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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leis Jul 04. 2023

매미가 운다

매미가 운다. 일요일 아침 이웃에서 기계소음이 난다. 어제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우리집 문을, 곧이어 옆집 문을 두드렸다. 나는 왜 우리집 근처 고양이의 안부를 걱정했을까. 왠지 그들이 우리집 문을 두드린 이유가 그 고양이와 연관이 있을 것 같았다. 고양이의 안위에 문제가 생긴 것일까. 그래서 물어보려고ㅡ 이 고양인 누구네 고양이 인가요? 이 고양이가 다쳤어요. 등등. 그리고 어제 하루종일 그 고양일 본 적이 없다. 고양인 보통 우리집 앞에 혹은 옆집 근처에 그저 철푸덕 누워있거나 자거나 돌아다니거나 한다. 별일이 없었으면 한다. 어제 밤에도 본 적이 없고 고양이 울음소릴 들은 적도 없다. 울음소릴 들은 마지막은 어제 낮, 그들이 문을 두드리기 몇시간전일까. 평소와는 달리 조금 크게 여러번 울었다. 그럼 지금이라도 나가서 고양이의 안부를 확인할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진실을 알기가 두려워서? 그냥 귀찮아서? 아니면 정말 그 고양이가 사라지길 바래서?


그 고양이는 다리 하나가 이미 없다. 이미 없다는 것은 이미 무슨일인가 그 고양이에게 벌어졌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굉장히 씩씩하다. 다리가 하나 없지만 온 동네를 정찰하고 온 동네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있는 듯 하다. 물론 그 고양이가 어떤 시련을 겪고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표면상 그 고양이는 동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그녀)에게 개집같은 것 (고양이 집인가?)도 마련해주고 먹이도 준다. 어쩔땐 먹이가 너무 다양하고 풍성한 것 같기도 하다. 우리 뒷마당에 나타났을때 츄르와 같은 짜먹는 간식을 주자 허겁지겁 먹더니 바로 토해버리긴 했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저렇게 저 고양이를 위해 뭔가를 주고 싶어한다. 그런데 누구도 자기 집안에 그 고양일 들이진 않는다. 왜일까. 나같은 경우는 우리집이 애완동물을 키울수 없는 셋집이기 때문이라서다. 그것은 핑계일 것이다. 우리집이 셋집이 아니라면 고양일 들여놓고 키웠을까. 온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해가 지면 집에 들어오도록해서 따뜻한 안식처를 제공하고 같은 침대에서 밤을 보낼까. 글쎄...


아무튼 다리가 하나 없어도 그녀는 (내 맘속에 따뜻하고 부드럽고 강인한 그 고양인 그녀이다) 심지어 나무위에 오르려는 시도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훌쩍 점프했다가 바로 안된다는 걸 깨닫고 주르르 미끄러져도 그런가보다 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엄청 따라간다. 하지만 안녕 바이바이 하며 사라지는 사람은 그저 보고 있는다.

 

아침에 글을 쓰게 된것은 사실 유튜브 브이로그에서 어떤 여성분이 새벽에 일어나 쓰고싶은 아이디어가 없어도 글을 쓴다고 해서이다. 글쓰기 실력을 늘리려면 그냥 아무거라도 써야한단다. 그럴지도. 그래서 나도 자극받았다. 아침과 글은 어울린다. 아침에 글을 쓰는 일은 하루종일 살아갈 힘을 준다.


나도 어슴푸레 새벽에 일어나 글을 써볼까 생각해본다. 장소는 1층 거실, 큰 창 옆에 놓인 테이블에서다. 나는 5시에 휘적휘적 일어나 내려온다. (5시쯤 깨면 힘든 꿈, 악몽, 말이 안되는 꿈을 꾸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대충 맑은 어떤 차를 만들고 그것을 큰 머그잔에 담아 테이블앞에 앉는다. 가져온 노트북을 펴고 뭔가 적는다. 어쩌면 음악을 작게 틀어놓을 수도 있다. 나는 미리 준비해둔 유튜브의 광고없는 음악을 틀 수도 있다. 혹은 어떤 이의 새벽에 글쓰는 브이로그를 틀어놓을 수도 있다. 누군가 새벽에 일어나 글을 쓰고 음악을 틀고 차를 준비하는 과정을 틀어놓고 나도 그냥 그렇게 따라가는 것이다. 그녀는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 고양이도 없다. 박물관에도 가지 않고, 장본것을 테이블위에 펼쳐놓지도 않는다. 그녀는 아이도 없고 남편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는 설거지도 하지 않고 팬케이크를 만들지도 않고 베이킹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커피를 내리지도 않는다. 그녀는 그저 나를 위해 그렇게 있다. 나는 아무 글감도 없이 글을 쓰기 시작한다. 시작하기만 하면 뭐라도 쓴다. 쓰고 쓰고 또 쓰고. 아마도 곧 아침형 인간인 딸이 내려올 것이다. 그녀는 어떤 표정을 지을까. 약간의 짜증일 수도 안도일 수도 있는 표정으로 뭔가를 준비해서 먹을 것이다. 제발 제발 어떤 음악을 틀지 않기를 바란다. 어쩌면 에어팟을 구매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다른 음악이 섞여서 (그녀와 나와의 음악 취향은 그닥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내 평온이 깨어지지 않도록. 나는 애써 글을 완성한다. 어쩌면 완성이랄 게 없는 , 그저 쓰는 행위에 모든 게 있어 아무에게도 쓸모없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 그런 글을 애써 해나간다. 나는 하나의 인형을 만들듯이 한땀한땀 바느질한다. 인형은 옷이 없다. 인형은 무명천이다. 인형은 표정은 있지만 눈코입은 없다. 팔은 있지만 다리는 없다. 치마를 입었고 머리카락이 길다. 가끔 나도 이것을 찍는다. 그리고 누군가를 위해 유튜브에 올린다. 가끔은 피아노도 친다 연습이다. 완성이 아니다. 결코 완성의 날은 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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