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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물 Oct 31. 2019

거꾸로 서는 일

머리 서기로 세상을 뒤집어 보기

                

물구나무 선 사진을 모아놓으면 계절감이 느껴진다



위험하고 독특하고 산만하거나 신나는 운동만 모아서 가르쳐주는 트레이닝 센터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아주 넓은 체육관을 덤블링으로 건너기, 짐볼 위에서 오래 균형 잡기, 어딘가를 거미 영웅처럼 타고 오르기 같은 것들. 이게 뭐야 싶은 것들을 하나씩 해 나가면서 '이상한 재주'가 많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런 비스무리 하기라도 한 곳은 키와 마음과 체력을 동시에 성장시킨다는 어린이 체육센터밖에 없지 않은가.


나는 이상한 재주를 가지기 위해 주간 약속에 물구나무서기를 넣었다.


사실 이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산만한 동작은 결코 아닌데, 집에서 언제든 할 수 있고 본인 기준에서는 그 외 -위험하고 독특하고 신나는-에 부합했기 때문에 3주 차 때부터 실천하기 시작했다. 요가의 꽃이라고 불리는 시르사아사나(sirshasana)라는 동작으로 원래는 집중력과 심신의 안정과 같은 말들이 딸려오는 자세이나, 고백하건대 나는 순전히 재미의 일환으로 시작했다..

처음에는 다리를 일자로 들기가 쉽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찍은 내 옆모습은 심히 우스꽝스러웠다. 수 번을 뒤로 넘어가고 머리가 산발이 되며 겨우 다리를 비스듬하게 폈다. 그때는 운동도 덜 하던 때라 영상 속 내 등판이 꼭 정육점에 거꾸로 매달려 팔리길 기다리는 소시지 같았다.


몇 주에 걸쳐 머리 서기를 연습하자 실패하는 날이 점차 줄었다. 꼿꼿하게 서는 법과 다리를 어느 정도 폈을 때 가장 일자가 되는지, 배의 어느 부분에 힘을 줘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이제는 방석을 깔지 않아도 곧잘 할 수 있고 팔 모양을 바꾸고도, ㄱ자를 만들어서도 가끔 성공하곤 하지만 여전히 집중이 안 되는 날이면 쉽게 고꾸라진다.


처음엔 다리를 쭉 펴는 게 그렇게 힘들었다

      

며칠을 쉰 날이면 머리 서기는 단호하게 낙점을 줬다. 소홀해진 만큼 여러 번을 시도해야 겨우 화해의 악수를 받아줬다. 그렇게 몇 번 고꾸라지고 성공하면 일종의 합리화를 얻기도 했다. 내가 돌보지 못했던 일상에 대한 합리화, 이걸로 다시 돌아왔다는 꼼수를.


다른 사람들처럼 거꾸로 서면 명상을 하는 느낌이라거나 심신이 안정된다거나 하는 것은 아주 옅게 느낀다.

그런 효과를 바라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나는 머리 서기를 하는 날들에도 자주 엉망이 되고 갈피를 못 잡고 뒤뚱뒤뚱 구석으로 기어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머리 서기는 내게 어떤 균형을 주었다. 몸의 균형을 맞춘다고 늘 마음도 맞춰지는 건 아니었지만 몸이 먼저 손을 건네게 만들어 준 것은 확실했다.


바로 보는 것도 잘 못하지만 자주 뒤집은 세상을 보고 안 쓰던 근육으로 몸을 받친다.

뭐 하나 제대로 끝내 놓지 못하고 벌려놓는 게 꼭 내 미운 점과 닮았지만 결코 포기하고 싶지 않은 변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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