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한지 한달쯤 지났나보다. 그전의 생활이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나는 이 루틴에 만족하고 있다. 가끔 유튜브 재즈 플리를 틀어놓았었는데 점점 클래식쪽으로 기울어 모차르트와 바흐를 오가고 있다. 아침부터 쇼팽을 들으면 너무 분위기에 휩쓸릴 것 같아서, 최대한 중립적인 분위기로 틀게 되는 게 바흐 평균율같은 것이다. 여하튼 지금은 오랜만에 다시 재즈 플리. 읽던 책을 내려놓고 쓴다.
요즘 다시 읽고 있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책 <구원으로서의 글쓰기> 덕분에 다시금 명상에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별 건 없다. 그저 책을 읽다가, 혹은 커피를 마시다가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을 뿐이다. 눈을 감으면 주변의 온갖 소리가 더 잘 들려온다. 우리집은 한쪽은 차길, 반대편은 집들에 면해있어 여러가지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온다. 오늘 들려오는 소리는 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와 고양이 소리. 차 소리는 언제나 잔잔히 깔려있다. 그런데 심상찮다. 울 집 마당에 자주 나타나는 회색 고양이가 내는 저 소리는 며칠전 사냥한 먹이를 물고서 내던 소리와 굉장히 흡사하다. 왜 그런 소릴 내는지는 모르지만 자기도 역겹다는 듯 혹은 힘겹다는 듯, 생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는 않다는 듯 내는 저 소리..그게 신경쓰인다.
처음엔 어디 아픈줄 알았지만 이내 알게 되었다. 그건 평소와 달리 어떤 먹잇감을 입에 물고 그것의 숨이 끊어질때까지 유지하며 내는 소리란 걸. 오늘도 그 소릴 내니 뭔가 평소보다 자주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보통은 동네 사람들이 주는 사료를 먹고 산다. 그런데 오늘따라 소란스러운 저 새들의 소리, 새들이 야단났다는 듯이 짹짹거리는 소리, 저것은 언젠가 마당에 한마리 새끼 참새가 떨어졌을때 지붕위에서 소란스럽게 들려오던 새들의 소리와 흡사하다. 그리고 바로 이어 들려오는 저 고양이의 특정적인 울음소리.
얼마전 태풍으로 인해 길잃은 새끼 참새를 우연히 습득한 후, 고양이는 더욱더 야생의 본능에 눈뜨게 된걸까.
나는 왜 이리 그 고양이에 관심이 많을까.
명상하려 눈을 감았는데 더 모를 일이 되었다. 미스테리한 일들이 집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을것이다. 매일매일, 자연환경이 좋은 이곳 뉴질랜드에서는 야생의 동물과 식물, 기후, 하늘, 풀, 돌, 바람 그 모든것이 더욱 가깝게 다가온다. 나는 결코 인공의 섬에 사는 어떤 지적인 생명체가 아니라 자연의 순환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들의 일부다. 나 역시 다른 생명을 취하여 살아가고 숨쉬고 언젠가는 죽는다.
고양이가 잡은 먹이를 먹어치우는 모습은 엄청 깔끔했다. 깃털하나 남기지 않았다. 인간은 그만큼 주어진 것을 전부 활용할 수 있을까. 한 생명의 죽음이 아깝지 않게. 한 생명의 모든 것을 자신의 안에 담고, 온전하게 나의 일부로 만들고, 세상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깔끔히 거둬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