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2년 10월 13일 토요일,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자라섬 캠핑장, 그날 우리 가족은 거기서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신문화를 경험하게 된다. 이벤트의 기획은 내가 맡았지만 사실 재즈 페스티벌은 그냥 덤으로 생각했었다. 기획의 메인 테마가 캠핑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큰 맘먹고 구입한 텐트를 처음 설치해보는 날이기도 했다. 이때 50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50만 원은 캠핑을 해보기로 맘먹었을 때 장비에 지출할 비용으로 정했던 금액이다. 그때로부터 약 9년이 지난 지금도 60만 원을 살짝 초과한 수준이라 어느 정도 다짐을 지켜가고 있다.
자라섬 캠핑장에서 텐트를 설치하고 있다. 저 때만 해도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라는 내 정체가 아직 드러나기 전이다. 저들은 나를 슈퍼맨으로 여겼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안 그랬다. 2010년 정도부터 캠핑인구가 늘기 시작한 것 같은데, 내가 처음 캠핑을 간 2012년에도 다들 고만고만한 장비들로 캠핑을 즐겼다. 그랬던 것이 올림픽의 표어이자, 운동화 브랜드로 더 유명한 Citus Altus Fortius처럼, 더 넓게 더 높게 더 비싸게 캠핑을 가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해외 브랜드가 늘어나고, 온갖 기능을 앞세워 고가의 신상품들이 출시되었다. 영국의 롤스로이스는 차를 탈 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서 권위를 지켜준다고 하는데, 한국 텐트의 높이도 나날이 올라가서 들어갈 때 고개를 숙일 필요가 없어졌다. 캠핑족이 어떤 권위를 지켜야 하는지는 오리무중이다.
'해리포터와 불의 잔'은 주인공들이 텐트를 치고 퀴디치 월드컵을 즐기는 대목으로 시작된다. 그 마법사들의 텐트라는 것이 겉으로는 육군 야전 A형 텐트같이 생겼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초호화 저택인 식이다. '해리포터와 죽음의 성물'에서도 길을 떠난 해리, 론, 헤르미온느가 같은 개념의 텐트에서 야영하는 대목이 있다. 나는 일부 캠핑족들이 추구하는 바의 원형이 거기에 있지 않나 추측해 본다. 욕망이 끼어있는 레저에 다소 거부감이 있는데, 돈이 있어도 그렇게 안 하고 싶다는 뜻이다. 아직도 셰르파들은 아무 장비 없이 히말라야를 오른다. 그들에게는 제일 멋지게, 제일 먼저, 제일 높이 오르려는 욕망이 없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한국에서 우리 가족이 함께 간 마지막 캠핑은 2014년 6월 14일 토요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하마캠핑장에서의 1박 2일이었다. 큰아들이 중학교 2학년, 작은아들이 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내가 5년 간의 여의도 출퇴근에 마침표를 찍고 집이 가까운 일산으로 근무지를 옮겼던 때였다. 5년은 짧지 않은 시간이었다. 만만치 않은 시간이기도 했다. 물론 새로운 근무지는 또 그 나름대로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부분들은 많이 치유가 되었다.
저날 큰아들은 캠핑장 연못에서 인고의 시간 끝에 물고기 한 마리를 낚는 데 성공했다. 바늘 끝에서 퍼덕거리는 물고기를 들고 와 나에게 자랑했던 기억이 난다. 내 리액션이 괜찮았길.
캠핑장에는 연못이 하나 있고 거기서 낚시를 할 수 있다. 캠핑장에서 빌려주는, 물론 돈을 받고 빌려주는 낚싯대의 특징은 바늘에 미늘이 없다는 점이다. 자연스럽게 불교의 정신을 실천할 수 있다. 잡은 물고기는 잡을 때 손맛과 증거 사진 한 장을 남기고 방생된다. 하지만 예외도 있다. 돈을 내면 물고기를 가져갈 수도 있다. 기승전 돈이다. 그렇게 약 60만 원어치 장비로 우리는 이리저리 캠핑을 다니다가, 하마캠핑장을 마지막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다. 내가 베트남 하노이로 발령을 받은 것이다. 캠핑장비들도 컨테이너에 실려 물건너 갔다가 6년 뒤 다시 컨테이너에 실려 물건너 왔다.
나는 여의도에서 일산으로, 일산에서 베트남으로, 베트남에서 다시 여의도로 근무지를 옮겼다. 지금 또다시 여의도 출퇴근을 하게 된 지 6개월 정도가 지났다.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생각은 무슨 생각이든 과하게 많이 나면 좋지 않은 것 같다. 문득캠핑을 가면 좋겠다는 생각도 났는데 이건 꽤 괜찮은 생각 같았다. 충동적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가장 빠른 날짜로 예약을 했다. 혼자서 가는 캠핑은 처음이었다. 우리 집 장비는 투자금액이 적을 뿐 명색이 가족용이라 그렇게 미니멀 하진 않다. 설치가 꽤 부담스러웠지만 그래도 한번 해보자 싶었다.
2021년 7월 18일 일요일, 경기도 파주의 마장호수 휴(休) 캠핑장으로 나는 혼자 떠났다. 최소한의 장비와 필요한 만큼의 음식만 챙겼다. 최소한이라고 하지만 줄이고 줄여도 텐트, 의자, 아이스박스, 침낭, 매트리스, 코펠, 휴대용 가스레인지, 렌턴 등을 모두 챙길 수밖에 없었다. 차를 대고 짐을 불리고 뙤약볕 아래에서 피할 수 없는 노동이 시작되었다. 7년 간의 공백에도 불구하고 텐트 설치는 매우 부드럽게 진행되었지만 손이 한 개 정도만 더 있으면 속도가 두 배는 날 것 같았다. 가장 큰 문제는 바로 파쇄석 바닥인데 꽤 깊은 곳까지 파쇄석으로 채워져 있어 팩을 박기가 너무 어려웠다. 파쇄석 입자가 조금 더 곱고 조금 더 얇게 깔려 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에, 나는 '이방인'의 뫼르소처럼 작열하는 태양이 너무 뜨겁다고 느끼면서, 나지막이 쌍욕을 뱉으며 방아쇠를 당기듯 망치질을 하고 있었다.
1가구 2주택이 구현된 순간. 하지만 주변의 크고, 높고, 비싼 텐트와 비교를 하면 하나도 기쁘지 않다. 이 작은 텐트를 치는데 뙤약볕에서 쏟은 내 노동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완성된 텐트는 구색은 갖추었지만 원래 타프의 기능은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에서 작동하는 것인데 팩을 제대로 박지 못해서 쭈글쭈글 엉성한 모양이 되고 말았다. 그래도 그날 밤 캠핑장을 습격한 폭우에도 굳건히 견딘 것을 보면 기본에는 충실하지 않았나 싶다. 또 파쇄석의 신속한 배수 기능에 감사를 표하며 낮에 욕했던 걸 사과했다. 이제 여유와, 음악과, 영화와, 소설과, 맥주와, 음식과, 경치와 정취를 즐기면 된다. 마장호수의 정령들은 나에게 그런 즐거움들을 고스란히 허락해 주었다.
내가 마장호수 홍보대사는 아니다.
아버지는 텐트와 석유버너와 코펠을 들고 우리들과 소풍을 갔었다. 캠핑은 나에게 어린 시절부터 그렇게 각인되었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이름이라도 한번 불러보고 싶다. 현철아, 창욱아, 명수야.) 계곡에 캠핑을 간 적도 있다. 근처에 모르는 여학생들도 있었는데 어떻게 같이 기타 치고 노래 부르고 하다가 비가 엄청 와서 우왕좌왕했던 기억이 난다. 대학시절 친구와 MT 답사를 한답시고 바닷가에 1박 2일 캠핑을 갔던 때도 기억난다. 유치하지만 친구들에게 엽서를 보내면서 우리를 'Beach Boys'라고 썼던 기억도 난다. 호주에서는 현지인 가족과 강변에 캠핑을 갔었는데 나방을 모닥불에 그슬려 먹고, 민물장어를 잡아 기름에 튀겨먹은 기억도 있다. 캠핑의 멋진 추억들이다.
빗속에서 하룻밤을 보내며 내일 아침 젖은 장비 말릴 생각이 계속 머리를 맴돌았음을 인정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까뮈의 태양은 다음날 아침에도 어김없이 찾아와 타프와 텐트와 침낭을 뽀송뽀송하게 말릴 수 있게 도와 주었다. 태초에 꾸러미가 있었고, 집이 되었다가, 다시 꾸러미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이문세의 '빗속에서'를 한번 부르고 캠핑장을 떠났다. 이 좋았던, 7년 만의 캠핑이 나를 살렸으면 좋겠다. 약효를 기다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