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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꼬래 Apr 23. 2024

미꾸라지가 되기로 다짐하다

유튜브를 보던 도중에 조승연 작가가 뇌과학자를 초청해서 한국인의 특징에 대해 설명해주는 콘텐츠를 발견했다. 빨리빨리? 불안증? 뇌과학자가 소개하는 한국인이 분노하는 이유? \[1편\]  @CuriousBrainLab


주로 분노의 메커니즘은 위협과 좌절의 분노로 구분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좌절에 대한 분노감이 많다고 소개하는 내용이다. 그 이유는 사회가 정한 미래를 따라가야 한국인이 따라가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느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부를 열심히하고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갖고 좋은 배우자를 얻고 좋은 집을 구하는 사회가 정해준 길.

여담으로 재밌게도 나는 부모님께 이 길에 대한 강요나 강조를 단 한번도 받아본 적이 없다. 다만, 내가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해주시고 어떠한 길을 선택해주셔도 응원해주시는 부모님이 뒤에서 늘 계셨다. 막 엄청난 부자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에서 두 직장인으로서 사회에 성실하게 기여하는 평범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두 분께서는 나를 우리나라의 무한 경쟁 시스템에 나를 놓지 않으셨고, 난 이에 매번 감사의 마음을 느낀다. 

다만 너무 자유롭게 해주셔서 조금만 더 길을 제안해주셨으면 좋았겠지만!
그럼에도 무엇보다 자유를 느끼게 해주시고 내 선택을 존중해주시고 그에 맞는 책임감을 가질 수 있도록
충분히 느끼게 해주셨기 때문에 괜찮다.


다시 돌아와서, 본 내용에서 분노와 더불어 한국인들의 조급함, 불안 등도 함께 이야기 한다. 특히 비행기나 버스에서 목적지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일어나서 짐 챙기고 어떻게든 빨리 나가려고 하는 습성을 대표적 예로 소개한다. 여기서부터 꽤 놀라운 관점이다. 정해진 길이 하나밖에 없어서 이런 국민적 특성을 지니게 됐다는 것. (앞서 말했듯이 내 경우 부모님께서 늘 내 선택의 자유와 책임을 말씀하시면서 존중해셨기 때문에, 나는 30년 가까이 저런 사회현상에 대해서 와닿지 않았다.)


위에 얘기한데로 부모님이 정해준 길,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 성공하기 위해선, 무조건 대학교는 나와야지 라는 관점 말이다. 본인이 필요해서 하는 걸 넘어서 할게 없으면 대학교를 가는 것까지도, 모두가 가기 때문에 '그게 안전하니까' 라는 관점이 여기에 포함된다. 또한 한국에서는 명품 핸드백을 사더라도 급이 나뉘어 있을 정도로 비교하고 눈치를 본다. 힘들게 돈을 모아서 샀는데 불구하고 자녀 학교의 학부모 회의에 샤넬백을 들고가면 “저런 낮은 등급을 들고오네” 라던지 “돈 좀 있다고 티내는 것봐”와 같은 식의 욕 먹을까봐 들고갈지 말지 고민하는 눈치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나는 아닐 줄 알았다.

여태 몰랐다. 나도 다를게 없었다. 얼마전에 아내의 생일이었는데, 나는 그동안 정성을 핑계로 한 번도 값비싼 선물을 해준 기억이 없어서 내가 지금 가용할 수 있는 현금에서 명품 선물을 사주려고 했다. 예산은 한 백만원 정도를 잡고, 지인에게 어떤 걸 선물해줘야 좋을지 물어봤다. 하지만 지인은 그 예산으로는 지금 아내 나이대에 맞는 명품을 구하기 어렵다는 말을 했고 적어도 3-4백만원 정도는 되야 한다고 했다. 이 때 정확히 느꼈다. 더불어 내 스스로가 굉장히 불쌍하다고 느껴졌다. 물론 살 수 있다. 그러나 이걸 못사서 불쌍한게 아니라, 이건 이래야해, 이때 되면 이정도는 되야지라는 관념에 사로잡힌 사회 분위기 자체에 평생 살아가야하는 나 자신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무슨 말인지 안다. 마치, 내가 10대 때 아이들 사탕반지를 커플링이라고 여자친구에게 줄 수 있는 노릇은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난 사탕반지를 주는 게 아니다. 고무줄로 만든 반지도 아니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선물이었고,
그 급은 사회가 만들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를 인식한 뒤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행복한 삶을 위한 필수조건 중 하나로 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사람들의 분위기를 보며 내 소비마저도 눈치봐야 하는 나쁜 자본주의가 우리나라에 만연해있다. 이는 곧 내 자율성을 제한한다. 덕분에 내가 불쌍하다고 느꼈고, 우울감과 더불어 불행함도 느꼈다. 이는 곧 학교에서 발표하기 어려워하던가, 나댄다고 눈치준다던가 등의 분위기로 이어진다. 이처럼 우리나라는 미꾸라지를 용인하기 어려워하는 사회다.  장동선 뇌과학자님이 말씀하셨다. 미꾸라지가 계속 움직여서 하천이 고여서 침적물만 쌓이고 산소가 통하지 않아서 썩지 않고 더 많은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하천이 되는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미꾸라지가 되려고 한다.

나 역시 부모님을 통해서 자유에 대한 중요성을 느꼈지만, 나 역시 여전히 전형적인 한국인의 특성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긴 어렵다. 그럼 미꾸라지가 많은 나라가 어딜까? 내 자율성을 최대한 드러내고 나를 표현하는 자유를 가장 보장해주는 사회는 어디일까? 아무래도 미국이다. 미국에서 미꾸라지가 되어서 돌아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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