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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새벽 Jul 01. 2024

감정의 냄새


남쪽 지역은 이미 장마가 시작되었다고 한다. 나는 비 오는 날을 좋아하지만, 맑은 날들 사이사이 이벤트처럼 찾아와줄 때나 반갑지, 몇 날 며칠 끈덕지게 이어지는 장맛비는 그다지 달갑지 않다. 연일 내린 비에 습기를 흠뻑 품은 공기가 온몸에 치근거리면 멀쩡하던 마음도 ‘물 먹은 스펀지’처럼 묵직하게 가라앉는다. 습한 기운이 스며들어 내 안에 숨어있던 우울 세포와 결합하며 걷잡을 수 없이 침울해진다. 마치 제대로 마르지 않은 수건에 습기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눅눅한 군내가 나듯. 



코로나가 한창이던 몇 년 전 중국 칭다오 해변 근처 아파트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창밖으로 펼쳐진 바다 전망에 집에서 눈 호강을 하는 호사를 누렸지만, 여름 장마철만 되면 집 안 구석구석이 온갖 습함으로 도배되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집에서 맞이하는 장마는 예년과 사뭇 달랐다. 하늘은 햇빛의 틈입을 조금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잿빛 구름으로 가득 차고, 온종일 떨어지는 빗줄기에서는 비릿한 냄새가 났으며, 순식간에 몰려온 해무가 방어막을 둘러쳐 시야마저 꽉 막히는 날도 많았다. 그런 날 감정의 끈을 놓으면 기분이 마냥 저조해지곤 했다. 

     


장마철마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이 또 있었는데, 바로 꿉꿉한 냄새로 질펀해진 수건과의 ‘사투’였다. 땀과 물기를 닦아낸 수건을 수질이 그다지 좋지 않은 물로 빨아야 해서 애초부터 뽀송뽀송함에 대한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장마까지 겹치면 비는 비대로 쏟아지고, 소금기를 머금은 바닷가 특유의 습한 공기마저 들이쳐서 수건에서 풍겨 나오는 냄새가 더욱더 가관이었다. 눅진하게 배어든 냄새를 빼기 위해 집 안의 모든 제습기와 선풍기들을 동원해 하루 종일 돌려 보기도 하고, ‘수건 냄새 제거법’을 검색하면 단골로 나오는 식초나 구연산, 과탄산소다를 넣어서 빨아보기도 하고, 세탁기 청소를 해 보기도 하지만 결국 포기하고 수건을 버린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때부터였을까, 장마철 수건에서 풍기는 퀴퀴함은 내 기억 속에서 우울함과 맞닿아 있다. 감정에도 냄새가 있다면 침울함은 습기와 물기가 제때 배출되지 못하고 섬유 안에 더께 진 냄새, 물때가 눌리고 찌든 냄새와 닮아있지 않을까 싶다.       

 

반면 햇살을 가득 품고 바람을 한껏 받은 수건의 냄새는 벅차도록 따뜻하고 산뜻하다.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 때는 수건을 빨면 옥상 빨랫줄에 널었다. 햇빛 쨍한 날 줄지어 걸린 수건들이 바람 사이에 너울거리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가끔은 천연의 열기와 공기를 받아 빳빳하고 판판하게 잘 마른 수건에서 풍기는 새물내가 그립다. 요즘에는 아파트 생활을 하다 보니 실내 건조를 할 수밖에 없어서 추억 속의 그 촉감과 냄새를 되살리기 쉽지 않다. 건조기에 요란하게 돌려 인위적으로 말린 나른한 보드라움과는 다르다. 습기가 사라진 틈틈이 햇살과 바람의 에너지로 가득 채워진 충만한 느낌이다. 

         

우리의 감정도 수건의 냄새처럼 ‘꿉꿉함’과 ‘산뜻함’ 사이 그 어디쯤을 오간다. 마음에 습기가 차오를 때는 어떻게 말리느냐가 중요하다. 습기를 계속 방치하면 눅눅함을 넘어 곰팡이로 번지고 악취로 진동할 수도 있다. 그러니 우울함이 끈적끈적 달라붙을 때는 얼른 툴툴 털어내고, 무력감으로 척척해질 때면 더 번지기 전에 비틀어 짜내자. 


음습하고 역한 냄새로 감정이 얼룩지지 않도록 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 뽀송하게 말려야 한다. 어떠한 방식이든 감정의 냄새를 지우는 나만의 방법을 찾는 것은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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