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2020년 10월 9일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서기 1446년 10월 9일로부터 574년이 되는 날이다. 우리의 한글을 어제(御製)하신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자들, 그리고 똘복이와 소이 등에게 감사하는 의미에서 후세들은 그날을 '한글날'로 정했다. 한글은 위대한 제다이 마스터 '요다'보다 326년이나 어리니까 나이가 많아서 위대하다고 할 순 없겠다. 사람도 나이가 많다고 다 훌륭한 것이 아닌 것처럼. 한글의 위대함은 글자에 담긴 정신과 기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2020년 한글날, 한반도가 아닌 인도차이나반도의 베트남 하노이 한국국제학교에 한국인들이 모였다. '하노이 한인 청소년 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청소년, 학부모를 비롯해 문자 그대로의 '내외 귀빈 여러분'들이 자리를 메웠다. '하노이 한인회'가 주관하는 이 문학상 공모전에 해마다 수많은 청소년들이 문학작품을 응모하고 있으며, 올해가 벌써 10번째다.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3층 꿈나래홀이 개최 장소다.
독일에 사는 일본인, 일본에 사는 중국인, 중국에 사는 미국인, 미국에 사는 한국인, 한국에 사는 베트남인 그리고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 이렇게 사람들은 본인의 조국을 떠나서 살곤 한다. 시대와 이유는 달라도 타향살이라는 말에 묻어나는 정서가 있듯이 옮겨간 곳들은 항상 다소의 고립과 불편이 있게 마련이다. 어떤 나라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조직으로 뭉치는 성향이 강한데 전 세계 교민들이 만드는 '한인회'도 그런 연장선에서 보면 되겠다.
베트남은 해마다 교민의 숫자가 늘어왔다.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주춤하는 모습도 보인다. 2019년 외교부 자료 기준으로 172,684명인데, 성격이 호방한 어떤 사람은 20만 명, 곧 30만 명이 될 것이라 주장하기도 한다. 그렇게 우리나라 인구의 0.4% 정도 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베트남, 그중에도 호찌민과 나누면 0.2% 정도가 사는 하노이의 한국인들이 우리 청소년들에게 한글로 글을 짓게 장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날은 특별히 식전 행사에 하노이 한국국제학교 학생들이 만든 한글날 기념 UCC와 선생님들의 생활을 담은 뮤직비디오가 상영되었고, 판소리 춘향가 중 '사랑가' 한 자락도 무대에 올랐다. 선생님들은 교장선생님부터 한복을 차려입고 시상식에 참석해 큰 박수를 받았다.
나도 2019년 본 시상식의 사회를 맡은 적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어린이부터 훤칠한 고등학생들까지, 베트남이라는 외국에 살면서 그들이 겪고 생각하는 것들을 글로 표현한 작품들을 감상하고 상도 줬다. 소재의 특이함에 더해 그 감성들이 매우 깊어져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엇보다 외국에서도 사랑받는 한글이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어른이 나
한글 사랑은 비단 베트남에 사는 한국인에 국한되지 않는다. 많은 베트남인들이 한글을 배우고 싶어 한다. 여러 대학에 한국어과가 있으며, 진출한 한국기업에도 우리말을 너무 잘하는 베트남 직원들이 몇 명씩은 꼭 있다. 외국인이 우리말과 글을 좋아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들의 관심과 애정에 대해 진심 어린 감사와 배려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모기업의 한국어 말하기 대회
모 은행과 KF가 공동제작하여 무료배포한 공전의 히트 '베트남을 위한 종합 한국어' 교재. 현재 모 은행 홈페이지에 전체가 공개되어 있다. 내 월급통장과 입금인이 모 은행이다.
조선왕조에서 훌륭한 왕이라고 할 자가 억지로 손가락을 펴서 다섯 손가락 좀 못 미치게 꼽힐 것 같은데, 나는 개인적으로 한반도 역사를 통틀어 한글의 창제가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생각한다. 한글로서 유학 사대쟁이들의 독주를 막을 힘이 길러졌고, 한글로서 문맹이 퇴치되어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피어났으며, 봄꽃 같은 때론 불꽃같은 우리네 마음을 한글에 담아 한마음으로 울고 웃고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외국어를 받아들임에 있어서도 한글로는 외국어 발음을 거의 정확하게 문자화 할 수 있기 때문에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可口可樂(커우커컬러, Coca Cola)니 マクドナルド(마쿠도나루도, McDonald)니 하는 개그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려야 돌아가는 세상이 왔을 때도 어느 나라보다 신속 정확하게 우리말을 디지털 세상 안에 구현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과학적인 한글 덕이다. 하늘, 땅, 사람 모양을 본뜬 한글의 원리를 응용하여 버튼 10개로 모든 글자가 만들어지는 방식은 감히 따라올 자가 없다.
'서포만필'에서 '김만중'은 '초동급부(樵童汲婦)의 읊조림이 사대부들의 시부보다 더 낫다.'는 평을 했다고 배웠다. 이제 나무하는 아이도, 물긷는 아낙도 없을 뿐더러 '니르고져 홀빼이셔도 마참내 제 뜨들 시러펴지 못 할' 어린 백성도 없다. 이제는 좋은 글쓰기로 세상을 유유하고 온화하게 만들 때다. 유유하고 온화한 글이 세상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진실과 바름의 잉크로 써 내려간 글만이 악당을 '촌철살인'하고 칼보다 강한 붓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한 글자 한 글자 똑바로 누르도록 하자.
먼 나라 베트남에서 후손들이 한글로 시도 짓고, 수필도 쓰는 모습을 보면 세종대왕도 기쁠 것 같다. 한글날 참석한 행사에서 나의 오랜 한글 사랑도 힘을 얻는다. 후회 없는, 영원할 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