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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보 글쟁이 Dec 02. 2020

매년 평균 250포기의 김장을 하던 며느리는..  

은밀히 김장에서 독립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 1월이면 결혼 19년 차 주부인 나는

결혼 초반의 부끄럼 많고 실수만 가득했고 모든 일에 서툴렀던 새댁에서 한해 두 해가 가면서 어느덧 중년을 넘어 낯 두꺼운 며느리로 올케로 진화하고 있다.

가끔씩 시어머니의 말씀에 "그건 아니죠~ 어머니"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고,

'아가씨'라며 꼬박 호칭을 했던 시누이들에겐

'아가씨'란 호칭이 '고모'가 되었고 대화도 더 자연스러워져서 어느덧 자매가 된듯하게 되었다

이렇듯 결혼생활이 길어지면서 모든 것이 적응이 되고 이해도 되고 하는데

딱!! 하나 20년 가까이 적응하지 못한 것이 있으니....

바로 "김장"이다

매년 시어머니의 통 큰 김장은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올해는 배추가 잘 안돼서 김치를 얼마 못 담겠다"


그러나 가보면 배추 240포기가

떡하니 절여져 있고


"올해는 조금 많이 했다"


라고 말씀하시면 그해는 어김없이 파스로 온몸을 도배해야 했다.


그리고 올해,


"올해는 코로나 때문에 품앗이도 못하고 우리 식구끼리 해야 돼서 얼마 안 했다"


하시길래 그래도 은근히 기대했었다.


'그래, 다른 해는 도와주시는 동네분들이 계셨지만 올해는 오롯이 우리 네 명만 해야 되니까 적게 하셨을 거야'


시댁에 도착해서 마당에 배추가 절여져 있는 통을 보고 옆좌석에 탄 형님(남편 누나)은

나직이 이렇게 말했다.


"올케... 차 돌려"


식구가 많은 것도 아니다.

시누이들과 우리 가족, 어머니까지 하면

다섯 가정에서 먹는 양만 하면 되지만 어머니는 이웃에게도 나눠주신다.

홀로 농사를 지으시는 어머니를 평 이웃분들이 도와주시니 김장김치로 갚는 거라 하셨다.

이웃분들뿐 아니라 사돈들 집에도 한 박스씩 보내신다. 몇 년 전 매번 김치를 받아 드시기 미안해서 김장을 도와주러 오셨던 친정엄마는 그다음 해부터 우리도 김장했으니 힘들게 하신 김치 안보내셔도 된다고 하셨다. 당신께 가는 김치라도 딸이 덜하길 바라셨을 거다.


도착해서 밥 먹고 배추를 씻는 허리 한번 펴보지 못하는 중노동을 끝낸후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배추를 보고 내가 말했다.

"매년 이 풍경은 항상 같은데 주위의 사람들은 매년 늙어가네요"


이 말에 쪽파를 다듬던 형님은 분노했다.

"엄마, 내년부터는 각자 집에서 김장하라고 해 이제 엄마도 나이 들어서  힘들고 나도 올케도 이제 늙었단 말이야 난 내년부터 우리 집 꺼만 할 거야"

"형님, 그 얘기 작년에도 하셨어요 그냥 빨리 끝내는 게 나아요"


그랬다. 각자 본인 집에서 하자는 말은 수년 전부터 나왔다.

각자 먹을양만큼만 하자고...

어머니도 나이가 들어 힘드신다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게 우린 매년 이렇게 모이게 된다.


그 가장 큰 이유는 형님을 뺀 나머지 나를 포함하여 밑에 시누이 두 명이 김치를 못 담근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네 가정 김장할 때마다 형님이 소환되고 형님이 오시니 혼자 따로 왜 하나 싶어서 같이 하다 보니 매년 모여서 하게 됐다.


그러나 나는 2년 전부터 김장에서 독립하리라 마음먹었다. 2년 전 김장을 끝내고 손목 힘줄에 염증이 생겨 일주일 넘게 물리치료를 받으면서 다짐했다.

꼭 내손으로 김치를 담궈보이리라

그래서 난 김장을 20포기만 할것이다.


그래서 어머니가 김치 양념을 만들 때

따로 메모도 해두고 정신 바짝 차리고

잘 봐 두고 배웠다.


그래서 올해는 배추김치를 뺀 여러 김치를 만들어 보았고, 식구들에게도 지인들에게도 엄치 척을 받았다.

알타리 김치, 고구마 줄기 김치, 파 김치(윗줄) 고들빼기 김치, 무 말랭이, 석박지 (아랫줄)

내년에 나는 꼭 김장에서 독립할 것이다

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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