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맛있게 먹는 법은 '좋은 방법으로 잘 굽는 것'을 알아야 가능합니다. 앞서 부위 편, 두께 편, 그 외 편, 실전 편을 통해서 좋은 삼겹살 원육을 고르는 법을 알아봤습니다. 좋은 삼겹살을 골랐으니 이제는 삼겹살 맛있게 굽는 법을 알아볼 차례입니다. 오늘은 구체적 방법론에 들어가기 앞서 좀 더 넓은 의미에서 고기 맛있게 굽는 기초를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삼겹살을 구워 먹든 스테이크를 먹든 고기를 구워 먹는 것은 사실 아주 원시적인 작업입니다. '고기'와 '불(열)'만 있으면 완성되는 요리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맛있게 굽기 위해서는 바로 이 불에 대해서 잘 이해해야 합니다.
시간이 없는 분을 위한 오늘의 한 줄 요약입니다.
"오늘은 이것만 기억합니다. 마이야르는 177도!"
고기 굽기의 핵심은 마이야르다 이말이야르
'마이야르 반응(Maillard Reaction)'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마이야르'라는 단어는 승우아빠의 2018년 영상 '후라이팬으로 스테이크 맛있게 굽는법'(21년 8월 기준 395만 뷰) 덕분에 우리나라에 널리 알려졌습니다. 프랑스의 화학자 카밀 마이야르가 처음 발견한 화학반응을 부르는 말로 단백질과 당 그리고 열이 만나 갈색으로 변하며 감칠맛과 향을 만드는 반응을 말합니다. 이 반응은 고기뿐만 아니라 커피, 빵 등에서도 맛과 향을 내는데 중요한 반응입니다.
일반적으로 삼겹살을 구우며 말하는 '노릇노릇' 혹은 '골든 브라운'과 같은 표현이 바로 이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하기 편합니다. 요새는 마이야르란 단어가 너무 남용되어 뭐든 노릇해지면 마이야르라고 하기도 하는데 단백질이 없으면 마이야르 반응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양파나 마늘을 구워 노릇해졌다고 해서 이를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하진 않습니다. 양파나 마늘에는 단백질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원리로 들어가면 화학기호가 난무하며 머리가 아파질 수 있으니까 여기서는 머리 아픈 얘기 모두 생략하고 중요한 얘기에만 집중하겠습니다.
결론만 말씀드리면 이렇습니다.
1.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야만 고기가 맛있어집니다.
2. 마이야르 반응은 177도부터 가속화되고 200도 이상이면 고기가 탑니다.
'고기는 구워야 제맛', 사실인가요?
네, 사실입니다. 구워야만 177도 이상에서 조리할 수 있고, 그래야만 마이야르 반응이 일어나니까요.(강조되고 반복되는 소리는...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ㅎㅎ)
우리가 거창한 화학 원리는 모르더라도 경험적으로 삼겹살 구이와 삼겹살 수육이 뭔가 다른 맛을 낸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이 발표한 ‘2019 한국인의 돼지고기 소비 트렌드’를 봐도 돼지고기 평균 소비량은 구이용이 46.2%로 가장 많았고, 수육 보쌈은 16.1%에 불과했습니다. 역시 사람들은 수육보다는 구이를 더 선호하는군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근본적인 차이는 구이가 더 맛있기 때문 아닐까요?
수육에서는 마이야르 반응이 제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수육은 물속에서 익히는 과정을 거칩니다. 잘 아시다시피 물은 100도에서 끓습니다. 아무리 팔팔팔팔 끓는 물이더라도 물로 조리하면 절대 177도까지 올라갈 수가 없습니다. 이런 수육 조리방식으로는 마이야르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우리가 맛있다고 느끼는 고기의 맛은 177도 이상에서 마이야르 반응이 제대로 이뤄져야만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구이가 더 인기가 있고 '고기는 구워야 제맛'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고기 굽기 전에 표면의 물기를 제거해주라는 말 자주 들어보셨죠? 이 또한 마이야르 반응과 연관됩니다. 고기 표면에 물이 묻어있다면, 물이 다 사라질 때까지는 고기가 177도에 도달하지 못할 겁니다. 물론 계속 구워주면 물은 증발되어 날아가고 결국엔 177도에 도달할 수 있지 않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물이 증발되는 과정 동안 불필요한 열에너지가 낭비되게 됩니다. 불에 올리기 전에 고기 표면의 물기만 쓱 닦아주는 작업만으로도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더 좋은 마이야르 반응을 이끌어 낼 수 있습니다. 더 좋은 마이야르 반응은 더 맛있는 고기를 의미합니다. 귀찮으시더라도 고기를 굽기 전 표면의 물기는 꼭 제거해주세요.
마이야르를 잘 만들어 내는 불판의 온도?
마이야르를 내기 위해서는 조리하는 온도가 반드시 177도를 넘어야 합니다.(오늘은 계속 한 놈만 팹니다... 177도) 이건 라면을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고 끓일지 물이 끓으면 스프를 넣을지 같은 애매한 문제가 아니라 아주 명확한 사안입니다. 고기를 구울 때는 불판의 온도가 177도 이상 충분히 올라왔을 때 확실한 마이야르 반응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고깃집에서 적외선 온도계로 불판 온도 재는 것 보셨죠? 그냥 전문가 흉내 내려고 액션 넣는 게 아니라 원래는 마이야르 반응을 잘 만들어 내기 위해서 측정하는 겁니다. 일반적으로 삼겹살 식당에서 선호하는 적절한 불판 온도는 200~250도 정도인데요. 이 또한 마이야르 반응 177도 때문입니다.
마이야르 반응은 177도라면서 불판은 왜 그걸 넘긴 200도~250도냐고요? 냉장고에서 방금 꺼낸 고기의 온도는 3~4도 되겠죠? 생고기와 불판의 온도 차이가 상당하므로 아무리 달궈진 팬이어도 고기를 올리면 일시적으로 온도가 내려갈 겁니다. 생고기가 올라가서 온도가 일시적으로 떨어지는 것까지 감안하면 팬의 온도를 200도 혹은 그 이상으로 설정해야 생고기를 올린 후에도 177도 이상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생고기를 올렸을 때 불판의 온도가 확확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불판이 열을 잘 머금고 쉽게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열전도율이 낮은 무쇠 가마솥(혹은 주철) 같은 재질이 구이에 사랑받고 있는 것입니다. 한번 뜨거워지면 그 위에 생고기를 올려도 쉽게 열이 식지 않으니까요. 그렇다고 고기는 주철 팬이나 가마솥에만 구워 먹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일반 가정에서는 스텐인레스 팬이나 심지어 코팅팬도 다 괜찮습니다.
식당에서는 적외선 온도계로 불판의 온도를 알아서 잘 재주신다고 하지만 집에서 먹을 때는 적절한 온도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간단합니다. 우리도 적외선 온도계를 사는 겁니다!(참고로 저가형은 택배비 포함 만 원 정도선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정확하진 않지만 돈이 안 드는 방법도 당연히 있습니다. 스텐 팬이 충분히 예열됐는지 확인할 때 주로 쓰이는 방법인데 웬만하면 다른 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되므로 이 방법을 사용하면 간단히 알 수 있습니다.
영상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팬이 약 180도 이상으로 달궈졌을 때 팬 위로 물을 떨어뜨리면 물이 끓는다기보다 물방울이 팬 위를 구르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를 라이덴프로스트 효과라고 부릅니다. 라이덴프로스트 효과가 시작되는 지점은 여러 요소에 의해 달라질 수 있으나 우리의 목적은 그 온도를 정확히 알려고 하는 것은 아니니 대략적으로 이 현상이 보이면 충분히 뜨거워졌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비록 이 방법이 불판의 온도를 아는 완벽한 방법은 아니지만, 불판 위에 손을 놓고 2~3초 버틸 수 있는 정도면 충분히 달궈진 것이라고 보는 방법보다는 훨씬 안전하다고 봅니다.
만약 에어프라이어나 오븐으로 조리하는 경우에도 177도는 잊으시면 안 됩니다. 온라인 상에 떠도는 레시피 중에는 설명의 편의를 위해서 '160도에서 40분'같이 177도 이하 온도에서 요리하라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마이야르는 177도에서 가속화되는 것이니 160도에서 조리한다고 해서 마이야르 반응이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몰랐으면 몰라도 이제 마이야르에 대해서 아셨으니 고기를 요리하실 때는 177도 이하에서 속을 천천히 익히더라도 마지막에는 마이야르를 위해서 177도 이상으로 설정하셔서 표면의 마이야르 반응을 화끈하게 이끌어 내시길 추천드립니다.
마이야르 반응은 돼지고기(삼겹살, 목살, 항정살 등), 소고기(꽃등심, 새우살, 채끝 등), 닭고기(버팔로윙, 버팔로스틱 등)를 포함한 모든 고기에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러니 마법의 온도 177도는 잊으면 안 되겠죠? 이거 하나만 기억하면 모든 고기 요리에 써먹을 수 있잖아요.
오늘은 고기 굽기 마법이 시작되는 온도 177도(feat. 마이야르)에 대해서 알아봤습니다. (이만큼 반복했으면 177도만큼은 머릿속에 꼭 남았으리라 믿습니다....ㅎㅎㅎ)
다음번에는 고기 굽기의 최대 난제 '삼겹살은 몇 번 뒤집는 것이 적정인가'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