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어느 박람회에 부스 참여자로서, 목도 마르고 해서 다른 부스의 제품을 사 줄 겸 음료가 뭐 있나 둘러보다가 평소에 구하기 힘든 (온라인 주문하면 다 있겠지만 그렇게까지 먹지는 않는) 귤 음료가 있어서 사려고 보니
소용량 페트로 4개 묶음으로만 팔더라고요.
제가 하루 동안 1리터는 넘게 마실 것 같아서 더 큰 용량은 없는지 물어봤더니 없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300미리 페트병 4병을 사 왔는데,
모양 또한 평소에 보기 힘든 통이었어요.
그날 다 먹고, 통이 아까워서 우선 갖고 와서 씻어말려 놓았어요.
사진 찍어 놓고 보니 좀 무섭기도 하네요
평소에 이런 포장재 소비에 찬성하지도 않는 편인데, 이걸 보니 제가 음료값에 포장재값도 일반 페트병보다 더 줬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저런 모양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의미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저 같은 사람에게는 선택권 없이 소비했어야 하는 억울함이 있었어요.
이건 단지 돈 문제가 아니라
지구 자원 소모에 제가 한 표 던진 결과가 되는 것이었기에 마치 강제투표를 하고 온 기분!?
디자인과 마케팅 학업을 하면서, 사람들이 내용물 외에도 포장과 겉모습에 그 심리가 크게 좌우한다는 점을 철저히 경험하였지만
그래서 다른 많은 사람들은 외관에 실질적 행위까지 좌우된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서 음식도 눈으로도 먹는다고 하고,
첫인상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말도 있고,
포장이 예쁘면 내용물은 좀 별로여도 용서된다고도 하고...
그렇지만
정작 저는 제 일상의 매우 일부 외에는 그렇지 않거든요.
전 정말 실속파, 기능주의자, 효율주의자... 여서
장식을 굳이 원하지 않고, 옷도 필요한 옷 몇 벌이면 되고, 물욕도 없고...
저 같은 사람이 세상에 저 밖에 없을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몇%, 10%라도 되지 않을까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에게는 포장에 자원과 비용이 소모된 것을 접해야 하는 경우 참 낭비예요.
장식이 필요하고, 그 포장 푸는 순간의 기쁨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어떠한 방향에서라도 그 자원소모의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의미 없고 오히려 번거로운 사람에게는 이중부담이자 고통이란 말이에요.
개인적으로는 그 자원에 드는 비용지불, 포장을 풀어야 하는 경우는 그 시간과 노동, 버리는 시간과 비용, 게다가 자원을 쓸데없이 소모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이런 부분은
단지 개인 취향의 관점이 아니라, 지구 자원 소모라는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할 시대이지 않나 싶어요.
생산자로서는 가격을 좀 더 올리더라도 저런 특이한 페트병을 쓰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었기에 그랬을 것 같아요. 특히 물건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자기 물건을 특별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기에 그 마음도 십분 이해가 가지만 (아 사실 저게 제주감귤 음료였어서돌하르방 같은 제주도 이미지를 부여하고자 한 듯해요),
포장에 비용을 더 들이는 저 행위가 우리 다 같이 사는 세상에 환경에 좋은 영향은 주지 않는다는 점을 생각하면
생산자의 필요 외에 어떤 좋은 점이 있을지 더 알고 싶어 졌어요.
소비자로서 선택권을 마련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생산자의 여건이 안 돼서 못한 거라고 생각해야겠죠?
만일 저 부스에서 같은 음료를 저 특이한 페트병에 담은 것과, 일반 페트에 담은 것을 팔았다면, 그리고 가격이 10원이라도 차이가 있다면 저는 기꺼이 일반통에 담긴 음료를 샀을 거예요.
다른 마땅한 마실거리가 없어서 저걸 살 수밖에 없었거든요.
제주도를 알리고 싶어서 여러 홍보이미지의 의미로 특별 제작한 통.
이 통, 다시 쓸 수 있을까요?
일회용 페트병은 다시 쓰지 말라고 하긴 하지만, 뭐 저도 어렸을 때에는 투명페트음료병 여러 번 썼고 제 몸에 그 세균에 대한 면역력은 어느 정도 생겼다고 생각하고 미세플라스틱은 이미 몇십 년 동안 쌓였을 것이니 그냥 좀 먹어줘도 괜찮아요.
근데 다른 사람에게 뭘 담아서 주기에 좀 미안하긴 한데, 일반적으로 많이들 그렇게 쓰시므로. 한 번쯤 더 써줘야 할 것 같아요.
저 300미리 음료병, 뭐에 쓰죠... 물 담아 다닐 용도 외에 좀 좋은 의견 있으시면 알려주세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