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주는 꽤 다이나믹하게 보낸 것 같다. 거센 파도가 출렁이듯 내 감정은 극단을 오갔다.
감정에 증폭기 역할을 한 건 허리통증이다. 벌써 한 달째 허리통증이 지속되고 있었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를 찍었지만 이상이 없었다. 한의원에서 침을 맞고 부황을 떠도 반나절이 가기도 전에 다시 고통이 찾아왔다.
원인 모를 고통으로 몸과 마음이 지쳐갔다. 야무지게 계획을 세워도 해낼 수 없는 몸 상태에 좌절과 무기력이 지속됐다. 퇴근 후에 부업이나 자기계발을 하는 사람들은 무쇠로 만든 걸까? 같은 인간인데 체력에서부터 불평등이 있다는 사실이 괴로웠다.
물론 기쁜 일도 있었다. 용납하기 힘든 회사의 처우와 환경에도 동료들은 늘 따듯했고, 서로의 안부를 걱정했다.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는 회사의 상황에서도 옹기종기 모여앉아 서로의 체온을 나누는 펭귄처럼 우리는 서로를 의지했다.
이번주는 딱히 회사에서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하기는 눈치가 보이고, 회사원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할 일이 없나 찾아봤다. 화요일이 되도록 고민을 지속하다가 밤에 푸념을 늘어놓듯 기도를 했다.
"하나님, 회사가 답답해요. 저를 여기에 왜 보내신 거에요?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보내시면 안되는 건가요? 한국어교원 자격증은 어디에 쓰려고 따게 하셨나요? 이 와중에 프랑스는 왜 자꾸 가고 싶은거에요? 회사에는 일도 없고 무거운 공기만 가득해요. 제가 할 일을 알려주세요."
기도인지, 불평인지 모르는 말을 침대에 누워서 중얼거리다가 잠에 들었다. 다음 날,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새로운 길로 인도하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도 되나 싶었지만 이미 나는 일을 벌이고 있었다. 처음 해보는 업무지만 신이 났다. 동시에 익숙하지 않은 업무라서 머리도 아팠다. 상사분께 조심스럽게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 드렸다. 예상대로 상사분은 '얘가 또...'이런 표정과 함께 해보라고 격려해주셨다.
땅 짚고 헤엄치듯 AI에게 하나씩 물어보면서 공터에 집을 짓듯 차근차근 일을 진행해나갔다. 다음 주에는 그럴듯한 결과물을 보일 수 있기를 속으로 기도하면서 그때 그때 떠오르는 생각에 의존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허리가 아픈 이유는 겨울 내 근육이 긴장해서 뭉쳐진 것 같았다. 올 겨울에는 온천을 한번도 못갔다. 따스한 물에 몸을 푹 담그고 싶었다. 몇 주 동안 집에서 가까운 사우나를 찾다가 드디어 발견했다. 회사에서 버스로 한 번에 갈 수 있고, 사우나 근처에는 지인이 하는 맛있는 브런치 가게까지 있었다.
신난 마음으로 다음주에 반차를 써야겠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자랑했다. 그런데 엄마랑 동생이 일주일 동안 동남아 여행을 가자고 했다. 생각하지 못한 멋진 계획에 연차를 확보하기 위해 내 야심찬 사우나 계획은 봉인해두었다. 내 계획을 포기했지만 아무렇지 않았다. 더 만족스러운 계획이 생겼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것도 그렇겠지? 내가 열심히 계획을 세우더라도 그것보다 더 크고 멋진 계획이 준비되어 있을 수 있다. 이렇게 인생의 원리를 하나 배웠다. 감사한 일이다.
오늘은 교회에서 마지막 새가족부 교육을 했다. 5주간 교육을 끝으로 나는 교회의 정식 멤버가 되었다. 교육시간에 아브라함의 절대적인 순종은 하나님와의 신뢰, 관계에서 나왔다고 배웠다. 다 아는 내용인데도 와닿았다. 아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따를 만큼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다.
비윤리적인 명령이었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히 들었고, 그 분에게 선한 뜻이 있음을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다.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아들을 죽이도록 냅두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전적으로 믿는 지 시험하신 것이다. 이번 주 내내 아프다고 투정부렸던 내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내가 원하지는 않지만 이런 고통에도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이 끝나고 목사님 설교를 들었다. 유대인 중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늘어나자 이를 시기한 정통 유대인들의 박해가 시작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이스라엘을 떠나 이곳 저곳 떠돌게 된다.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과 원주민들이 함께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님의 복음이 세계적으로 퍼졌다.
하나님 뜻대로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던 사람들에게 어려움이 생기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면서 답답했을 수도 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하심은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서, 고통과 어려움, 비난 등 어두운 면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한다.
예수님을 믿는 유대인들은 도망자 신세였으나, 그들이 가는 곳에는 복음이 심어지고 교회가 세워졌다.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지금 나의 아픈 상황, 이해되지 않는 환경들도 분명히 하나님의 멋진 작품을 만들고 있는 중일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나를 지금까지 인도하신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기로 하자, 모든 일에 감사가 따라왔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과 함께 집에 돌아오는 길은 원망과 불평이 사라지고 다가올 미래에 대한 기대와 감사를 미리 만날 수 있었다. 여전히 허리는 불편했지만, 일하거나 글을 쓰고 예배를 드릴 때는 아픔을 어느정도 잊을 수 있었다.
감사할 일은 지천에 널려있었다. 내가 보지 못할 뿐이었다. 그리고 예배와 말씀을 통해 감사를 회복하자 의욕이 살아났다. 이번주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매일 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