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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Mar 03. 2023

21. 명상을 한다고 화가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명상 vs 화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오늘도 바로 그런 날이었는데, 똑같은 스케줄을 소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김밥을 먹으면서 그냥 끼니를 때운 게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비라 바드라 변형 자세 자화상

명상을 한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화도 나고 아프다. 그런데 전에 비해 그 횟수와 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에는 한주의 모든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 후 주린 배를 안고 혼자 식사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주로 김밥 한 줄이었으므로 식사를 했다기보다는 간단히 끼니를 때웠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하다. 물론 김밥은 재료의 색 조화가 보기에도 아름답고 영양학적으로 좋으며 게다가 맛있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하는 가장 똑똑하고 훌륭한 음식 중 하나다. 김밥이 초라하다는 것이 아니고 수업 후에 식당 한 켠에서 그걸 먹는 나의 모습이 그랬다. 일반적인 식사 시간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과하게 먹기엔 부담스럽고 연이은 수업으로 입맛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택한 메뉴를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질겅질겅 먹었다. 천장 환풍기에서 나오는 찬바람이 너무 싫었고 딱히 다른 대안 메뉴가 없다는 것이 불만이었으며 하여간 모든 게 신경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오늘도 바로 그런 날이었는데, 똑같은 스케줄을 소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김밥을 먹으면서 그냥 끼니를 때운 게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김밥이 맛있었고, 찬바람은 여전했지만 맛있게 먹느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고 따뜻한 물을 한 모금씩 곁들여 천천히 씹으며 '아, 이번주도 끝났구나' 하며 해방감과 여유를 만끽했다. 맛있게 먹으리라- 감사하리라-하고 다짐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되었다.

역시 완전무결하고 변하지 않는 사람이나 물체, 아니 그런 건 존재하지 않음을 느꼈다. 만일 내가 나 홀로의 형태로 주변의 영향과 관계없이 세상에 온전히 존재하고, 특정한 성격과 성향, 행동 패턴을 가진 '이러이러한' 사람이라면 똑같은 상황이 주어졌을 때 같은 반응이 나와야 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왜 다른 반응이 나오는가?

모든 것은 조건에 따라 변한다는 사실을 나 자신을 실험체 삼아 증명하고 있는 것만 같다. 물론 오랫동안 쌓아온 습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진 않는다. 그런 걸 기대하는 일은 복권 당첨을 바라는 일만큼이나 부질없다고 생각한다.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깨듯이 이런 작지만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이것이 명상의 결과이고 과정이며 힘이다.  


**14분 명상 in 파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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