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조선시대 사극을 보는 재미 중 하나는 바로 고문이나 형벌 장면이다. 형틀에 묶인 채 허벅지나 정강이 사이에 막대기를 끼우고 주리를 틀리는 장면, 볼기짝을 까고 엎드려 긴 작대기로 곤장을 맞는 장면, 벌겋게 달아오른 쇠꼬챙이로 단근질을 당하는 장면 등이 그것이다. 재미라고 하여 내가 가학적인 눈길로 그 장면을 보는 것은 아니다. 그 시대의 고문과 형벌이 보여주는 비인간성과 비논리에 경악하는 감정을 재미라고 비꼰 것이다.
고을 수령부터 고관대작, 때로는 왕까지, 국문장鞠問場에 선 그들이 항상 꺼내는 말이 있다.
"니 죄를 니가 알렸다."
이런 상황을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유죄추정의 원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단 잡혀와 묶인 사람은 죄인이라고 가정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런 말이 가능하다. 또 퇴청 시간이 다되어 가는지, 저녁에 술 약속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말도 한다.
"냉큼 실토하지 못할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금지되어 있는 '자백 강요'에 해당된다. 현재 우리나라는 '무죄추정의 원칙'도 적용되고 있다. 법을 알고, 다루고, 집행하는 사람들이 그렇다고 하니 그런 줄 아는 것이다.
대화는 전형적으로 이렇게 이어진다.
"나는 죄가 없소."
"여봐라. 저놈이 자백할 때까지 매우 쳐라." 하면 매우 친다.
"억울하오. 나는 역모를 꾸민 일이 없소."
"어허, 이놈이. 여봐라. 저놈이 국법의 지엄함을 알 때까지 매우 쳐라." 하면 또 매우 친다.
"하늘에 맹세코 그런 일이 없소. 증좌를 대시오."
"저! 저! 저! 저! (저를 세 번 이상은 해줘야 한다.) 저 발칙한 놈을 압슬형에 처하라. 형의 집행에 한치의 허술함도 있어서는 아니 될 게야." (~게야 부분은 길게 늘여서 말해야 제맛이다.)
드라마 '비밀의 숲'에 등장하는 황시목은 공소권, 기소권, 수사권, 영장청구권, 수사지휘권, 또 뭐 없나? 아, 수사종결권, 여하튼 그걸 다 가지고 있는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검사다. 앞에서 예를 든 조선 국법의 지엄함을 부르짖은 사람은 저 권한들에 더하여 재판권까지 가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죄인이라고 생각하고 잡아들여, 형틀에 묶고, 심문 나아가 고문까지 하고, 형벌까지 정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굳이 일사부재리의 원칙을 강조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로 보인다.
황시목 검사와 사건을 해결해 가는 한여진은 저 수많은 권한 중에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대한민국 경찰 경위다. 대한민국은 재판권을 법원이 나누어 가지고 있으며, 몇 년 뒤에는 수사권을 경찰이 나누어 가지게 된다. 권력의 분산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견제와 힘의 균형 같은 개념을 이유로 든다. 그래서 지금의 검찰이 가진 권한을 말할 때 그들이 견제를 받지 않을 수 있고, 힘이 불균형하게 쏠려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황시목 검사와 한여진 경위의 반대편에 이창준 차장검사가 있다. 재벌은 돈을 버는 도구로 권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돈으로 권력을 사려는 습성이 있다. 권력이 자신은 비매품이라고 버틴다면 뭔가 정의로운 분위기가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상품인지 비매품인지 애매해서 기술 좋고 치밀한 구매자가 나서면 거래가 성사되어버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권력이 자신을 상품이라고 광고하는 경우는 아마 거의 없을 것이라 믿고 싶다. 이창준은 재벌가의 사위로서 장인이 하는 사업에 본인의 권력을 제공한다. 그 권력은 장인이 제공했다. 말이 우습지만 치밀한 구매자가 만든 것이다.이창준이 던지는 드라마 말미의 반전을 여기서 언급하진 않겠다. 그리고 드라마에 딱 한 가지 불만은 우리 혜선이가, 아니 영은수 검사가 그렇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너무 했어.
재벌과 검경은 빙글빙글 돌아가며 범죄를 저지르고 수사를 벌인다. 나는 드라마 안에서 두 개의 선線을 보았다. 검찰은 경찰을 대놓고 무시한다. 둘 사이에 선명한 선을 그어서 위아래를 구분하고자 한다. 재벌은 그들이 사는 세상과 그 바깥세상 사이에 확실한 선을 긋는다. 죄와 벌이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일사부재리와 무죄추정 같은 원칙에 '유전무죄 및 무전유죄의 원칙'을 슬쩍 끼워 넣으려는 것 같다.
소설 '벙어리 삼룡이'에서 삼룡이는 주인 오생원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새아씨를 사모하는 바람에 불에 타 죽는다. 영화 '기생충'에서 김기택은 박사장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버려서 그 사달을 내고 만다. '비밀의 숲'이든, '벙어리 삼룡이'든, '기생충'이든 모든 것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선에 대한 느낌이다. 국문장 형틀에 묶인 자도 아마 어떤 선을 넘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은 시험문제를 상상해 본다.
문) 다음 중 기득권 또는 사회지도층이 그어놓은 선에 대한 가장 올바른 조치는?
(1) 선은 밟거나 넘지 마라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선 밖에 있는 사람 모두가 주의하고 알아서 기어야 한다.
(2) 사람 사이에 선을 긋는 것은 옳지 않기 때문에 선을 없애고 법 앞에 만민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3) 마카다미아가 차갑게 서빙될 경우에는 지체 없이 비행기를 회항시킨다.
(4) 박씨부인, 신혜선, 신현빈, 김연아, 송소희, 제시카(외동딸), 탕웨이, 배두나 같이 쌍꺼풀 없는 여자들이 훨씬 예쁘다.
딱히 정답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문제이지만 (1)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 믿어본다. 한여진의 기억에 남는 대사를 상기하며 내 정답을 답안지에 기재한다. "그 사람들이라고 죄다 처음부터 악마고 잔인해서 저러겠어요? 하다 보니까, 되니까 하는 거예요, 눈감아주고 침묵하니까, 누구 하나만 제대로 부릅뜨고 짖어대면 바꿀 수 있다고요."
상기 특정 집단과 계층에 대한 이야기는 일부의 경향에 대한 것이다. 일반화하면 안 된다. 지금 이시간도 과중한 업무량과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투철한 사명감 하나로 묵묵히 근무하고 계시는 검찰 및 경찰 절대다수의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기득권 또는 사회지도층에 대해서도 뭔가 말하고 싶은데 그 집단의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여 할 수가 없다. 멧별의 정답은 댓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