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클라 Klarblau Jun 21. 2024

나를 공부시키는 세상의 모든 것

쓸모없는 것은 세상에 없다

 얼마 전 저를 방문하면서 오신 어느 분이, 빈 손으로 올 수 없었다면서 티백상자를 갖고 와 주셨어요

선물이라면 사실 챙겨주는 그 마음만도 기분 좋아야 하는데

선물을 받아서 오히려 기분이 상했던 때, 

다들 평생 한 번은 있으시겠죠?


대부분 선물에 대해 이미 어떤 기대를 하다가, 그 기대에 못 미칠 때 실망하고 맘 상하게 마련이지 않나 싶은데


저는 그분이, 방문의 예의를 갖추며 갖고 온 이 물건을 보자마자 

방문의 반가움이 그분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고, 그 후 계속 무언가 생각하게 되니 

이게 제게 왜 나타났나 싶어서 또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들이 일어났어요.





이걸 갖고 오신 이유가,


언젠가 제가 차를 좋아한다고 했대요...


아아... 제가 커피를 마신다고 언젠가 한걸, 그래서 차를 마신다고 말했던 것을

차를 좋아한다고 입력해 버리셨다니



게다가 저는 차를 마시더라도 거름망에 우려내어 먹는 걸 좋아하지, 티백에 우려먹는 건 싫어하거든요. 

근데 티백을 더미로 주시다니 (무려 42개!


게다가 저를 위해 일부러 '샀다는' 말까지 하셨는데 (믿어주고 싶지만 저 가격을 저를 위해 쓰실만큼 가까운 사이가 아닌데 ) 그런 말을 해 주시다니 

그 마음을 행복하게 받아들여야 할지 어째야할지 제 마음에서 갈등이 올라오더라고요.


'조금이라도 나를 생각했더라면 저건 안 고르셨을 텐데.' 

'정말 나를 아는 사람이었다면 빈 손으로 오셨을 텐데.'

'차를 고르셨더라도 벌크형태로 사 오셨을 텐데...'

(그니까 사 온 게 아니라 있는 것 갖고 온 걸 텐데 그냥 그렇게 말하시지...


그래, 그렇게라도 저를 챙겨주시는 게 어디냐 싶고 한데


그래도 한 편으로는 제게 이미 많이 이래저래 쌓여있는 몇 년 묵은 티백 모음들이 보이며 

오늘 생긴 저 티백통은 그럼 나도 누구에게 줄 수 있을까를 벌써 고민하는 나를 보며


선물이란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어요. 





자원이 귀했던 시절에는 필요하건 아니건 주는 건 다 받고 물질을 갖고 있는 것이 좋았다라면

요즘 물질풍요의 시대에, 물질이 많다고 부유해지는 게 아니잖아요. 오히려 처리하고 버리는 데 시간과 비용이 든다면 물질 말고 정신 성숙에 더 비용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때이지 않나 싶은데.


그런데 

인간이 물질을 매개체로 교류하는 것이니만큼

저 물건이 나를 공부시키려고 내 앞에 나타난 것인가 봐요.



받은 선물을 그 자리에서 풀면서, 포장에 대해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일반 비닐, 플라스틱류가 아니라 종이로 리본 형태를 보며

리본 분해 중 (투덜투덜)

종이는 아무래도 소비자들이 더 친환경적이라고 좋아하는 경향이 있으니

친환경 트렌드에 따라 종이를 쓴 것인가 싶었는데


사실 일반 비닐형 리본은 다시 쓸 수도 있어서 모아놓기도 하는데 (버리는 사람이 더 많겠지만)

비닐 리본은 다시 쓸 수 있잖아

그럼에도 다시 써 보려고 좀 분해해 봤는데 


종이 하나로 리본 모양을 만든 게 아니라, 리본 모양을 양면테이프로 붙였더라고요?

이는 종이 재활용 과정에 불량률을 높이는 요인이 될 것 같은데. 뭔가 재활용보다는 


쓰레기통에 버리면 매립지에서 잘 썩을 쓰레기, 소비자에게 친환경 이미지를 줄 쓰레기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이 리본

그분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였길래 이런 것을 주셨을까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일반적인 다른 경우들을 상상해보면,

엄청 부자나 유명인을 방문할 때에도 빈 손으로 안 가고 뭐라도 가져가곤 하는데 (한다는데)

그가 필요 없을 물건이라도 성의라며 가져가곤 하니


선물이란 받는 이를 고려하여 준비하는 것이기보다는
주는 이가 본인이 이런 사람이라고 표현하는 매개체 역할.

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그러면서 

마음을 나누고 정신적 교류를 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야 할텐데 말이죠.

그리고

서로 물질적 교류할 때에는 실속 있게 꼭 필요한 물질만 주고받으며 살 수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이 날의 이 티백상자 사건으로

이제 저는

누구에게 무엇을 줄 때,


무엇을 어떻게 주는 것이 좋을지 더 신경 쓰고 주게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이걸 준비했는지 설명을 많이 하면서 주고 싶어요.


그 물건을 통해 내 마음을 전달하고 싶은 것일테니까요.




그리고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다는 생각도 더욱 하게 되었어요.

이 물건이 당장 내게 필요없는 물건일지라도, 무언가 자각하게 해 주는 것이기도 했으니까요.

어쨌든 이 분은 이걸로 그 분의 생각으로는 예의를 갖추어 저를 대해주는 물건의 역할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매우 유용하게 쓸 수도 있잖아...요?                    



차는 오래오래 두어도 상태가 변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티백 상자를 정말 유용하게 쓸 수 있기를 바라며


(그래도 이왕이면 내가 당장 쓸 수 있는 걸로만 선물 받기를 바라며)

이전 03화 지금, 내 앞의 것들이랑 최선을 다하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