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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Jun 21. 2023

44. 글의 의미와 책의 가치

명상과 독서

텍스트로 된 글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카핀잘라 아사나 자화상

수업 전 카페에서 하는 열여덟 번째 명상이다. 얼마 전에 도서관에서 분량이 500페이지가 넘는 영어 소설을 하나 빌렸다. 현재 42페이지까지 읽었는데 3주 안에 끝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 해볼 생각이다. 오늘처럼 장거리에서 수업이 있는 날의 유일한 장점은 이동 중에 독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작고 딱딱하고 매끄럽고 화면에서 끊임없이 화려한 영상이 재생되는 폰 대신, 투박하고 두툼하며 아이보리색과 베이지색의 중간 정도 되는 눈에 편안하게 들어오는 색감의 종이뭉치를 손에 들었다. 페이지를 하나 둘 넘기며 눈앞에 작은 화면이 아닌 머릿속에 더 생생하고 넓게 재생되는 소설 속 장면을 따라가다 보면 시간과 시간의 끝에 구멍을 내어 끈으로 당긴 것처럼 금세 내려야 하는 역에 도달한다.

텍스트로 된 글이 의미를 갖는 이유는 오직 그것이 읽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저마다 다른 모양으로 펼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AI가 의회 연설문을 쓰기도 하고 그림 대회에서 상을 받는 세상이 도래했어도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상상의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명상을 한 후 마음에 더 공간이 생긴 덕분에 오늘같이 바쁜 날에도 책을 가지고 다니며 읽을 여유가 생겼다. 당분간은 이렇게 즐거이 책 여행을 할 생각이다. 마침 반납일이 바통 터치하듯 새로 하게 될 수업과 새로 듣게 될 강좌의 시작일과 가깝다. 맞물리듯 돌아가는 일들, 오늘도 소소하고 행복하게 할 일을 한다. 그럼 이만 수업하러.


**10분 명상 in 파드마

#명상109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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