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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Oct 14. 2022

착한 사람

팔글팔글 네 번째 글

조용한 적막을 깨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자 나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누구야 또. 이 중요한 순간에. 나는 두 손으로 쥐고 있던 올가미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여보세요. 어, 세민이구나. 나야 잘 지내지. 어어 그래. 축하한다. 그래 그럼 그날 보자. 연락이 뜸하던 친구가 연락을 오는 경우는 대부분 비슷하다. 결혼이든가, 뭐 결혼이든가, 그도 아니면 결혼이겠지. 그래도 카톡이나 대충 하면 됐지 전화까지 하는 정성이면 세민이는 참 착하네.


그래 착하다는 거 중요하지. 내가 죽으려던 이유도 그놈의 착함 때문이었지. 어느 날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 거야. 나는 왜 이렇게 미련하게 착하게 살고 있냐는 그런 생각. 주변 친구들은 날 감정 쓰레기통 취급하고. 직장 동료들도 귀찮은 일은 모두 다 내게 던져버리고. 앞뒤 안 가리고 믿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동네 친구들은 다 내 뒤통수만 치고. 그래 이게 다 착하게 살아 보겠다고 살다가 그렇게 된 거 아닌가. 착하다는 게 도대체 뭐라고 나는 그렇게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걸까.


오늘 아침 홍식이와의 통화 덕분에 마음먹기가 쉬워졌다. 그게 벌써 작년 일이 됐구나. 같은 동네 불알친구인 홍식이는 돈이 좀 몰려있어 급하게 전세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얼마 전에 코인으로 크게 해 먹었던 터라 와이프가 알면 진짜로 이혼당할지도 모른다고. 으휴 븅신. 네가 그럼 그렇지. 얼마나 필요한데. 아. 그 정도는 나도 없는데. 잠깐이면 된다고? 진짜지? 음... 에이 그래 나도 이거 전 재산이니까 잠깐만 쓰고 줘. 이자 많이 쳐서 보내고. 역시 착하다고? 미친놈이 새삼스럽게 왜 또 그런 소릴해. 한우로 갚어 새꺄. 그렇게 나는 거의 내 전 재산에 가까운 금액을 별 고민 없이 보내줬다. 불알친구 홍식이었으니까. 하루 이틀 본 건 아니었으니까. 잠깐이면 된다던 홍식이는 연락이 될 때마다 매번 말을 바꿨다. 이제는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내용증명을 보내겠다는 말까지 한 오늘 아침 마지막 통화에서 홍식이는 진실을 말했다.


작년에 코인으로 좀 재미를 봤었다고. 그러다 조금 손실이 생겼지만 금방 회복할 수 있었다고. 그저 씨드가 필요했을 뿐이라고. 나한테 전세자금이라던 그 돈마저 전부다 코인에 넣었고. 당연히 이제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고. 자기가 다시 그 돈 만들 수 있으니 조금만 더 빌려달라고. 씨드만 충분하면 그럼 다시 그 돈 만들 수 있다고. 그래, 겨우 이런 소리나 듣자고 내 모든 걸 너한테 준거였구나. 그래, 내가 이러려고 여태 착하게 살았던 거구나.


이제는 더 이상 사기당할 돈도 없고 그렇게 살고 싶지도 않다. 아니 그냥 더 이상 살고 싶지 않다. 홍식이 덕에 결국 마음을 먹었다. 그냥 죽자. 아, 맞다. 세민이가 전화해줬는데 세민이 축의금은 해야 될 거 같은데. 그래 할 일은 해야지. 세민아. 결혼 축하해. 근데 일정 확인해보니까 결혼식은 출장 때문에 못 갈 거 같아서 미리 축의금 보낸다.


마지막으로 할 일은 다 했으니 그럼 하던 일이나 마저 하러 갈까.



+)

이번 회차에서는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을 함께 써보았습니다.(제시문장:조용한 적막을 깨며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하자 나는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같은 문장에서 시작했지만 각각의 작가님에 따라 다양하게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것 자체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에세이를 주로 쓰던 작가님들이 많으셨고 저도 소설 형식은 여전히 낯설었는데요. 일단은 마감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으로 어떻게든 글을 마무리하는데 중점을 두고 써봤습니다. 어디 내놓기 창피한 글이지만 그래도 더 잘 쓰기 위해서 올립니다. 아무래도 기존에 쓰던 글이 있어서 그런지 작가님들 대부분 나 혹은 나의 주변 인물을 1인칭으로 설정한 글을 쓰게 됐습니다. 소설 형식의 글을 쓸 때 캐릭터를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 그리고 핵심 사건은 어떻게 설정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이 글은 팔글팔글에서 함께 쓴 글입니다.

괄호 속은 해당 회차의 글 주제입니다.


첫 번째 글 - 나는 아직도 시가 어렵다 (詩)

두 번째 글 - 유서

세 번째 글 - 아직 실내에서는 마스크 쓰셔야 됩니다. 제발요(싸움의 기술)

네 번째 글 - 착한사람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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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서는 누구나 작가가 됩니다. 브런치 작가 오픈 카톡방에서는 작가님이 쓰신 글, 글을 쓰면서 드는 고민,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브런치 글 등 '글과 관련된 무엇이든' 다 나누셔도 좋습니다. 브런치에서 글을 쓰고 계시거나, 쓰고 싶은분들 모두 환영합니다. :)

https://open.kakao.com/o/g3WX7Kpe 


팔글팔글(오글오글 2기)이 뭐죠?

https://brunch.co.kr/@kkw119/295

오글오글 1기 후기

https://brunch.co.kr/@kkw119/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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