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가 한창이던 때, 온라인 운동, 홈트(홈 트레이닝)가 유행이었다. 국선도를 즐기던 동료 교수도, 몸살림 운동 지도자인 지인도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환한 후 다시 분주해졌다. 필라테스 강사인 친구 딸은 코로나 덕분에 수강생이 전국구가 되었다며 기뻐했다. 위기가 기회가 되었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는 더 바빠졌다고 한다. 수업을 마친 이후에도 녹화된 영상을 보며 개인적으로 자세를 교정해 주는 등 후반 지도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운동의 경우에는 온/오프라인 수업 사이에 생각보다 큰 차이는 없었겠다.
디자인 대학의 실기 수업은 어땠을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디자인 프로세스에서 중요한 색감, 질감, 디테일을 함께 체크하고 발전시키는 데, 온라인 수업의 한계는 분명했다. 코로나 기간, 나는 초반 몇 달을 제외하고는 거의 오프라인으로 수업했다. 집합 금지 때문에 모일 수는 없지만, 소그룹으로 나눠 혹은 개인지도 방식으로 직접 만났다. 덕분에 수업의 질과 결과물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며 안도했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업 외의 활동 즉 신입생 환영회, 오티(오리엔테이션), 엠티, 체육대회, 축제는 물론, 디자인대학의 야작(야간작업), 선배 졸업 작품 도우미, 실기실 청소, (증빙할 필요 없고 점수와 상관없는) 동아리 활동, 현장학습 등 소위 캠퍼스 라이프가 몽땅 사라졌고, 학생들은 갈등하고 소통하는 것을 배우지 못했다. 10대에서 20대, 미성년에서 성년,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으로 건너가는 인생의 건널목에서 나이만 먹었을 뿐 어른이 되질 못 했다.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오해가 끼어들고, 끼어든 오해는 풀기가 쉽지 않았다. 결국 4학년 졸업작품전을 앞두고 상상을 초월한 모든 문제가 터졌다.
내가 소속된 학과(실내디자인)는 단합이 필요한 곳이다. 졸업작품전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혼자 할 수 없다. 공간을 대여하고 전시를 기획하고 설치하고 차량을 예약하고 작품을 실어 작품을 운반하는 등 4학년은 물론 후배들인 재학생까지 아울러 학과 전체를 하나의 팀으로 만들어야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요즘 애들 개인적이라는 말을 들은 지 꽤 지난 다음에도 우리 학과 학생들은 협업과 소통에 뛰어났다. 전공의 특성이 개인의 성향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3년 내내 개인 작업만 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그 과정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이제 서서히 회복 중이지만 100% 비포 코로나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긴 추석 연휴, 휴강을 할 수 없어 오랜만에 1학년 수업을 온라인으로 했다. 역시 힘들다.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 3년을 이런 방법으로 교육받았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학생들은 일단 카메라를 켜지 않는다. 화면을 켜도록 하는 일은 변심한 애인의 마음을 돌리는 것보다 힘들다. 개인지도가 필요해 카메라를 켜라고 하면 모자와 마스크로 뒤덮인 얼굴이나 방의 천장을 비춘 화면이 등장한다. 온라인 수업은 자발적 동기가 있는 학생과 그렇지 않은 학생을 극명하게 구분한다. 20명이 넘는 학생들의 얼굴이 동시에 떠 있는 화면 속에서 숨고 싶고 도망가고 싶은 아이들은 편하게 잊힌다. 그 아이들은 접속할 뿐 접촉하지 않는다. 실기실이라면 곁에 다가가 눈도 맞추고 말을 건네며 도움을 주는데, 온라인 수업에서는 적극적으로 질문하고 다가서는 학생들 지도만으로도 제한된 수업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작년부터 우리 학과의 모든 수업은 대면으로 전환됐다. 교실에서 만난 아이들은 코로나 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교수와의 눈 맞춤, 대화를 극도로 어려워하거나 혹은 싫어한다. 친이모에게라도 하듯 팔짱을 끼며 과장된 친근감을 표시하는 아이도 있다. 수업이 시작돼도 잡담을 멈추지 않고 핸드폰을 들여다본다. 방금 강조한 공지 사항도 기억하지 못한다.
대학에서 코로나를 겪으며 깨달은 것은 분명하다. IT 혁명은 인류에게 직접 만나지 않고도 해결하는 방법을 선물했지만, 막상 글로벌 IT 기업은 그들의 업무 공간을 직원들이 자주 만날 수 있도록 설계했다. 그곳에는 함께 일하고, 놀고, 먹고, 취미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 풍성하다. 그러니 학교에서도, 좋든 싫든 인간이란 만나고 갈등하고 교류하고 조율하며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의 존재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오랜만에 온라인 강의를 하며, 그래도 이 수업이 어쩌다 한 번임에 안도했다.