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화에 요가 수업을 열심히 하고 나면 일주일에 중간인 수요일은 오전에 수업이 끝나서 오후가 한가하다. 그래서 수요일 오후엔 영화를 보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도 떨고 책을 읽기도 하면서 한가한 시간을 보낸다. 지난주 수요일엔 미국인 친구 샨티(Shanti)의 초대를 받아 그녀의 집을 방문했다. 샨티는 산스크리트어(Sanskrit, Indo- European language)로 평화 (Peace)라는 뜻이다. 친구 샨티는 내가 10일 명상에 들어갔을 때 내 룸메이트로 있었던 일본인 키요미(Kiyomi)가 소개시켜 준 친구이다. 샨티는 오랫동안 명상을 해 오고 있고 이 집을 살 때 사람들과 함께 명상을 할 수 있는 장소로 좋을 거 같아 구입하였다 한다. 그녀의 집은 시애틀 도심에 있는데 놀랍게도 집 뒤뜰에 조그만 시냇물이 흐른다. 이 시냇물로 인해 옆집과 경계가 되어 자연스럽게 담장 역할이 되고 있는데 물이 너무 맑고 투명하여 밑에 깔려 있는 큼직한 돌들과 자갈들이 환히 들여다 보이고,물살이 크고 작은 돌들에 부딪쳐 파장을 만들며 쉬지않고 흐른다. 시냇물 주변에 있는 나무들은 시냇물 쪽으로 기울어 그늘을 만들고 이파리들은 파릇파릇 신선하여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난 그 집을 갈 때마다 이 시애틀 한복판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있는 이 시냇물의 정체가 늘 궁금하곤 했었다. 샨티 역시 어디에서 이 시냇물이 오는지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모른다 한다. 언제나 주위는 조용하고 시냇물 소리만 졸졸졸졸~~들린다.
샨티는 그날 명상 모임에 나외에 2명을 더 초대하였는데 우리 모두는 저녁을 가볍게 먹고 의자를 시냇물 쪽으로 가져와 앉아 각자 자리를 잡고 명상을 시작하였다. 샨티가 말하였다.
"옛날 깨달은 자들은 강가에서 명상을 많이 했었다. 그들은 강물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흐르고 변화하는 인생을 읽었다. 앞으로 45분 동안 계속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근육의 긴장을 풀고 마음속에 홀드(Hold)하고 있는 것을 릴리스(Release)하길 바란다. 또 오늘 하루의 모든 긴장을 이 시냇물에 녹여 흘려보내고 가벼운 마음이 되어 돌아가길 바란다. "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소리를 들으며 나는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물은 너무 낮게 흐르지도, 너무 천천히 흐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힘차게 소리를 내며 흐르지도 않았다. 물은 부드럽고 일정한 리듬을 가지며 끊임없이 흐르고 있었다. 물살이 흐르다 큰 돌을 만나 거품을 만들고 그 거품들이 흘러가더니 작은 자갈들을 만나 하나하나 없어지곤 했다. 지속적으로 같은 물살을 형성하며 흐르고 있었지만 늘 새로운 물이었다. 가끔 차 소리가 나곤 했는데 그 어떤 것도 명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오쇼(Osho)는 집중(Focus)과 의식함 (Awareness)의 차이에 대해 자신의 책에 설명하였다. 집중(Focus)은 자신이 보고자 하는 하나에 포커스를 맞춤으로 주변이 보이지 않는 것이고, 의식함(Awareness)은 자신이 한 가지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지만 주변의 것들도 인지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쉽게 설명하면 부엌에서 저녁 요리를 위해 양파를 열심히 썰면서 거실에 켜놓은 TV 소리가 난다는 것을 같이 인지하는 상황 같은 것이다. 그렇다고 TV 소리 내용을 기억하지는 않는다. 그 TV 소리가 지금 내가 집중하고 있는 일에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 상황임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집중이 배제라면 의식함은 허용, 포함이라고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물을 바라보고 있자니 내가 시냇물이 되어 흘러가고 있었다. 흐르다 조그만 돌에 부딪치면 잠시 주춤하며 휘청거리면서도 계속 흐르고, 큰 돌을 만나면 여러 갈래로 갈라져서 가던 길을 바꿔 흘러가며 계속 앞으로 가고 있었다. 장애물이 나타난다 하여 결코 멈추지 않았고 뒤로 가는 법도 없었다. 계속 흘러가고 있는 나를 보고 있었다. 마음은 깊은 고요 속에 존재하고 몸은 현재 이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그동안 명상은 항상 눈을 감고 해왔지만 오늘은 눈을 뜬 채로 오감을 열고 명상을 하였다. 집중이 아닌 의식함의 상태로 있는다는 것을 체험하는 좋은 경험이었다. 이 시냇물이 흐르고 흘러 어디선가 강물과 합쳐지고 또 흐르고 성장하여 태평양 바다가 되는 것을 상상하며 명상을 마쳤다.
명상이 끝나고 같이 명상에 참여했던 다른 두 사람과 각자의 경험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야기가 행복(Happiness)에 대한 주제로 흘러갔다. 우리가 명상을 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깨달은 자가 되어 세상을 이끌어가는 빛이 되겠다는 거대한 목표보다는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삶의 주인이 되어 끄달림없이 행복하고 평화롭게 그리고 좀 더 지혜롭게 사는 것이므로 "행복"이란 주제는 늘 우리 곁에 가까이 있고 수많은 책들과 강연이 "어떻게 행복하게 살 것인가?"를 다루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 처음 와서 느낀 문화적 충격 중에 하나가 미국 사람들이 "Happy"라는 말을 일상 용어에 많이 사용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너 행복하니?" " 나 행복해."라는 말을 거의 써 본 기억이 없는 나로서는 처음에 happy라는 말이 상당히 무겁고 진지하게 들렸던 기억이 있다. 한국어로 happy를 "행복"으로 바로 직역했을 때 행복의 의미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될 것이다.
Are you happy with your job?
She was a very happy child.
You don't look happy.
I'd be happy knowing you're safe.
I'm happy to help you, and I'm happy you came to visit.
These happy days did not last long.
I'm happy to be with you.
She'll be happy to see you.
Can he make you happy?
I'm not happy about the new requirments.
행복에 대한 정의는 수천, 수만가지가 있지만 행복이란 찾기 어려운 것이 되어서도 안되고 애매하게 설명되어서도 안될 것이다. 그러기에 추상적(Abstract)이고 이상적(Ideal)으로 설명되어서도 안되며 우리가 가는 인생 여정에서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 삶의 부분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행복을 정의하고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행복을 어떻게 내 삶 속에 들어오게 할 것인가?' 라고 생각한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대니얼 캐너먼(Daniel Kahneman) 은 우리에게 두 가지 "나"가 존재한다고 정의하였다. 경험하는 나(Experiencing self)와 기억하는 나(Remembering Self)가 그것이다. 이 두 가지 존재로 인해 행복에 대한 질문도 두 가지가 존재한다.
즉, "이 순간에 행복한가? "와" 내 삶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가?"에 대한 질문인데 결국 행복은 매일 경험하는 것들에 대한 느낌으로 좌우된다기보다는 '내 삶에 대해 행복을 느끼는가?' 다시 말해 내가 경험한 것들에 대한 기억에 의해 크게 좌우되며 그 기억들에 대해 내가 얼마만큼 큰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가에 따라 행복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기억이라는 것은 내가 만들어 낸 이야기(Story)이며 그 스토리가 어떻게 끝났는가(Ending Part)가 중요한 행복감의 열쇠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한 음악회에서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여러 곡을 잘 지휘하여 관중들로부터 박수와 갈채를 많이 받았는데 마지막 한곡에서 자신이 만족하지 못한 채 콘서트가 끝났다. 이 지휘자는 여러 곡을 잘 지휘하고 연주하였지만 단 한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여 이 콘서트가 성공리에 마치지 못했다는 자신의 부정적 스토리로 인해 행복감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 콘서트를 생각할 때마다 화가 나고 짜증 나고 자신이 미워지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다. 여러분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아니한가? 모든 일이 잘 진행되었는데 마지막에 결과가 좋지 않으면 결국 그 일에 대한 기억은 모두 행복감과 아주 먼 것으로 결론이 나는 것들 말이다. 그런 경험이 많아질수록 점점 나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우리의 기억은 아주 질 나쁜 녹음장치라는 것을 잊지 말자. 우리는 언제나 처음과 끝만 기억하지 중간에 있었던 아름답고 재미있고, 열심히 노력하고, 땀 흘리고, 많이 즐거웠던 긴 내용의 중간은 다 까먹고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행복을 내 삶에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1) 행복의 기술을 익히자.( Happiness is Skill.)
운동을 하여 근육을 키우듯이 행복 기술도 훈련과 연습을 통해 만들어 갈 수있다. 짜증 나고 힘든 상황을 버텨나가는 지구력과 인내심의 근육을 키워야한다. 일이 잘못됐을 때 우리가 흔히 하는 질문 "이 상황에서 뭐가 잘못됐지?" 라기보다는 "이 상황에서 내가 잘한 거는 뭐지?"라고 관점을 바꿔보면 여러 가지 좋은 해결책을 곧 찾게 될 것이다.
(2) 우리가 그저 그렇고 그런 일상생활을 보낸다 하더라도, 경험에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들의 관점을 바꿔서 좀 더 긍정적이고 밝은 쪽으로 포커스를 맞춘다면 우리의 행복지수와 만족감을 조금씩 더 높일 수 있을 것이다.
(3) 행복을 내 삶의 고울(Goal)로 만들지 말자. 그냥 과정을 즐기자. 과정과 열정이 행복의 열쇠이다. 예쁜 장미를 본채 만채 앞만 보고 달리지 말고 가끔은 장미 냄새를 맡기 위해 잠시 멈출 여유를 가져보자.
(Be sure to stop and smell the roses.)
(4) 너무 많은 선택을 만들지 말자. 좀 더 많은 선택을 고려하는 것이 좋게 들릴 수 있으나 결국은 혼란감을 초래하기도 한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하고 놓친 기회에 대해 후회하기도 한다. 자신이 한 선택에서 즐거움을 찾도록 해 보자.
(5) 좋은 인간관계를 만드는데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자. 인간관계는 자신을 윤기나게도 하고 혹은 자신을 시들게도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내 주변 사람들을 당연시 받아들이지 말고 내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하여 올개닉(Organic) 하고 건강한(Healthy) 인간관계를 만들자. 그것은 결국 자신을 반짝반짝 빛나게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