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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다 김 Nov 29. 2018

미국 요가 선생의 따뜻한 이야기

비통함(Grief)과 눈물의 요가 수업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겨울의 시애틀.

비가 오고 있어선지 해가 뜨지 않아 아직도 어두컴컴하다...

다행히 거리에 차가 많지 않아 Highway를 씽씽 달려 요가원으로 고속 직행하였다. 운전은 기계적으로 하고 있지만 머릿속은 오늘 가르칠 수업 내용이 순서대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요가원에 도착하자 언제나 그렇듯이 짐(Jim)과 그의 아내 발레리(Valerie)가 가장 먼저 와서 요가 교실 불을 켜고 요가 매트 위에서 조용히 명상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Hi, Good Morning!! How are you doing this morning!"하고 한 톤 높인 밝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자 짐이 나더러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요가 가방을 든 채로 가까이 가자 그가 아주 슬픈 얼굴로 스캇(Scott)에 대한 비통한 소식을 전해 주었다. 그가 얼마 전에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을 갔던 스캇이 돌아올 때가 되었는데 요가원에 나타나질 않아 궁금하던 차였는데 갑자기 죽음이라니....

나는 너무 황당하고 믿을 수 없어 " Are you serious? I can not believe it."(농담하지 마세요. 믿을 수 없어요.)라고 말을 하였더니 짐이 계속 말을 이었다. 자신도 믿기지 않지만 아침에 매니저 마크(Mark)에게서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다.  


스캇은 지난 9월에 이스라엘, 조르단, 레바논, 이집트 등을 여행하기 위해 여행사에 등록을 했고, 10월 셋째 주에 떠날 그 날이 오기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방문하는 나라에 대해 공부를 하고, 그 지역날씨에 맞는 옷을 사고, 가볍고 질 좋은 등산화 겸 워킹화(Walking shoes)도 준비하며 보여 주었다. 그리고 떠나기 전 마지막 수업에서 "다음 주부터 여행 간다."고 발표를 한 후에 그때 수업에 왔던 학생들과 허그(Hug)를 하고, 악수를 나누고, 여행지를 소개하면서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바이 바이"를 했던 사람이다. 요가 교실 문을 나서면서 눈을 깜박이며 "리다야, 내가 보고 싶다고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3주 후에 돌아올게." 하며 조크를 날렸었는데 그게 마지막이라니...

스캇은 70대 나이로 이미 내 책 " 내 몸과 마음을 여는 비니 요가의 비밀"에 모델로 나온 바가 있는 요기(Yogi)다.(Page 59) 내 책에 사진이 나왔을 때 스캇이 나에게 제안하기를 "리다야, 나 한국 여자 좋아하는데 내 사진 밑에 전화번호와 이메일 주소를 써주면 안 되겠니? 내 사진 보고 연락 좀 하라고."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얼마나 크게 웃었는지 지금도 생각하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스캇, 미안해. 이 책은 데이트 연결해주는 책이 아니야."  

"알아 안다고.. 하지만 작가 권한으로 내 소개 좀 잘해줘."

" 그래 알았어. 기회 되면 당신이 얼마나 핸썸하고 나이스 한지 한국사회에 널리 알려줄게."

그래서 약속한대로 University of Washington 도서관에서 요가 책 저자 강의가 있었을 때 내가 스캇을 한국 사회에 대대적으로 알려주기도 했었다.


어느덧 스캇과 요가를 같이 한지도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스캇과 나이 차를 넘어 친구처럼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고 연극, 영화, 사회적 이슈 등 참 많은 얘기를 하며 웃기도 하고 농담도 많이 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평생을 컴퓨터 업종에서 일을 했고, 퇴직한 후에는 큰 집에서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었는데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정신적 어려움을 겪었다. 아내와 이혼을 하게 되었고, 자식을 낳지 않겠다는 아내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에 슬하에 자녀도 없이 이혼한 후에는 계속 혼자 큰 집에서 살았다. 사진에서 보이는 집 정원이 어찌나 큰지 내가" 스캇, 당신은 공원에서 사는군요."라고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이 정원을 가꾸기 위해 혼자 벽돌을 쌓고, 잔디를 깎고, 나무를 자르고 하는 날에는 자기 집에서 따온 사과나 자두, 블루베리, 블랙베리 등을 주며 " 리다야, 오늘 어깨 좀 풀어주렴." 하고 특별 주문을 하면서 애교를 부리곤 했었다.


배가 많이 나온 스캇이 지난 3월부터 살을 빼기 위해 혹독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하면서 단 음식(Sweet food)을 절제하고, 칼로리 계산을 해가며 음식을 가려먹기 시작하였다. 아침 5시 반에 운동 클럽에 나와 땀을 뻘벌 흘리면서 운동을 하고, 요가를 더 열심히 하고, 걷기를 하며 몸무게가 15 pound 줄었다고 좋아해서 모두들 축하의 박수를 쳐 주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8월에는 갑자기 3주 동안 소식이 끊겨 문자를 넣어보니 답장이 오기를 자신이 동물원에 갔는데 실수로 고릴라 우리 속으로 떨어져 고릴라가 얼굴을 쳐서 얼굴을 다쳤다면서 다친 얼굴 사진과 함께 text를 보내왔다. 나는 그 사진을 보고 너무 놀라서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줄 수 없겠니?" 하고 문자를 보낸 후 다른 요기(Yogi)들에게 이 사진과 문자를 보여주니 학생들 반응이 한결같이 "믿을 수 없다. 아마 스캇이 농담을 좋아하니 storytelling 하는 거 같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하였다. 3주 후에 나타난 스캇은 입술 옆에 꿰맨 자국이 역력했고 아직도 상처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모두들 궁금하여 "어떻게 된 거냐, 고릴라 우리 속에 떨어진 게 사실이냐?  911이 왔느냐?"등등을 쉴 새 없이 물어보니 사실 실토하기를 오래전부터 입술 옆에 뾰루지가 나서 약을 사다 발라도 낫질 않아 병원에 갔는데 이런 저런 검사를 몇 가지 하더니 뜻밖에 피부암(Skin cancer) 초기 진단이 내려져 갑작스레 수술을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은 "Cancer Survivor다." 라면서 크게 "핫핫핫" 웃곤 하였다.

고릴라 우리 속에 떨어져 고릴라에게 맞았다는 문자와 함께 보내 온 사진

그런 그가 여행 중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시신을 보기 전까진 믿을 수 없고, 아니 믿고 싶지가 않았다는게 더 맞을 거 같다. 그가 여행 중에 갑자기 사망을 하였다는(아직 사인을 모르지만) 소식이 시카고에 살고 있는 나이 많은 누나에게 전달이 됐고, 누나가 스캇이 운동 중 유일하게 요가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요가를 한다는 것을 알기에 요가원에 연락을 해 줘서 모두들 알게 된 것이다. 지금 시신은 미국으로 옮겨지고 있는 중이라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요기들은 모두 슬픔에 잠겼고 마침내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이윽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눈을 감고 잠시 호흡과 명상을 하며 스캇을 추모하는 시간을 갖았다. 그를 생각하자 그의 환히 웃는 모습이 떠오르며 바로 내 앞에 앉아 어떤 조크를 할까하는 우스운 표정을 지으며 앉아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3주 후에 온다더니 영영 가버리다니요....

눈물을 닦을 수건도 없고 휴지도 없는데 눈물이 주르륵 주르륵 볼을 타고 목으로 한없이 흘러내렸다...

수업을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진정을 하려 하면 할수록 더욱 눈물이 쏟아졌다.

이때 크게 울 수는 없는 것일까...? 정말 많이 울고 싶은데...

학생들의 '흑흑흑 '흐느끼는 울음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그러나 나는 선생이지 않은가? 머릿속에선 수업을 진행해야 한다는 이성적인 판단이 계속 명령을 내리고 있지만 어쩌된 일인지 내 울음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가 너무 슬프게 운다면 그 울음이 그칠 때까지, 몸을 통과해서 빠져나갈 때까지 기다려줘야 한다. 물론 울고 있는 상대방에게 다가가 몸을 터치하거나 안아주는 것은 우는 상대방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해주는 아주 좋은 행위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울음이 나를 불편(Bother)하게 하기때문에 그 상황을 바꾸려는 자신의 의도가 숨겨져 있기도 하다.


왼쪽은 슬픔을 이겨나가는 과정이고 오른쪽은 마구 헝클어진 오늘의 내마음이다.

나는  깊은 호흡을 하며 내 몸 어디에 슬픔이 있는지를 바라보았다. 마구 마구 헝클어져 있는 내 맘을 보았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깊은 호흡을 하며 이 혼란스럼과 슬픔을 받아들였다. (Accepted) 그러자 그가 나에게 지난 5년 동안 보여 준 웃음과 진실, 친절함, 요가에 대한 열정에 대해 감사한 마음으로 서서히 전환(Transform)이 되었다.

그래, 요가는 언제나 포즈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지....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고요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가를 말이야.

예를 들어 우리가 활자세(Bow Pose)나 헤드 스탠드(Head stand) 자세를 하면 고통스럽고 교감신경이 활성화돼서 심장이 뛰고 몸과 마음에 긴장이 느껴지지만, 우리는 요가를 통해 스트레스 가득한(Stressful Situation)상황에서 어떻게 호흡에 집중하며 고요한 마음을 유지하는가를  늘 배우잖아..

이런 훈련은 우리 마음만 트레이닝하는 게 아니라 자율신경 조직에 각인시켜 매일매일 받는 스트레스에 잘 반응할 수 있도록 둔감 능력을 키워주기도 한다.

이게 요가가 에어로빅이나 줌바 댄스와 크게 다른 점이다.


나는 오늘 하려고 준비해온 모든 시퀀스를 버렸다. 그 대신 슬픔을 가진 학생들이 견딜 수 있는 아주 짧은 몇 가지 동작만을 오늘의 포즈로 선택해서 수업을 진행하였다. 슬픔을 가슴에 hold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너무 몸을 푸시(Push)하거나 힘을 줘서 자세를 유지하거나, 심하게 몸을 뒤틀거나, 발란스를 오래 유지해야 하거나, 거꾸로 하는 자세 등을 없애고 가벼운 Forward Bends, BackBends, 그리고 주로 요가 블록이나 담요, 벨트를 이용한 회복 자세들(Restorative Poses), 간단한 발란스 등의 자세로 시퀀스를 구성하여 편안한 가운데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좋다.


사나 운동이 (Asana Practice) 끝난 후에는 다시 호흡과 명상을 통해 스캇을 잃은 슬픔과 고통을 가슴에 담는 대신 그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웃음과 즐거움, 아름다운 마음에 대한 감사로 승화시키는 시간을 가졌다.

요가가 끝나자 우리는 모두 밝은 얼굴을 되찾았고 스캇과 함께 했던 재밌고 즐거웠던 기억들을 되살리며 이야기를 나눈 후 서로 허그를 하고 또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요가원을 나왔다.


스캇,

우리는 당신을 잊지 못할 겁니다. 요가 수업 시간이 되면 모두 당신을 그리워할 거예요. 언제나 크게 웃는 당신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겠죠. 고통 없는 하늘에서 편안하게 잘 계세요. 우리도 언젠가 그곳으로 갑니다.

"Worrying doesn't take away tomorrow's troubles, it takes away today's peace."

걱정하는 것은 내일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의 평화를 앗아간다.


여러분, 오늘도 많이 웃고 즐겁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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