회식으로 곱창을 먹자고 했다
회사에서 종로5가는 거리가 있었지만
이왕 곱창 입문할 거면 제대로 된 집으로 시작하자며 끌고 갔다
십여년만의 방문인가?
곱창 열풍으로 그곳은 더 시끌벅적했다
대여섯의 직원들이 깔깔대며 곱창을 시작했다
곱창을 먼저 먹어, 금방 타
곱창을 양념장에 찍고 양파나 부추랑 같이 먹어
대창 안에 있는 하얀 건 모두 지방이니 맛을 얻고 다이어트를 내줘라
양은 꼬들꼬들한데 많이 익으면 딱딱해지니 어서 먹어
나는 메뉴얼처럼 먹는 법을 읊다가 멈추고 소주잔을 들이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