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첫매듭 Sep 09. 2023

슬픔의 편린들

'상실'의 조각

0과 1 사이 혹은 '영영'과 '영원'사이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은 다 그곳에 살고 있었다.

('빛의 자격을 얻어'- 이혜미)




나 아닌 것들로 가득한 방에서 아직 녹지 않은 슬픔을 핥아먹으면

입가가 흐려지고 오래 묵혀 끈적해진 숨들이 우글거린다.


한 방울의 수심을 만들어 내기 위해 이토록 검은 걸음이 필요했던 걸까.

웅크린 몸에서 무수히 많은 다리가 돋아나왔다. (P.111)



싸구려 장난감이 든 캡슐, 손끝을 떠나지 않던 새

두꺼운 만화잡지와 알코올램프, 비커, 샬레

과학실의 아름다운 이름들


꺼지지 않는 벽난로와 단단한 비눗방울

불붙은 들판과 끝없이 이어지는 날개를 


가졌으나 잃어버린 것

잊었으나 사라지지 않은 것

슬픔의 다른 이름들에 대해 (P.27)



가지 꽃이 많이 피면 가문다더니

손가락으로 열매를 가리키면

수치심에 겨워 낙과한다니


몸속에 위독한 가지들을 매달고 주렁주렁 걷는

사람에게 고결은 얼마나 큰 사치인가.


숨기려 해도 넘쳐 맺히는 싶어 한 한때가 있어서

찢어진 가지마다 심장이 따라붙어 (P.104)



곁을 비우며 멀어지는 손끝처럼 하나의 문장을 완성하고

그 문을 떠날 때 우글거리겠지. 썩고 마르고 흐르고 무뎌지겠지.


사그라들다 환해지겠지, 먼지를 품겠지


새로 지은 어둠을 선물하면 오래 닫아둔 문 뒤는

흑백이 우거지는 입체가 된다.


약속이 저마다의 문이라면 모두가 열쇠를 내버리고 함몰하는 방들


겹겹이 미로 속에서 오랜 다짐이 무너진 뒤에야 짐작하지.

닫힌 눈꺼풀이 몸의 가장 어두운 뒷면이었음을. (P.100)



제가 아둔한 탓인지 시집을 읽으면서 어렵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나마 조금은 와닿는 구절들을 가져왔습니다.

(조금 어두운 부분으로 느껴지기도 하네요.)


상실을 처음 접할 때는 너무 아파서 어찌할 방도를 모르는데요. 

슬픔을 잘 수용하고, 자신을 추스를 정도가 되면 후에는 조금씩.

아주 조금씩 조각들을 주워나가서

후에는 아픔을 딛고 이기는 단단한 굳은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올바른 방향'을 향하는 건 늘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