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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욱 Aug 26. 2022

나는 아직도 시가 어렵다

팔글팔글 첫 번째글

나는 아직도 시가 어렵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시를 읽어보려고 시도해봤지만, 시는 내게 매번 느낌표가 아니라 물음표만 남겼다. 통계에 전혀 기반하지 않은 몇 편의 시를 읽고 난 아주 개인적인 느낌으로 시의 주제 중 대충 50% 정도는 사랑 이야기 그 자체고 한 30% 정도는 사랑에 빠진 사람이 어떤 대상을 보면서 하는 이야기, 그리고 남은 20% 정도는 사랑이 비워져 공허함을 느끼는 사람의 이야기라고 느낀다. 굳이 꼭 사랑 시가 아니더라도 결국 시는 사랑이고 마음에 사랑이 가득 찬 사람만이 시를 읽어 낼 수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여전히 시가 내게 생경한 이유는 어쩌면 아직도 내가 사랑을 전혀 모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시가 알고 싶어졌다

시를 읽을 줄 모른다고 해서 아무도 타박하지도 않고 생계에 지장이 생기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시가 알고 싶어졌다. 딱히 논리적인 설명을 할 수 없이 그냥 갑자기 그냥 그러고 싶어졌다. 졸려서 잠을 자고, 배고파서 밥을 먹듯이, 어느 순간 그냥 시가 알고 싶어졌다. 어쩌면 그동안 내가 과거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어 과거의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시라는 것을 마침내 이해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하지만 이번에도 시를 읽는 일은 어려웠다

몇 편의 시를 찾아 읽고, 꽤 유명한 시인의 산문도 찾아 읽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를 읽는 일은 어려웠다. 그렇지만 다시 한번 시를 읽으며 한 가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시는 어쩌면 사랑같이 언어로 명확히 규정할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어떻게든 말하려는 노력 아닐까 하는 생각이다. 사랑은 분명히 느껴지지만 무어라 말로 규정하기 어려운 존재다.


사랑같이 이루 '말할 수 없는' 어떤 감정과 느낌은 자세히 바라보면 굉장히 복합적으로 꼬여있어 희로애락 애오욕 중 무엇 하나라고 분리해서 말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시가 다루는 세계는 0과 1로 명확히 구분되는 분절적이고 이산적인 흑과 백의 세계가 아니라 뭐라 규정하기 어려운 수많은 색채가 연속되는 그라데이션의 세계였다. 그것도 평면적인 단차원의 그라데이션이 아니라 여러 차원이 중첩되는 복합적 그라데이션이 겹쳐진 세계였다.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는 누가 들어도 오해가 없도록 말하는 것이 목표다. '개와 늑대의 시간에 와인 한잔의 시간만큼 너의 바삭한 따스함을 생각할게'라는 표현보다 '13시부터 15시까지 22년 BaU 추정실적을 검토하고 23년 매출과 영업이익 경영목표를 확정하는 시간을 가진다'라고 말하는 게 더 맞는 방식이다.


그동안 나의 시각은 이런 식의 단절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 시각으로 모호한 그라데이션의 세계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그동안 시가 이해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0인지 1인지를 명확히 말해야 하는 세계에서 오래 살다 보니 그라데이션의 세계의 문법을 받아들일 줄 몰랐다. '결국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흑이냐 백이냐'를 따져 물었고, 흑과 백이 불명확한 그 사이의 무수한 색을 바라보며 '흑이 51% 인지 49% 인지, 그래서 결국 흑인지 백인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누군가 왜 웃냐고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나는 시를 감정적으로 감상을 하려 하기보다 논리적으로 이해하려 했다. 이런 나의 노력들은 왼손의 투쟁에서 정한아 시인이 말한 것처럼 "오르가슴에 대해 생각하느라 오르가슴을 놓쳐버린" 접근이었다. 코미디 프로를 보며 논리적으로 웃음의 이유를 찾는 멍청한 접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느껴지는 대로 느끼면 되는 것을, 굳이 그 안에서 그 감정의 이유를 찾고 있었다.


시인은 사랑같이 분명히 느껴지지만 한마디 말로 무어라 설명하기 그 어려운 감정을 최대한 말로 풀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웃음이 나서 웃는 사람에게, 눈물이 나서 우는 사람에게, 왜 웃는지 왜 우는지 물어봐야 그 이유를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왜 시가 아름다운지, 왜 우리 삶에 필요한지를 따져 묻는 물음은 장금이에게 '왜 홍시맛이 나냐'를 따져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읽는다

나는 아직도 시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따금씩 또 시집을 들춰보는 이유는 이제야 흑백의 세계에서 그라데이션의 세계로 관점을 조금 바꿔봤으니 언젠가는 그 다차원의 그라데이션 세계 사이에서 나도 함께 웃고 울 수 있는,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가 조금은 열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세계를 보는 방식을 배울 수 있지 하는 기대 때문이다.


나는 시가 여전히 어렵다.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시를 알고 싶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며 몇 친구들은 굳이 꼭 이 바쁘디 바쁜 삶 속에서, 시를 몰라도 굶어 죽지 않는 세상에서 굳이 왜 시를 읽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시를 써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에 최승자 시인은 "안 써야 할 이유는 뭐냐"라고 반문했다. 왜 내게 시를 읽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최승자 시인의 대답의 방식으로 말하겠다


"글쎄, 안 읽을 이유는 뭐지?"



+)

"모른다는 말로 도망치는 사람과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는 사람. 세계는 이렇게도 나뉜다" 유명한 요조 님의 문장입니다. 시는 개코도 모르지만, 글 주제로 선정하면 그래도 조금 더 공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무식하게 덤벼보았습니다. 역시 뭘 몰라야 함부로 덤빌 수 있는 것 같아요. 모른다는 말로 다가가 보기 위해서 몇 권의 시집과 몇 권의 시인의 에세이를 읽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여전히 어려웠습니다. 평생을 가도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르니까 종종 또 읽어보겠습니다. 죽기 전에 언젠가 한 순간은 '돈오(頓悟)'의 순간이 오기를 바라면서요.



이 글은 팔글팔글에서 함께 쓴 글입니다.

괄호 속은 해당 회차의 글 주제입니다.


첫 번째 글 - 나는 아직도 시가 어렵다 (詩)

두 번째 글 - 유서

세 번째 글 - 아직 실내에서는 마스크 쓰셔야 됩니다. 제발요(싸움의 기술)

네 번째 글 - 착한사람 (같은 문장으로 시작하는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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