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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벌레 공포증

귀뚜라미가 운다.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하면 

조만간 집으로 들어올수도 있다는 얘기.

게다가 밤에도 조금 시끄러울 수 있다는 얘기다.


사실 소리는 괜찮다.

그 소리가 집안에서 들려올 것을 생각하면 괜찮지 않다.

여름이 지나고 가을로 접어들 무렵에

추위를 피해 들어오는 까맣고 다리가 거친 그들.

벌레에 공포증이 있는 나는 이맘때가 약간 힘들다.

하지만 올해는 잘 할 수도 있을거라 생각했다.


(초가을 자기 집에 들어와 생을 마감한 귀뚜라미를 보고

그는 좋은 귀뚜라미였다고 시를 지은 어떤 시인을 본받으리라 생각했었다)


일단 문을 잘 닫아놓고 살고

그리고 집에서 그들이 발견되고

갑자기 나타나더라도

그 존재를 자체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연민을 가져야지. 하고 다짐했다.


사실 연민을 가져서 문제다.

집에 들어와 헤메다가 죽거나 힘없는 모습을 보는게 힘들다.

그렇다고 팔팔하게 움직이는 것도 싫다.

이 싫음은 이성으론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반응이다.

그들이 나쁜게 아니란 건 알지만

생김새를 떠올리기만 해도 뒷목이 서늘해진다.


오늘 나는 창고에서 결국 까만색의 그녀석을 마주하고

정신이 반쯤 나갔다.

빨래해 널어놓은 매트를 뒤집어 말리려는데 까만 다리를 가진 무언가가 어둠속으로 황급히 몸을 숨기는 것이었다.


매년 한두마리씩 발견하고 매년 똑같이 놀란다.


그래도 조금씩 반응은 약해져가고 있어 다행이다.

처음 발견했을때 단말마의 악! 소릴 질렀고

벌레퇴치제를 가져다 그녀석이 있을만한 곳 주변에 뿌릴때

우리 마당에 나타나는 회색고양이가 참새를 입에 물고 숨통을 끊어놓을때 내지르던 이상한 소리와도 같은 

욕지기와 같은 어떤 찰나의 기함을 토했을 뿐이다.

단번에 고양이의 마음을 이해해버린 기분이다.

그리고 집 주변에 다시 벌레 기피제를 뿌려 혹시라도 벌레가 또 들어올지 모르는 가능성을 줄였다.


매년 반복적으로 벌어지는 일인데 적응은 안 된다.

바로 이때가 '확 한국으로 가버려?!'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한국 아파트에 살 땐 겪어보지 못한 일이다.


아무래도 엊그저께 청소한다고 창고 문을 활짝 열었던게 화근인가.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까만색 다리를 보아 아무래도 귀뚜라미 녀석이 맞는 것 같은데

아....제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 주길.

창문을 넘어서 바깥으로 가주면 더 좋아.


벌레기피제를 뿌리다 고개를 돌리니 이웃집 줄무늬 고양이가 와서 쳐다보고 있다. 나는 그 고양이가 조심성많은 성격임을 알고 있다. 역시 멀찌기 떨어져 있지만 웬일로 도망가지 않는다.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풀밭에 서있다.


그런 고양이를 보고 나도 벌레 걱정같은 건 잠시 접어둔채 마당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놓고 앉는다. 고양이도 앉는다.

우리는 서로를 향해 눈을 깜박거리지만 다가가진 않는다. 햇살이 마당을 가득 채운다.

고즈넉하다. 저 고양인 뭘 위해 찾아와 굳이 떨어져 앉아 이 쪽을 쳐다보고 있는 걸까. 나는 또 왜 그런 고양이를 쳐다보고 있을까.

마치 말을 하지 않고도, 같은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이처럼.


고양이는 그런 존재이다.

고양이를 받아들이려면 벌레도 받아들여야해. 라고 말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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