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디지 못하겠는 감정의 포화상태가 왔을 때 그게 어디든 물리적으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호기롭게 떠난다고 했지만, 실은 엉망이 된 것 같은 그림을 찢어버리고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을 떠났고 어느새 2년이 흘렀다.
힘들었던 그 겨울, 매일같이 찾아와 호들갑스럽지 않게 옆에 있어준 사람, 얼마 전 그 친구가 말했다.
"그래도 너 그때보다 훨씬 나아졌어. 정말"
그 당시 나는 가족에게 받은 상처, 원망하는 마음들로 아프기 시작했다고 믿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건 핑계 아닌 일부였고, 스스로 사랑하지 않았던 내가 가진 것들, 그대로의 모습들을 마주했을 때, 언젠가는 무너졌을 모래성이 그야말로 무너진 것이다.
태국에 와서 나는 마치 새 스케치북을 받은 것 같았다. 뭘 그려야 하는지 몰라 여전히 막막하지만 일단 연필을 들고 밑그림을 그리고 또 지우고... 덧칠하고 덧칠하다가 언젠가 이 그림은 내가 버린 그림과 비슷해질지 모른다.
그때는 이상한 색으로 뒤덮인 그림일지라도 예쁘게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면 좋겠다.
후회, 슬픔, 절망
제 아무리 어둡고 차갑더라도 내 붓 끝의 모든 색을 다 사랑하기를
그린이_작은 피카소 이두열. 두 살 때 자폐 판정을 받고 그림을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