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각은 자유
"얘들아, 엄마 아빠가 할 말이 있단다."
"아빠가 목회의 길을 가려고 한다.. 괜찮겠니?"
고등학교 2학년 때의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목회의 길'이 뭔지도 몰랐고,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었지만, 당연히 YES!
"네! 아빠!. 그럼요!"
그렇게 저는 수능을 마치자마자, 우리는 번화했던 광명시를 떠나 ‘뱃고동 소리가 들린다’고 막연히 상상했던 인천으로 이사하게 됐습니다.
새 집은 생전 처음 보는 옥탑방이었고, 교회는 깊은 지하층에 자리한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꽤 순수했었기에 그 어떤 불평도 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렇게 글을 쓰며 비로소 그 시절을 조용히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부터 제 성격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지하실 교회에 누군가가 오면 어찌나 반갑던지, 영업력 강의를 듣지 않아도 저절로 영업 마인드가 샘솟아 나왔습니다.
우리 교회에 자주 오는 친구들은 초등학교 4, 5학년 여자 친구들이었습니다. 함께 피아노를 치고 먹고 이야기하며 놀았습니다. 그때는 아이들이 전부였던 것 같습니다.
새벽 5시에 학교 어학원에 도착, 학교 활동을 잠깐 하고 , 낮에는 피아노 학원을 갔다가 다른 지역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저녁에는 수업을 듣고, 다시 교회에 와서 아이들 공부를 가르치고 밤늦게까지 아이들과 청년들과 활동을 하며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저는 정말 많은 일들을 하는 사람이었네요. 그때도 공부만 했어도 아, 아쉽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재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피아노 학원에서도 인기 있는 강사였고, 과외 아르바이트에서도 인기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기 위해 악기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비교할 사람이 없던지라 제가 다 잘하는 줄 알았습니다.
교회 절기마다 아이들과 함께 워십 댄스를 준비하면서 댄스도 준비했습니다. 이건 확실히 재능이 없긴 했지만, 패기가 넘치던 시절이었죠.
시간이 흘러, 학교 대선배와 결혼을 하게 되고, 하나님께서 귀한 선물로 첫째를 주셨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이 저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어머, 승희쌤, 승희쌤은 진짜 좋은 엄마가 될 거야. 이렇게 할 줄 아는 게 많잖아! 공부도 가르쳐 줄 수 있지. 피아노도 가르쳐 줄 수 있지. 악기도 가르쳐 줄 수 있고, 성격도 좋아. 정말 아이들 복 받았다 복 받았어!"
맞습니다. 저는 그런 줄 알았습니다.
이렇게 자신감으로 출발했습니다.
PS. 그런데 브런치는 이렇게 글자가 작은 건가요? ( 모바일은 또 괜찮네요 ^^ 아 어렵다 브런치 ㅋㅋ)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