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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May 20. 2022

개소리하지 말고 사랑이나 해

오글오글 2주 차


'경욱아, 사랑이 뭘까?' 질풍노도의 시절을 보내던 중학생 시절, 내 친구 만민이가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던졌다. 나는 만민이의 좋은 친구였으므로 잠시 생각하는 척을 하고서는 곧 활짝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개소리하지 말고 공부나 해' 안타깝게도 내가 가진 사랑에 대한 인식은 딱 그 말을 뱉던 그 순간 그 정도에서 멈췄다. 꽤나 많은 세월이 지나 몇 번의 인연을 거쳤어도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사랑에 관해서 완전하게 무지하다.


사랑이 뭘까. 만민이가 뜬금없이 던졌던 그 질문을 오늘 뜬금없이 다시 마주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손은 뇌보다 빠르니까. 키보드 위에서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달려간 사랑이란 단어는 검색창을 빠르게 지나 에리히 프롬의 명언에 다다른다. "사랑이란 인간이 혼자 있는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과 이루는 연합". 아, 뭔 개소리야. 역시 사랑을 깨닫는 순간은 클릭 한 번, 엔터키 한 번처럼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그래 딱딱하기만 한 사전적 정의 말고 감성이 말랑하게 녹아있는 사랑시는 다르지 않을까. 글동무께서 친히 보내주신 백석의 시를 읽는다. 눈은 푹푹 나리고, 백석은 나타샤를 사랑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이 어려워 당나귀처럼 응앙응앙 울뿐이다. 문학 지문으로 나온 백석의 시를 푸는 법은 배웠을지 몰라도 백석의 사랑하는 마음을 상상하는 법은 배우지 못했다. 평생을 가도 내가 사랑하는 그 마음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사랑이 다 무어란 말이냐. 이해할 수 없는 그 단어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 나는 대상없는 푸념만 허공으로 던진다. 어려운 일을 마주했을 때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일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쉬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랑이란 단어는 잠시 내려두고 매일 쉬이 내려 마시는 커피부터 한잔 마시기로 했다. 고소한 커피 한 모금이 부드럽게 목줄기를 타고 흘러 내려가던 그 순간에서야 나는 나의 미련함을 깨달았다.


아아, 사랑을 글로 이해하려 한 것부터가 멍청한 일이다. 좋은 커피가 뭔지 알기 위해서는 커피에 대해 자세히 적힌 책을 찾아 읽을 것이 아니라 그냥 좋은 커피를 마셔보면 된다. 아무리 유려한 문장으로 자세히 묘사 된 그 어떤 글도 커피 한 모금의 가르침에는 다다를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사랑에 관한 좋은 글을 많이 읽는다 하더라도 글로만 읽은, 글로만 배운 사랑이 이해 될 리 없다.


대학 시절, 사회에 나간 선배들에게 어떻게 하면 지금 순간을 잘 보낼 수 있느냐고 자주 물어봤다. 그때마다 선배들은 '그냥 연애나 많이 해'라고 대답해주었다. 그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나새끼는 나이만 먹었지 여전히 사랑을 모른다. 만민아 사랑이 뭘까. 만민이는 나의 좋은 친구이므로 오늘의 나를 보면 아마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개소리하지 말고 그냥 사랑이나 해'


이 글은 오글오글(2주 차 주제 : 사랑에 대하여)서 함께 쓴 글입니다.


1주 차 주제 : 나는 왜 쓰는가

2주 차 주제 : 사랑에 대하여

3주 차 주제 : 한 사진을 보고 드는 느낌을 글로 써보기

4주 차 주제 : 여행

5주 차 주제 : 윤리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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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글오글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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