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초등 입학 전까지는 맞벌이에 몰두하느라 육아는 뒷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아이들은 매일 아침 7시 반부터 저녁 6시 반까지 어린이집에 있었다. 아이들에게 하루 중 엄마를 보여주는 시간이 많아진 건 불과 2년밖에 되지 않았다.
일 하러 가는 길은 늘 지각생이 되어야 해서 마음이 고달팠지만, 적어도 일할 때는 마음이 무척 편했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아도 되는, 나 스스로 내 한 몸만 건사해도 되는 그 시간이 좋았다.
직장에서 어떤 사람이 "지금 4살이면 아이들이 너무 예쁘겠어요. 지금 아이들 보고 싶지 않아요?"라고 하면 "아니요. 별로 그렇진 않아요."라며 과장된 표정과 함께 농담으로 답하곤 했다. 적당히 긍정적으로 답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데, 그때의 나는 내 심정을 꼭 드러내야 직성이 풀렸나 보다.
그렇게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말을 해줘도 들리지 않았다. 들려도 내가 외면했다. 아이들이 한창 예쁠 때라는 말은 와닿지 않았고, 아이들이 어릴 때 시간은 훅 지나간다는 말도 공감되지 않았다. 특히 3세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말이 제일 듣기 싫었다. 내가 그렇게 못했으니까 그 말이 듣기도 싫었던 것이다.
엄마가 되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지지 않아서 그런지, 겉으로는 엄마인 척하고 있지만 진정한 내면으로는 엄마 되기를 끊임없이 거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도피하듯이 직장생활을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에는 직장을 포기하더라도 아이를 돌보는 데 매진하는 게 좋아 보이는데, 만약 과거를 다시 살게 되더라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게 틀림없다. 왜냐하면 지금 느끼는 것은 이만큼 키워보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정말 먼저 살아본 사람 이야기를 듣는 게 현명하다는 것을 살아갈수록 체감하게 된다. 꼬부랑길을 이리저리 헤매지 않고 곧게 가도록 도와주는 그 말들을 미리 듣고 새겼다면 지금 나는 한결 편안한 육아를 할 수 있었을 것 같다. 밀려 있던 7년 치 사랑을 과도하게 갈구하는 아이들이 어떨 땐 버겁긴 해도, 지금이라도 외면하지 않고 엄마노릇을 진심으로 시작한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히려 요즘 3세 미만 아이들을 떼어 놓고 직장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때의 나를 대입하여 후회하긴 하지만, 나는 그들의 선택, 그리고 그때 나의 선택이 뼈저리게 이해가 된다. 우리 모두 그렇게 겪어버린 그 시간 또한 육아의 한 장면으로 남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